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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모든 것의 시작 - 우리 시대에 인문교양은 왜 필요한가?
서경식.노마 필드.가토 슈이치 지음, 이목 옮김 / 노마드북스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는 동안 난 우연히 읽었던 한 기사를 떠올리고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간호조무사 5~6명은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의 의사가 수면내시경 진료를 받는 여환자들이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동안 성폭행을 일삼는 것을 알면서도 막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적극적인 액션을 보였다. 몰래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고, 의사 가족들에게 그 동양상을 빌미로 돈을 받아냈다. 난 그 단신기사를 보고 어떻게 인간에게 이런 몰상식이 있을 수 있을까 의아했다.
이 책은 그런 몰상식, 몰이해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이다. 내가 볼 때 이 책은 비인간성으로 치닫는 사회에 대한 그 어떤 견해보다도 탁월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답은 교양의 복원인 것이다.
이 책은 왜 교양인가, 왜 인문학이며, 그것의 효용은 무엇인가에 대한 - 시대에 떨어져보이지만 - 상당히 시급한 문제에 대해 답을 내놓고 있다.
<교양, 모든 것의 시작>은 일본의 동경경제대학에서 서경식-노마 필드-카토 슈이치의 <교양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특강을 엮은 책이다. 교양의 어원부터 현실의 적용에 이르기까지 두루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다.
교양은 예부터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로 여겨져오다 일반인에게로 특히 여성에게까지 확산되었다는 측면에서 Liberal Arts라고 할 수 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또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를 인간에게 선사한다는 측면에서 Liberal이라는 단어가 합당하다. 그러나 왜 교양은 이 시대에 소멸되었는가. 여기에 대한 해답을 카토 슈이치는 자연과학의 비교에서 찾아낸다. 눈에 보이는 것, 가시적인 성과 앞에서 교양은 무기력했다.
그러나 노학자의 간단하지만 상당히 혜안에 가득찬 강연은 교양의 존재근거를 역설해 준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진 자동차 기술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기술자가 신기술로 엄청난 속도와 연비 등등을 갖춘 자동차를 개발한다 해도 누구도 그에게 자동차의 목적지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궁극적인 목적지를 정하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며, 그 몫을 누군가에게 강탈당하는 순간 인간인 비인간화/기계화의 테두리 속에 갇혀진다. 자신의 목적지를 스스로 정하는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교양이다.
교양의 미덕은 또 <상상력>에 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고 할 때의 그런 차원의 상상력을 넘어 타자에 자신을 투영하는 능력,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상상력이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문학, 예술 등 이른바 교양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68혁명의 "상상력에 권력을"이라는 구호는 여전히 매혹적이며 유효하다. 상상력이 빈곤한, 즉 타자에 자신을 대입하지 못하는 기계화된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는 곳에서는 결국 '전쟁'이 정당화된다.
노마 필드(아버지는 미국인, 어머니는 일본인인 시카고대의 일본문학 교수)는 전쟁을 찬성하는 사회에서 교양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의심을 품다가 결국에 교양의 실패가 전쟁을 불러왔다고 고백한다.
다시 발칙한 간호조무사들에게로 돌아오면,
내 생각에 이들을 교도소라는 곳에 넣는다고 해서 이들이 교도될 것 같지 않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에게 자신을 대입시켜 보는 상상력이 아닐까. 결국 교양이 필요한 게 아닐까. 이런 것이 너무 나이브한 생각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실제로 <희망의 인문학>이라는 책은 노숙자들에게 인문학을 강의했을 때 그들이 얼마나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스스로 깨닫고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인문학이 희망이다...는 말이 구체적인 해답이라고 난 이 책을 읽고 더 깊게 느끼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