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위 모자 

 

카페로 돌아온 나는 카페 구석에 요가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커피 향과 잘 어울리는 코코넛 버터 향초를 항상 켜두고 손님이 뜸한 시간에 요가를 한다. 10일 동안 받은 발리 요가 수업 동안 내 몸은 단단해졌다. 머리카락은 이제 귀 아래에 찰랑거린다. 초록색 안경테는 내 눈동자 너머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 사람은 여전히 없다. 머리 위 모자를 쓰고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한다. 내게 그것이 오히려 마음 편했다. 그 사람은 내 안경이라도 쓰고 다닐까? 바보같은 질문이다. 아마 그 사람은 그 안경을 서랍에 넣었거나 쓰레기통에 처박았을지 모른다. 나의 커피 맛이 비꼈다. 넛티가 약해지고 비터니스와 산미가 좀 더 강해졌다. 내 커피 취향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크레마는 여전히 풍성하게 나오도록 하지만, 크레마 역시 겉모습뿐이라는 생각이 들자 깔끔한 아메리카노를 뽑게 되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가벼운 차림으로 우선 요가를 한다. 양치질이 우선이긴 하다. 꼼꼼히 입 안을 헹구고 요가 매트 위에 선다. 나를 위한 시간이다. 마음은 그 사람을 떠났다고 하지만, 내 몸은 여전히 누군가를 원한다. 그것이 몸이다. 요가 자세는 그런 몸의 균형을 잡아준다. 오늘은 누워서 송장 자세부터 시작을 한다. 두 발과 두 팔을 적당히 벌리고 숨을 쉬고 내쉬며 긴장을 푼다. 서서히 눈을 뜨고 골반과 허리를 풀어준다. 두 팔을 어깨 높이로 벌리고 두 무릎을 세우고 좌우로 흔들거린다. 이번에는 무릎을 가슴 가까이 갖고 와서 두 무릎으로 원을 그린다. 원이 동그랗게 될수록 허리가 강화된다. 오른 다리를 펴고, 왼발을 오른 무릎 위에 놓는다. 두 팔을 어깨 높이로 펴고 왼 무릎을 오른쪽으로 기울여 바닥에 닿는다. 두 눈은 어깨 높이로 편 두 팔 중에 왼손 끝을 바라봄으로써 상체와 하체가 반대로 작용한다. 상하체가 서로 반대로 작용하면서 몸 안에 나쁜 기운과 노폐물이 빠져나간다. 호흡을 2-3차례 한다. 반대로도 한다. 마지막 다리 자세이다. 양 무릎을 어깨 너비로 세우고 엉덩이를 끌어올리고 척추 하나하나를 들어서 뒷이 바닥에 닿는 지점까지 올려준다. 호흡을 하며 세운 무릎 사이를 좁히려고 힘을 준다. 천천히 숨을 내쉬며 허리와 꼬리뼈를 바닥에 대고 다리 자세를 끝낸다.  

 

요가 동작을 끝내고 뒷목을 도리질 하며 긴장을 풀었다. 일어나서 옷을 벗고 샤워를 하러 갔다. 마음에 드는 향이 무엇일까? , , . 갖고 있는 샤워젤을 보고 골라본다. 하나를 더 사다둬야겠다. 짙은 꽃향기 뭐 없을까. 물로 머리카락을 적시고 샴푸 질을 한다. 머리카락이 제법 길어져서 손안에 감기는 머리카락이 한 움큼이 넘는다. 나는 샴푸 질을 좋아한다.  문질러서 두피 마사지를 해준다. 손가락 끝으로 꼭꼭 눌러서 머리에 자극을 준다. 헹군다. 이번에는  고른 샤워젤로 거품을 내서 몸을 문지른다. 자신의 몸을 깨끗이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남들이 없다면 자신의 몸을 이렇게 정성스레 닦지 않을 것이다. 옷도 그냥 마구잡이로 입을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몸과 외모를 가꾸는 것은 그/그녀에게 본능이다. 이대로 나의 아름다움이 사라져가는 것을 붙들 수 없다니. 

 

물방울이 머리카락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몸을 닦고 티셔츠와 팬티 차림으로 앉아서 생각한다. 내가 만약 그 사람을 잊지 못했다면 이러고 앉아있을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 더 지혜롭지 않을까? 자존심. 구차함. 이 단어들이 정말 내 마음보다 중요할까? 거울 속에서 흐릿한 내 얼굴이 비치고 단발머리가 찰랑인다. 나는 티셔츠 위에 가벼운 점퍼를 걸치고 청바지를 입고 도톰한 양말을 신고 머리카락을  물기를 없앤다. 그리고 안경을 쓰고 티코를 탄다. 그 사람이 집에 있든 없든 가본다.  

 

 앞이다. 이사 가지 않은 듯하다. 3달 남짓이 지났다. 문을 두드린다. 그 때 웃음소리가 들린다. 문이 열리고 그 남자가 맥주를 손에 들고는 나를 쳐다본다. 웃음소리는 그의 친구가 낸 소리였다. 그는 나를 쳐다보고 입가를 닦았다. 나는 손에 든 모자를 건넨다. 그의 친구는 나와 그를 번갈아 보고는 바쁘다며 먼저 나간다. 그 사람은 여전히 내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뭔가 설렘이 차오르는 것을 알아챈다. 그 사람이 고갯짓을 하며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나는 스니커즈를 신고 안으로 들어선다. 방 안에 수족관 그 너머에 그의 침대 그대로이다. 내가 돌아서는 순간 그가 맥주병을 놓더니 나를 안았다. 나는 그대로 있었다. 뻣뻣하게. 그가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대고 더듬었다. 나는 저항했다. 그러자 그가 잠시 멈췄다. 나는 설렘이 있었지만 동시에 상처를 받았다. 

 

내가 주뼛대고 서 있자 나를 번쩍 안아서 침대로 데려갔다. 나는 순간 짜릿했다. 그 불가항력의 느낌이 손바닥으로 전해지더니, 그 사람 얼굴을 향해 손바닥이 찰싹하고 날아갔다. 그는 맞은 뺨에 손을 대고는 나를 넋 놓고 쳐다보았다. 나는 스니커즈를 신은 채로 저벅저벅 문을 향해 갔다. 그 사람은 다시 나를 잡았고 그 순간에 나는 쓰러져서 울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내가 다 울 때까지 쓰다듬는다. 그 사람은 침대 위로 나를 다시 데려갔다. 우리는 꼭 붙들고 누웠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오히려 머리카락이 짧아져 있었고, 나는 길어져있었다. 나는 그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천천히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서 부엌 소리에 깼다. 그가 스프를 끓였다. 야채스프였다. 따뜻한 스프가 넘어가자 몸도 마음도 편해졌다. 우리는 두 번째로 마주보고 웃었다. 그리고 다시 침대 위이다. 그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는 다시 올 줄 알았다고 말한다. 흥. 나는 콧방귀를 꼈다. 그 사람은 나를 찾아가보니 친구가 카페에 있었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휙 돌렸다. 그 사람이 갑자기 일이 생겨서 공백기가 생겼다며 차분하게 말한다. 나는 모로 눕는다. 그 사람은 여전히 차분하다. 그리고 내 어깨에 입술을 한 번 한 번 또 한 번 갖다 댄다. 그 신호에 나는 눈을 감고 그 사람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시 수족관 너머에서 한 호흡, 두 호흡, 고개를 넘기 시작했다. 길고 가파른 고개였다. 우리는 아주 가까이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두 눈을 고정시킨다. 우리의 입김이 서로의 입술에 포개진다.  

 

탁자 위에 안경이 있다. 그 사람의 모자도 그 옆에 있다. 나는 모자를 쓰고, 안경을 쓴다. 그 사람이 뒤에서 웃는다. 나는 그 상태에서 학 자세를 한다. 나는 그 사람에게 손짓을 하고 그 사람이 내 곁에 온다. 모자와 안경을 쓴 학. 그 사람이 두 손을 나의 손바닥을 잡는다. 아! 내가 요가를 배울 때 이 자세에서 그 사람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발끝으로 서 본다. 그 사람이 내 허리를 감싼다. 나는 팔을 뒤로 가져가서 뒤에 선 그 사람을 안는다. 모자가 떨어지고 내 몸이 거미자세가 되어버린다. 그 사람은 내 아치형 척추를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만져본다. 얼마나 버틸 수 있냐고 묻는 그 사람에게 내려달라고 한다. 그가 아치형으로 정점에 솟은 내 배꼽에 얼굴을 댄다. 나는 천천히 팔과 다리를 푼다. 단단한 나의 몸은 그를 충분히 받쳐줄 수 있었다. 우리는 학-거미-아치형에서 사랑을 나눈다.  

 

-이마에 이건 왜 생겼어? 

-몰라도 돼. 

-몰라도 돼. 몰라도 돼. 

-모르는 게 약이야. 

-약? 

-... 

-모자는 그동안 안 쓰고 다녔겠네. 

-... 

-여기를 만지고 있으면 내가 더 많이 사랑하는 것 같단말야. 

-... 

 

그 사람은 내 손을 잡고 못 만지게 했다. 손을 스윽 뺐다. 그 사람은 다시 내 손을 잡고는 가슴으로 가져갔다. 그 사람 손과 내 손이 가슴 사이에 껴서 우리는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었다. 바닥에 찰싹 붙어서 우리는 심장이 두근대는 것을 느낀다. 왜? 나는 그 사람 이름을 궁금해 하지만 물어보지 않을까? 왜 그 사람도 내게 이름을 말하지 않을까? 왜. 왜. 왜. 

 

우리는 찰싹 바닥에서 다시 한 번 휘몰아친다. 아무런 자세도 없이 배배 꼬였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이 그와 나 사이의 손이 느끼는 심장 박동이 점점 거세진다. 나는 눈을 감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내게 눈을 뜨라고 한다. 어디를 봐야할 지 잘 모르겠는데, 그 사람은 내 눈동자를 보고 싶어 한다. 내 눈은 그 사람의 표식에 가 있다. 우리의 몸이 바닥에서 요동칠 때 내  입에서 짧은 탄성이 나온다. 탄성은 점점 노래처럼 음정이 올라갔다. 그가 내 안에 들어왔다. 

 

그가 내 안에 있을 때, 물속이 떠올랐다. 몸에 느껴지는 압력 때문인가. 깊은 물속에 헛발질을 했을 때 느끼는 공포심 못지않은 뱃멀미가 난다. 아마 그래서 눈을 뜨기 힘든가보다. 그가 손으로 나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내 눈동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그에게 맞춰주려고 하지만, 내 눈동자는 고정되기에는 몸의 감각이 역부족이다. 그를 안에서 맞아들이고, 그의 몸무게를 받쳐주고, 나의 허벅지를 고정시키고, 그의 움직임에 다다르기 위해 나는 숨이 점점 가빠진다. 그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깊은 물속으로 잠수하고 있다. 오직 심장 박동 소리에 의지한 채.  

 

심해어에게는 눈동자가 필요 없다지. 오히려 불빛을 밝히는 촉이 있다고 들었다. 나는 눈을 감고 싶다. 더욱 깊이 들어가기 위해 푹 꺼지기 위해 눈을 감는다. 그 대신 촉을 세운다. 그것은 음성이다. 나의 목소리가 숨소리에서 외마디 소리로 바뀐다. 입술 모양이 동그랗게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 아! 하고 소리가 터진다. 그가 더 가까이 그의 하복부를 내 위로 바싹 붙인다. 나는 그의 출렁임에 의해 점점 길고 굵은 관을 통과하는 듯이 목소리가 커졌다. 그의 움직임과 나의 탄성이 미스터리하게도 4/4 사이즈의 바이올린 활이 된 듯하다. 그에 의해 나는 악기가 되었다.  

 

나에 비해 그는 너무나도 침묵을 한다. 숨소리도 죽인 듯이 그에게는 움직임만 있다. 그는 나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의 격정은 나를 완벽히 연주하기 위해 호흡을 고르는 연주자를 닮았다. 호흡에 시작과 끝이 없는 것처럼 그는 자신의 몸을 나에게 밀착시키고 그의 활로 나를 연주한다. 그의 손, 그의 눈, 그의 입술이 나를 물 속 깊이 데려간다. 나는 심해어가 된다. 눈을 감고, 불을 밝히고, 소리의 파장이 된다. 마지막에 다다르자 심해어는 눈을 뜬다. 그의 눈을 쳐다보고 나는 말한다.  

 

그의 욕실 속에서 나는 씻고 있다. 남자 욕실이 어떻게 되어있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그는 샤워젤이 다양하다. 샤워젤 중에는 새 것이 있다. 로즈 블라썸. 나는 그것을 뜯는다. 반짝이는 핑크색이다. 향이 몸을 에워싸자 황홀하다. 나는 거품이 몸을 다 타고 내려가는 내내 가만히 있었다. 그가 밖에서 문을 조금 열고 티셔츠를 안으로 넣어주었다. 향이 다 날아가기 전에 몸을 헹구고 물기를 닦았다. 머리카락은 대충 묶어서 꽁지머리를 한다. 그가 준 티셔츠는 길고 넉넉했다. 나는 그걸 걸치고 욕실 밖으로 나왔다. 그가 나에게 다가와서 킁킁 향을 맡는다. 그가 웃는다. 

 

우리는 옷을 챙겨 입고 집 밖으로 나온다. 나는 티코를 몰고 내 방에 간다. 그는 손을 흔들며 나를 배웅했다. 안경 모자를 챙겼다. 그가 모자를 나에게 주었다. 나는 내 방에 들어서자마자 옷을 벗는다. 내 몸은 하얗고 미끄덩거리는 듯하다. 나는 매트를 깔고 태양 예배 자세를 2세트 한다. 몸을 풀어준다. 머리를 감으러 욕실로 들어갔다. 시트러스 향이 나는 샴푸로 머리를 감는다. 헹구고 두피를 꼭꼭 눌러주고 수건으로 말린다. 내 검정색 단발머리는 향긋해졌다. 비발디 음악을 튼다. 세상에 참 평화는 없어라. 나는 그 노래를 반복으로 하고 침대에 눕는다. 

 

나는 어딘가에 갇혀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눈이 부시다. 밖에서 긁는 소리가 들린다. 마찰되는 소리가 점점 높이 올라가면서 귀가 아프다. 두 귀를 양 손으로 막자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린다. 심장이 두근두근 될 때 나는 입을 뻐끔거린다. 소리가 나지 않는다. 눈물이 흐른다. 뭔가가 콱 막힌 듯이 가슴이 답답해진다. 눈을 서서히 뜨자 입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람 같이 어딘가로 흘러간다. 긁는 소리와 함께 나의 목소리가 위로 올라가며 내 몸도 함께 올라간다. 가슴에 막힌 것이 풀리는 것 같다. 그래 좀 더 힘을. 그러자 내 입 안에서 말갛게 빛나는 진주가 나온다. 가슴이 뚫리고  긁는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나는 두 손을 저어서 어둠을 헤쳐내자 장막이 걷힌다. 그리고 그 앞에 거대한 심해어가 촉을 밝히고 있었다. 번쩍! 

 

침대에서 떨어졌다. 꿈이었다. 나는 심해어를 정말 보았다. 아름답게 빛을 내고 있었고, 빛깔이 선홍색으로 푸르스름한 실핏줄이 보였고, 물고기 같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만져보려고 했는데, 촉이 움찔하더니 빛을 꺼버렸다. 그리고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여러 가지가 섞인 소리였다. 길거리를 걸을 때 들리는 잡음 같기도 했고, 아가가 칭얼대는 소리 같기도 했고, 제트기가 날아가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심해어가 말을 했다. 그 말을 알아들은 나는 진주를 주었다. 진주는 더 이상 말갛지 않고 보랏빛과 레몬 빛이 섞여 있었다. 심해어는 다시 그 촉으로 불을 밝히고 휘익 사라졌다. 

 

여전히 세상에 참 평화는 없어라가 흐른다. 아주 잠깐 잠이 들었나보다. 머리를 기댄 곳이 축축했다. 나는 두 손을 내 배꼽 근처에 가져갔다. 보드랍고 둥근 내 아랫배. 마치 심해어가 그 곳에 있다는 듯이 나는 어루만진다. 나는 생각한다.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그 사람이 내 몸을 원했듯이 나는 심해어를 원한다고나 할까. 분명 심해어는 내게 다가왔고 말했다. 그 불빛 너머에 숨어 있었지만,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것을 나 혼자서 가질 수 있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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