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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 귀퉁이에 사선으로, 하늘거리는 먼지. 그 먼지가 바람에 흐느적거리는 모양새를 보면 꼭 그 여자의 춤사위 같다. 메마른 몸에 폭이 넓은 옷가지를 걸치고 휘적휘적 걸으며 손짓, 발짓으로 허공에 그려대는 호()를 보는 것은 내 일상 속에 작은 구멍을 내어 나를 그 속에서 조용히 쉬게 해준다. 그 여자는 꼭 머리카락을 길게 땋아서, 은 머리까지 손발과 함께

()를 그린다. 마치 치타의 꼬리처럼, 그 머리카락은 빳빳하게 서서 몸 전체에서 마지막으로 균형을 잡아주는 기능을 하는 것 같다. 그 여자는 나이가 좀 들었다. 다른 무용수들이 빠르게 발을 구르고, 회전하고, 공중으로 뛰는 반면, 그 여자는 걸으며 손발과 땋은 머리로 곡선을 그려낸다. 그 춤을 보고나면 거미줄처럼 걸려있는 먼지가 떠오른다. 아무런 득도, 해도 없는 먼지. 그 여자는 그런 존재감으로 춤을 춘다.

 

  오늘은 그런데, 그 여자의 머리 위에 족두리로 보이는 화관이 얹어져 있다. 그 머리 위에서 파르르 떨고 있는 여러 꽃 장식들이 수근대는 모습은 그 여자가 만들어내는 공간에서 작은 속삭임처럼 내 귀를 간지럽힌다. 그 여자의 시선은 항상 손 끝이나, 발 끝, 혹은 등 뒤로 지나가는 바람에 머물러있다. 오늘은 그런데, 눈을 감고 화관의 속삭임을 듣는 지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그 여자는 또한 무용수 화장을 하지 않아서 나이가 가늠이 안 되기도 한다. 화관이 오들오들 떨고, 눈꺼풀에 있는 미세한 속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인다. 그 여자는 오늘 따라 팔을 가만히 두고 발걸음에 집중한다. 발걸음은 지그시, 땅을 누르는 힘이 나에게 전달되는 그런 모양새로 내 마음이 함께 한다. 수수한 옷가지에 팔은 얌전히, 발걸음은 다소 무겁게, 화관만이 덜덜덜 떨며 움직임을 표현하는 춤사위가 그 여자의 눈꺼풀처럼 평안하다. 나는 그 여자가 만든 공간 안에서 안온해진다.

 

  나는 그 여자의 춤사위를 사진대신 글로 쓴다. 사진이 순간을 담아내지만, 글은 그 순간을 영원한 인상으로 풀어낸다. 그 여자는 춤사위가 끝나자, 여전히 눈꺼풀을 덮은 채로 천천히 배꼽인사를 했다. 화관이 파르르 떨고 있고, 그 외에는 무거웠다. 소리도 공간도 그 모습 속에 봉인되는 순간이었다. 음악이 있었던가? 그 여자의 춤에는 오직 북소리만 있다. 그것도 단 하나의 북소리가 긴 호흡으로 드문드문 울린다. 그 여자는 첫 북소리가 울리면 고개부터 든다. 시선은 항상 저 너머에 있고, 고개가 들리는 순간 공간이 열린다. 공간에 그려지는 곡선들은 어지럽지 않고 오히려 규칙적이다. 그것은 색이 없는 만다라와도 같다. 그 여자의 춤은 공간 안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은 아름다움도 아니다. 그것은 움직임도 아니다. 그 여자의 춤은 그저 지나가는 바람이다. 해서 나는 내 일상에서 그 여자를 통해 쉼을 얻는다.

 

  오늘은 그런데, 그 여자를 인터뷰하게 되었다. 내가 쓴 글이 그 여자 마음에 들어서 그 여자는 내 인터뷰 요청을 받아주었다. 나는 그 여자를 만나러 공원으로 간다. 그 장소는 그 여자가 정한 곳이다. 15분 먼저 도착했다. 공원은 아담했고, 공원수가 제법 울창했다. 나무 벤치대신 돌계단에 앉았다. 나는 기자가 아니다. 나는 사진을 찍지 않는다. 나는 그 여자를 바라보고, 이야기 나누고, 머릿속에 담았다가 글로 써 내려갈 것이다.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고, 어디선가 탁탁거리는 소리가 퍼진다. 나는 그 소리를 따라 눈길을 주었다. 그 여자는 쪽빛 색깔 치마에 청자켓을 입고, 썬글라스를 꼈다. 그리고 왼손에 우산이 들렸다. 아니 들지 않고 땅에 한번 씩 북소리마냥 콕콕 찧고 있었다. 걸음은 힘찼지만 바쁘지 않았고, 시선은 썬글라스에 가려져있다. 나는 엉덩이를 돌계단에서 떼고 그 여자를 마주본다. 적당한 거리에서 그 여자가 멈추었고, 살짝 고개를 바람결 따라 움직이더니,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 여자는 꼿꼿히 섰다. 바람이 내 등 뒤에서 그녀를 향해 천천히 나부낀다. 북소리가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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