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과 호
처음 몇 달 동안 친구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포기 했을 것이다. 내 뱃속의 심해어를. 노랑과 보라빛으로 물들은 그 진주를 그냥 한방에 끝냈을 것이다. 심해어를 만난 꿈을 꾸고 나서 나는 임신 테스터에 줄이 2줄 그어진 것을 알게되었다. 친구는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나는 아이를 원했고, 이마에 문장이 있는 남자는 뒷전으로 물러났다. 친구는 조용히 숨을 고르더니, 준비할 것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친구는 자신이 카페에서 아침과 저녁 근무를 할 터이니, 나는 오후에만 나와있으라고 했다. 오후 2시부터 6까지. 나는 충분히 해 낼 수 있으리라. 친구에게 고맙다. 호언장담을 했지만, 내 몸은 헛구역질과 호르몬의 변화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친구는 1주일에 6일 여는 카페에서 내게 4일 동안만 일을 할 것을 권했다. 친구는 나 대신 연장 근무에, 2일을 하루 종일 일했다. 나는 헛구역질로 줄어든 몸과 피곤한 정신력으로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3개월이 넘어서야 병원에 갔다. 의사는 내 배를 보더니, 아이가 둘은 되어보인다고 했다. 나는 농담인 줄 알았다. 헌데... 정말인지 나는 쌍둥이를 가졌다. 아이가 두 명이라고 했다. 둘 다 건강하고, 함께 잘 놀고 있다고 했다. 3개월이면 아직 아이 모습이 안 나타나지 않냐고 물었지만, 의사는 충분히 자기에게는 보인다며 아주 아주 축하한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두가게에 들어가서 고기만두와 김치만두를 시키고는 꼭꼭 씹어 먹으며 뱃속 아기 에게 말했다. 자. 둘이서 싸우지 말고 내가 먹는 이 만두를 나눠먹으렴. 나는 만두 두 접시를 깨끗히 해치웠다. 3개월하고도 7일만에 제대로 먹은 음식이었다. 친구는 내 소식을 듣고 더욱 더 숨을 고르게 쉬더니 쉽지 않군이라고 한마디만 했다. 친구는 스팀 우유를 한 잔 내게 권했다. 나는 마시며 아무 말도 못했다. 나 혼자 갖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진주는 결국 2가지 색깔을 지닌 것처럼 두 아가가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갸우뚱하다가도 뱃속에 아기들이 섭섭해 할까봐 아랫배를 스윽 만져보았다. 친구는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카페 책임은 자신이 질테니, 너는 뱃속 아가에게 집중하라고 말했다. 친구는 내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 사람에게 알릴거니?
그 날 밤, 혼자서 뒤척이며 그 남자에게 말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아닌지 내게 물어보았다. �그래 그 남자는 내게 연락처도 남기지 않았고, 나 또한 그 남자 이름도 몰라. 그럼 볼장 다 본 거 아냐?� �아니야, 그렇게 나쁜 남자같지 않았어. 내게 아기가 생겼다는 것을 한 번쯤은 알려줄 만 하잖아...� �그렇게 했다가 무슨 험한 말만 들을라고.� �그래도 아기 아빠잖아. 솔직히 쌍둥이 낳아서 기르려면 보통 힘으로는 부족할거야, 알려야 해.� �그럴만한 인간이면 벌써 내 카페에 찾아왔겠지.� �친구말로는 한 번도 모자 쓴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고 했어.� �아... 벌써 그 사람은 날 잊은거야. 그렇지...�
나는 잠들었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 아가들에게 태명을 지었다. 바로 금붕어들 이름으로, 은과 호. 은은 딸이고, 호는 아들이면 하고 조그맣게 기도도 드렸다. 하지만, 아직 그건 모른다. 의사 선생님도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쌍둥이들은 더 그렇다고 했다. 둘이 스위치를 한다나. 의사 선생님은 적당히 나이가 드시고 수염이 넉넉히 있는 분이셨다. 나는 중요한 임신 테스트를 할 필요가 있냐는 질문을 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나보고 요가를 해보라고 했다. 나는 웃었다. 제가 요기니에요. 의사 선생님은 안경 너머로 나를 보시며 허허 웃으시더니 그럼 문제 없다고 했다. 감사했다. 의사 선생님에게 아가가 궁금하면 또 오겠다고 했다. 궁금해하지 마세요. 산모가 행복하면 아가도 무럭무럭입니다. 마치 산파 도사라도 만난 것처럼 든든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아마도 만두가 먹고 싶었나보다.
7개월까지는 넉넉하게 일을 했다. 하지만 그 이상이 되자, 배가 너무 커져서 힘들었다. 친구는 집에서 쉬면서 요가를 하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아침이 되면 어항 속 은과 호에게 붕어밥을 주면서 배 속 아가들에게 인사를 했다. 아가들은 정말 스위치를 하는지 싸르락 거렸다. 배가 불러오자 요가하기도 만만치 않았다. 얼마전 까지는 엎드린 요가 자세도 너끈히 했지만, 배가 너무 커지자 그것은 무리였다. 나는 서서 두 팔과 두 다리를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간단한 동작을 주로 했고, 나비자세로 골반을 충분히 이완시키고, 소머리 자세로 골반을 다시 좁히는 동작을 해주었다. 라마즈 호흡법도 책을 통해 해보았다. 숨쉬는 시간이 자세히 나와 있었지만, 똑같이 따라하지 못했다. 나는 내 식대로 호흡시간을 조절해서, 들숨과 날숨을 소리내어 했다. 들숨에서는 아가들이 살짝 긴장하는 것처럼 아랫배가 당겨졌고, 날숨에서는 아가들이 휴우하고 긴장을 푼 것처럼 아래가 묵직하게 쏠렸다. 발레에서 플리에 동작이 좋다고 해서, 나는 의자를 한쪽에 놓고, 그 동작도 반복했다. 아랫배가 쏠려서 앞으로 고꾸라지지 않으려면 상당히 허리와 골반을 긴장하고 있어야했고, 두 무릎과 종아리 근육이 아주 유연하게 구부러 져야했다. 다행히 내가 했던 요가 동작과 상통하는 면이 있어서 동작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플리에를 하며 한 손은 의자를 잡고, 한 손은 균형을 잡게 길게 뻗어 주었다. 조용한 피아노 소나타 2악장을 틀어놓고 그 악장이 끝날 때까지 플리에 동작을 했다.
먹는 것은 정말 점점 더 많아져서, 나는 하루에 다섯끼를 먹었다. 내게는 돈이 충분하지 않았다. 나는 다섯끼 중에 2끼를 계란과 우유로 먹었다. 세 끼는 밥을 지어 먹는데, 유독 새콤달콤한 미역초무침, 미역냉국, 미역줄기볶음, 그리고 1주일에 2번은 쫄면을 먹었고, 1주일 2번은 골뱅이무침을 만들어야 했으며, 계란과 우유는 친구의 권유로 유정란과 산양 우유를 먹었다. 유정란을 구으면 정말 쫄깃하고 맛있었다. 한 번은 구은 계란을 한 번은 우유와 계란을 섞어서 스크램블 에그를 했다. 계란을 하도 먹어서 아가들이 병아리가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될 정도였다. 다행히 나는 계란을 무척 잘 먹었다.
몸이 불러오자 옷도 신경을 써야했다. 아름다운 가게에서 저렴하게 산모 옷을 골랐다. 좀 추레하고 단추는 느슨하거나 색이 바래있었지만, 그런 걸 탓할 때가 아니었다. 최대한 내 몸을 보호하고 돈은 적게 들어야했고, 나는 의외로 그런 외모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아가 둘이 나를 보호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었다. 예를 들어 몸이 무거워서 걷기가 힘들면, 버스를 탔고, 그러면 모두가 다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내 옷차림이 안되어 보였는지, 배가 유난히 불러서였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모습에는 미혼모라는 현실이 티가 났던 것도 같다. 나는 잘 챙겨먹었고, 꾸준히 요가와 발레 플리에를 했으며, 하루에 5끼를 챙겨 먹었지만, 얼굴빛은 조금 피곤해보인 것이 사실이다. 친구는 영양제가 필요하다고 챙겨주었는데,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 열심히 계란을 먹었고, 쫄면 속에 다양한 야채와, 골뱅이 무침과 미역을 꾸준히 먹었다. 내 입맛에 맞는 것을 만들어 먹으며 나는 입맛이 그다지 까다롭지 않다는 것이 뱃속 아가들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내가 라마즈 호흡법을 하자, 조산사를 불러서 집에서 아기를 낳을까라며 놀렸는데 그 말대로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느껴졌다.
일은 바로 그 때 쯤 터졌다. 9월하고도 16일이 지나서 곧 아기를 출산할 즈음이었다. 나는 좀 걷고 싶었고, 서점이었다. 2층을 올라갈 여력이 없어서 1층 코너를 슬금슬금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가를 위한 동화책도 재밌었고, 아기 용품이 끝없이 나와있는 잡지도 재밌었다. 맛있는 한그릇 요리가 담긴 책자도 눈요기가 되었다. 뒤뚱거리기가 싫어서 앉아있었는데,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조금 지친 눈으로 그곳을 향했다. 그 사람이었다. 이마에 문장이 있는 남자. 모자를 쓰지 않았고, 놀랍게도 이마에 문장이 없어졌다. 나는 잘못 본 걸 거야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눈길을 돌렸는데, 그 사람이 내 가까이 다가왔다. 가까이에서 보니 이마에 문장은 깨끗하게 지워졌고, 그 남자는 나를 아니 내 볼록한 배를 쳐다보았다. 나는 까마득한 광년의 빛을 바라보는 심정이었다. 일어설 힘조차 없어서 꼼짝 못하고 앉아있고 그 남자는 할 말을 잃고 내가 먼저 말을 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은과 호에요.
-은과 호.
-통성명이나 하죠.
그 사람과 나는 악수를 했고, 이름을 서로 얘기해 주었다. 그 사람은 악수한 손을 놓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너무 놀라서 아가들이 뻥 걷어차고 나오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바쁘지 않으면 저 좀 부축해주세요.
그 사람은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나는 순순히 따라갔다. 그 사람 차는 폴크스바겐이었다. 나를 계속 곁눈질하며 묻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아챘다. 당연하지. 이 아이들은 나와 당신의 작품인 걸. 차창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니, 집이 아니었다. 그곳은 그의 집이었다. 아니 그의 집이 아니라 큰 저택이었다. 그는 미안하다며 이 곳에 자기도 모르게 왔다고 했다. 나에게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한다. 나는 대답없이 차에서 내렸다.
-향이 없군요.
-그 때 그 차가 맞아요.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따뜻한 김을 코로 흡입했다.
-당신이 아기 아빠에요.
-그렇군요.
-연락을 할 수 없었어요. 당신이 올 줄 알았는데, 안 오더군요.
-미안해요.
그 말을 듣자 뱃속 아가들이 발길질을 했다. 나는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곧 출산일이 다가와요.
-함께 있고 싶어요. 가도 되겠죠?
-집에서 조산사를 두고 아기를 낳을거에요. 여유가 없어서요.
-미안해요.
-...
그 사람과 나는 마주 보았고, 푸훗하고 웃더니 마구 마구 웃기 시작했다.
-이마는 어떻게 된 거에요?
-어때 보이나요?
나는 말대신 손을 그의 이마로 가져갔다. 그 질감이 없어졌다. 너무 매끄러워서 손가락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제는 모자를 안 쓰겠군요.
-제게 모자는 단 하나 뿐이에요.
은이 먼저 나오고, 호가 나중에 나왔다. 은과 호를 그대로 이름에 박았다. 그 사람에게는 연락이 없었다.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인가보다. 친구와 나와 조산사는 아무 말 안했다. 아가들이 와앙하고 울어대자 우리 모두 정신이 없었다. 나는 북받쳐 오르며 눈물을 흘릴 줄 알았다. 아니었다. 라마즈 호흡을 하느라, 나는 매우 집중했고, 은과 호를 낳고 곯아떨어졌다. 아가들 목욕시키고, 뒷감당을 한 것은 친구 몫이었다. 친구는 깊은 숨을 쉬며 말했다.
-산모도 아가들도 건강하니 그걸로 된 거지.
반나절을 자고 일어났다. 내 몸은 놀랍도록 빠르게 호전되었다. 자궁과 골반이 자리를 잡는 것이 거의 아기를 낳음과 동시에 시작된 듯 하다. 요가와 발레 플리에와 라마즈 호흡을 무시할 수 없는 법. 나는 이은과 이호를 보고 속삭였다. - 안녕. 나는 요기니 바리스타야. 반갑다 얘들아. 세상에 태어난 걸 축하해. 네 이름은 은과 호야. 나는 너희를 안내하기는 하겠지만, 책임지지는 않아. 인생은 그렇게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거든. 인생은... 나는 인생은 다음에 할 말을 삼켰다.
아가들 젖을 주는 일이 정말 힘든 작업이었다. 두 아가 줄 젖이 내게는 없었다. 그래서 초유를 먹인 지 2주 후부터는 분유를 사먹였다. 은과 호는 나를 위해 차례 차례 울 줄 알았다. 은이 울어서 젖을 먹일 때, 호는 깨지도 않고 잘 잤고, 호가 깨면 은은 배가 불러서 잠이 들었다. 친구는 나를 위해 가물치를 약으로 다려왔다. 내 머리카락이 부스스하고 많이 빠지기 시작했다. 가물치 즙은 정말 고약했다. 무슨 물고기냐고 하자, 친구는 나를 3초간 쳐다보더니 물고기가 너를 잡아먹을 정도로 크다고 했다. 나는 앞날을 위해 다 먹었다. 친구에게 고마웠다. 친구는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한 번도 안 했지만, 깊이 숨을 쉴 때 나를 위해 애썼다.
은과 호가 말을 잘 들어도 내가 카페에 갈 수 있는 여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요가는 했다. 은과 호가 다 잠든 시간에 나는 빨래와 설거지를 하고, 간단히 식사할 수 있게 배추국이나 시금치국이나 감자국을 끓였고, 그 모든 것을 마치고 송장 자세로 내 복부를 풀어주었다. 깊은 들숨에서 허리와 아랫배와 전신이 골고루 뻗어나가는 기분이었고, 날숨에서 짜릿짜릿하게 몸 전체가 순환되는 기분이었다. 송장 자세로 피로를 싹 가시고나면 수리야나마스까라를 시작했다. 하다보니, 빈야사를 하게 되었다. 의외로 몸이 굳어있지 않았다. 나의 몸은 탱탱하면서 동시에 유연했다. 오히려 임신 전에 뻣뻣했던 자세, 즉 골반 자세 동작들에서 완숙한 동작을 구사할 수 있었다.
두 아기 예방 접종이 만만치 않았다. 보건소를 찾아가지 않고서는 경제적 여력이 생기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간 적이 있다. 의사 선생님은 나와 친구를 번갈아 보고 참 복이 많으시네요...했다. 나와 친구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웃었다. 예방 접종을 다 마치고 무사히 집까지 돌아오는 길에 나는 댐이 무너지는 것처럼 울었다. 친구는 집을 가는 길목에서 차를 돌려서 시내 외곽으로 드라이브를 갔다. 나는 차 안에서 우느라 어디로 가는 지도 몰랐다. 친구는 깊은 숨을 쉬더니 차창을 내려주었다. 바람이 눈물 젖은 양 볼을 때렸다.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도록, 코가 빨갛게 되도록 우는 시간이 계속 되었다. 울음이 멈추었을 때는 눈 앞에 바닷물이 일렁이는 수평선이 보였다.
친구는 오늘 하루 카페는 쉬어야겠다며 바다 구경이나 하자고 했다. 은과 호는 나를 따라 울다가 잠이 들었다. 친구가 나보고 차 밖으로 나가서 바다를 보라고 했다. 친구는 은과 호 챙긴다며 혼자 나가라고 했다. 바다로 가는 길은 모래사장이었다. 몸의 균형이 이쪽 저쪽으로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푹푹 빠지는 발을 무겁게 끌고 파도 가까이 다가갔다. 파도 거품이 밀려오고 철썩대는 소리를 가만히 서서 느꼈다. 그 날이 추웠던가. 코 끝으로 짠내가 느껴졌고 바다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겨울이었구나. 모자를 썼다. 나는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보며 수평선을 따라 걸었다. 나는 호흡을 했다. 라마즈 호흡과 요가 호흡을 하며 추위를 물리쳤다. 점퍼 소매 안으로 두 손을 넣고 양팔을 엑스자로 모은 후에 고개를 푹 수그리고 호흡소리와 발걸음과 파도 소리에만 집중했다. 답이 안나왔다. 그것이 그 날 얻은 것이었다. 다만 내 몸은 공이 빠르게 회전한 것처럼 뜨겁고 단단해졌다.
다음 날부터 나는 아가 둘을 등에 업고 카페에 나갔다. 요기니 바리스타는 쌍둥이를 업은 바리스타가 되었다. 엄마...라고 하기에는 아빠가 없다. 나는 손님들이 은과 호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을 즐겼다. 다행히 나를 보기보다 귀여운 아가들에게 집중했다. 힘이 들면 은과 호를 눕히고 나무자세를 했다. 상하체가 위와 아래로 길게 뻗어나가는 중심에는 내 호흡과 정신이 머문다. 나는 나무가 되어야했다. 그러자 그렇게 되었다. 한 번은 손님이 내 요가 자세를 유심히 바라보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너무 고요히 그 자세를 유지하자 손님이 방해를 할 엄두를 못냈다. 나는 꽤 유명해졌다. 요기니 바리스타이자 쌍둥이를 낳은 바리스타. 무언가가 나를 도와주는 것 같았다. 가까이 내 친구를 비롯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