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석은 속이 메슥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어제 마신 폭탄주 때문에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목구멍 속 침이 말라왔다. 이럴 때는 해장 커피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무래도 그걸 벌컥벌컥 마셔야겠다. 스타벅스로 갔다. 안녕하세요. 스타벅스입니다. 웅성 웅성거리는 손님들이 많았다. 형석은 속이 더욱 울렁거렸다. 형석의 차례이다. 아메리카노를 해장 커피로 만들어주세요. ? 바리스타가 다시 묻는다. 해장 커피 말이에요. ! 손님 커스텀 메뉴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사이렌 오더로 주문해주시겠어요? ? 뭐요? 사이렌? 바쁜 바리스타는 재빨리 설명을 하더니, 다음 손님 주문을 받는다. 형석은 어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일단 자리에 앉았다. 핑드 고객님 주문하신 초코초코 브루드 헤이즐넛 나왔습니다. 바리스타가 주문한 메뉴를 목청껏 외친다. 형석은 아무래도 잘못 들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벽에 스타벅스의 로고가 눈에 띤다. 초록색 여자의 모습이다. 세이렌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형석의 배 안에서 그 세이렌이 노래를 부르는지 머리가 쿡쿡 쑤신다. 동그라미 안의 세이렌이 세모처럼 형석의 머리를 쿡쿡 찌르는 것이다. 형석은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해장 커피가 아니라 비닐이 필요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자 금방이라도 구토가 올라올 것 같다. 형석은 벌떡 일어난다. 화장실로 간다. 나무 빛깔로 인테리어 되어있는 화장실은 깨끗했다. 달콤한 방향제 향기가 난다. 문을 벌컥 열고는 형석은 좌변기를 움켜잡는다. 우욱. 누렇고 멀건 액체가 나온다. 다시 우욱. 형석은 이곳이 카페인지, 아직도 술집에 있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간다. 좌변기 물을 내리고 까끌까끌한 입 안을 물로 헹군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이런 고급 카페와는 거리가 멀다. 큼큼한 냄새가 입 안에서 나는 것 같다.

 

 

 

    형석은 화장실에서 나와서 일단 미지근한 물을 주문한다. 카페는 넓고, 손님들이 많아서 바리스타는 그가 주문을 했는지 안 했는지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형석은 천천히 물을 다 마신다. 물을 다 마시고 조금 기다리자 쑤셨던 관자놀이가 느슨하게 풀리는 듯하더니, 졸리기 시작한다. 그의 눈에 비친 초록색 세이렌이 이번에는 자장가를 불러주는 듯하다. 눈을 감은 형석은 고개를 수그리고 잠을 잔다. 바리스타의 외침 소리와 웅성거리는 손님들의 목소리, 커피 머신 소리가 섞여서 묘하게 인공적인 파도 소리를 내는 것 같다. 그의 귓바퀴 속으로 세이렌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그는 점점 잠 속으로 빠져든다. 구석에 있는, 다리가 기다란 의자에 앉은 그는 고개를 수그리고 석고상처럼 움직임이 없다. 조용한 숨소리가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부이다. 스타벅스의 모든 인간들이, 분주히 커피를 만들고, 커피를 마시고, 대화를 나눌 때, 그만 홀로 잠에 빠져있다. 그만이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들은 것 같다. 한차례 손님들이 뒤바뀌고 한 시간이 족히 흘렀을 때 쯤, 형석은 갑자기 잠에서 깬다. 크게 숨을 들이마신 그는 이곳이 어디인지 분간을 못한다. A-56번 고객님 주문하신 자바칩 푸라푸치노 나왔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서야 형석은 이곳이 스타벅스 임을 안다. 의자에서 슬며시 내려온 그는 다시 한 번 벽에 있는 스타벅스 로고를 쳐다본다. 세이렌은 입을 꾹 다물고,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다. 언제 또 노래를 불러줄지 모른다. 형석은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가져가 부드럽게 만지고 나서 주문대로 간다. 그는 아메리카노 아이스를 시킨다. 테이크 아웃이다. 메슥거렸던 속이 풀렸다. 사정없이 관자놀이를 쿡쿡 쑤셨던 세모도 사라졌다. 비닐은 이제 필요가 없어졌다. 그는 해장 카페 맞네! 하고는 피식 웃는다. 벽에 있는 세이렌이 알 듯 모를 듯 미소를 보낸다. 형석도 곁눈질로 세이렌을 쳐다보며 미소를 띄운다. 그의 손에 얼음이 동동 떠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들려져 있다. 그는 다른 이들처럼 분주한 발걸음으로 스타벅스를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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