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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 대 화성인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김옥희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이 소설을 쓰고 한참이 지난 뒤 이렇게 말했다.
"난 <존 레논 대 화성인>을 쓴 이후 다시는 이런 소설을 못 쓰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역순으로 번역 소개되고 있는 겐이치로의 소설들 중 이 소설은 단연 백미이다.
<우아하며 감상적인 일본 야구>, <사요나라 갱들이여>, <겐지와 겐이치로> 등의 소설이 주는 감동이 스타일의 재기발랄함이 내용을 압도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인데 반해(사실 내용이 무의미하다) <존 레논 대 화성인>에서는 스타일과 언어의 전복에서 오는 통쾌함은 그대로이면서도 내용에서 오는 거대한 슬픔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이 소설은 한 마디로, 읽고 나면 가슴이 뚫린 듯 서늘한 느낌을 준다.
'멋진 일본의 전쟁'의 머리속을 헤집어 놓는 각종 살육의 행태들, 살인들, 시신들...은 작가인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견뎌낸 전공투 시대 -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전공투에 가담한 혐의로 반 년 간 수감생활을 했고, 그 뒤 실어증에 시달렸다. 실어증 극복을 위핸 '이것은 컵이다 이것은 컵이다'를 되내이며 언어를 '재'습득했다 - 의 은유이자 상징이고, 그 폭력은 전공투 시대가 지났다고 해서 단순히 치유 소멸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멋진 일본의 전쟁'을 괴롭혔던 살인에 대한 추억과 공포는 '멋진 일본의 전쟁'이 죽은 뒤 그대로 '나'에게 옮겨진다)
무차별적이면서 동시에 불가항력적이고 또 우연적인 폭력이 이 소설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면 이 소설을 지탱하는 또 다른 한 축은 바로 성(性)이다.
극중 '나'는 엽기 포르노 소설의 작가이고, '내'가 '멋진 일본의 전쟁'에게 치유책으로 제시한 것은 창녀 테이텀 오닐(T.O)(실제로는 '페이퍼 문'에 출연한 미국의 여배우)을 소개한 것이다.
T.O는 '멋진 일본의 전쟁'에게 그닥 실력발휘를 하지 못하지만 T.O와 함께 일하는 '이시노 마코'는 '자본론 할아버지' - 실효성을 이미 오래 전에 상실해 사실상 사망신고를 받은 늙은이의 표본인 '자본론 할아버지', 이보다 기막힌 작명이 가능할까 - 의 원기회복에 성공한다.
'섹스'는 '치유'인 것이면서 동시에 소설 속의 이 등식은 '모든 여성적인 것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괴테의 예언과도 맞물린다.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이 소설이 자신과 가장 닮아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겐이치로는 재기발랄한 어릿광대의 친근한 웃음을 지으면서 속에는 깊은 슬픔을 가진 작가가 아닐까 한다.
이 소설 역시 언어의 전복과 의미 비틀기(일본에서 실제로 활동한 레슬러가 존재론을 고민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소설 속에서는 실제로 통용되는 언어의 의미가 변주된다)로 꾀하는 유쾌함 속에 슬픔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