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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캘린더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임.신이라는 거 어떤 것일까 궁금하다. 한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는 것 호들갑 떨며 축하할 일일까. 이 소설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숭고하고 고귀한 일이어.야.만 한다고 강요 받는 일 중의 하나가 임신이라고 항변하고 있는 듯 하다 .
소설 속 '나'의 언니는 임신으로 안 그래도 팽팽한 신경이 임신을 계기로 끊어질 듯 위태로워 진다. 입덧으로 아무 것도 입에 넣지 못하는 언니는 나날이 여위어 간다. 집에서 베이컨을 굽던 동생은 집안 곳곳에서 역겨운 기름 냄새가 난다고 울부짖는 언니 때문에 집 밖에서 숨 죽이며 밥을 먹어야 한다. 먹는 게 곧 죄악인 생활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언니는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이 먹어대기 시작한다. 듣도 보도 못한 것을 자정에 먹고 싶다고 고집을 부리고,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떨이로 구입하는 그레이프 푸르트 잼을 퍼먹으며 하루 하루를 지낸다.
'나'는 생각한다. 그레이프 푸르트에는 농약으로 인체에 해롭다는데... 그러면서 '나'는 훼손된 DNA 염색체를 떠올린다.
이 소설 속 '나'에게 뱃 속에 생명체는 DNA 이상이 아니며, 언니에게는 '고통'일 뿐이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그 누구도 임신을 기뻐하지 않는다. 다만 순간 순간을 견뎌낼 뿐이다.
이 모든 게 너무나 가슴 서늘하게 그려져 있어, 읽고나면 가슴 한 구석을 서늘한 바람이 훅 한 번 훑고 지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같이 수록된 <기숙사>, <해질녘의 급식실과 비 내리는 수영장> 역시 여성들의 심리가 차갑게 묘사된다.
<기숙사>에서는 허물어가는 기숙사의 한 실종사건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불안한 심리가, <... 수영장>에서는 모두가 반대하는 결혼을 앞두고 겪는 여성의 심리가 차분차분, 또박또박 하지만 그래서 더 무섭게 그려진다.
이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작가가 후기에서 밝힌 한 에피소드와도 통하는 것 같다.
작가는 어느 순간 자신의 집에 있는 싱크대 밑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란다. 죽은 고양이가 썩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싱크대 밑에 고양이가 죽어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잘 보니 그것은 썩은 양파가 들어있는 망이었다.
어둠 속에서 보인 썩은 양파와 죽은 고양이 사이. 그 사이에 작가는 자기가 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임신 캘린더>는 아쿠다가와 상을 수상했고, 오가와 요코는 내가 사랑하는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