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민테른과 대장정 - 일월총서 37
오토브라운 / 일월서각 / 198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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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토브라운은 장정에 참가한 유일한 서양인이다. 그는 중국에서 '이덕'이란 이름을 사용하였다. 1896년 출생한 브라운은 코민테른에 의해 중공당에 파견되어 장정을 경험하는 등 중국혁명의 중심에 있었다. 이 글 역시 그 경험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핵심적인 의문점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과연 오토브라운의 영향력에 의해 지배적으로 관철된 코민테른의 노선이 정당했는가 아니면, 농업국가란 중국의 특수성을 전제로한 모택동의 농촌혁명노선이 옳았는가하는 문제이다. 33년에서 34년경 초공작전이 한창일 때, 오토브라운은 코민테른의 권위를 등에 업고 시종일관 진지전을 주장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킨 바 있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고 중국공산당은 장정의 먼 길을 떠나게 된다.

물론 이후에는 모택동이 준의회의를 계기로 공산당내 실권을 장악하게 되고, 게릴라전을 홍군의 주된 전략으로 채택하기에 이른다. 이덕은 모택동의 보좌적 지위로 강등될 수 밖에 없었다. 그후 제 2차대전중 연안에 단 한번 착륙했다고 전해지는 소련비행기로 오토브라운은 1939년 그곳을 떠났다. 그는 1964년, '모택동은 누구를 위하여 말하는가'라는 논문을 통해 중소분쟁시 모스크바측을 지지한 바 있다. 이 책을 읽을 독자들 역시 그의 이러한 편향에 대해 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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