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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지 - 반구대 암각화 이야기
구광렬 지음, 이종봉 그림 / 새움 / 2021년 12월
평점 :
'누가, 어떻게, 왜' 저토록 수천년을 견뎌온 깊은 새김을 남겨놓았을까.
울산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선사시대 암각화 유적이다. 사람의 전신, 얼굴, 바다와 육지이 생물, 수렵이나 어로와 관련되 도구, 당시 인간들의 생활상 등 300여 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특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고래를 사냥하는 매우 사실적인 그림은 약 7000년 전 신석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서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포경에 대한 기록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거북 한 마리가 넙죽 엎드린 형상을 하고 있는 곳, 바로 반구대(盤龜臺)에 오랜 시간 녹아 있던 이야기. 구광렬의 <꽃다지>는 문명의 여명기에 살았던 멀디 먼 우리 선조들의 삶을 표현했다. 반구대의 흐릿하던 그림이 <꽃다지>에 의해 모습을 드러내며 되살아난다.
태화강 부족과 신석기 시대 반구대 암각화의 탄생이 우리의 기억에 살아있듯 느껴진다. 권력 투쟁과 사랑, 주변 부족과의 경쟁과 공존 등 신석기 시대 한 부족의 모든 것이 <꽃다지>에 들어있다. 부족의 우두머리인 '으뜸'과 모계사회를 지탱하는 '큰어미'의 부족의 연명을 위한 고뇌와 결단이 생생하다. 이들 주변의 '버금', '마름', 당골레', '알리미'와 같은 부족의 권위 체계도 흥미롭다. '으뜸'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알리미'가 역으로 마을의 여론을 으뜸에게 전한다는 설정도 눈길을 끈다.
으뜸 하의 아들 큰주먹과 그리매가 보여주는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현대 정치에도 유효한 것으로 읽힌다. 부족의 생존을 위해 '큰어미'가 짊어져야하는 무게역시 고스란히 느껴진다. 사냥을 잘하고, 강한 힘을 가졌지만 지혜와 덕이 모자라는 큰주먹, 슬기롭고 덕망이 있지만 백성을 먹일 근력이 부족한 그리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부족을 위해 인내하는 꽃다지 등 세 주인공의 삶이 낯설지 않다.

"으뜸이 되기 위해서는 몸, 머리, 가슴...... 모두가 튼실해야 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슴이다.
가슴 속 따뜻함은 눈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때가 지남에 따라 다른 이들의 가슴으로 파고 든다.
어차피 몸, 머리, 가슴이 모두 튼실한 이가 없다면
가슴이 따뜻한 이가 으뜸이 돼야 한다.
그 가슴으로는 한 하늘의 무리도 이끌 수가 있다.-매발톱
으뜸 하는 후계자를 정하기 위해 두 아들에게 묻는다. '으뜸은 뭣 하는 사람인가'. 두 아들의 대답은 상이하다. "온 마을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어깨에 메고 갑니다. 슬기로움, 끈질김, 부지런함으로 온 마을을 이끌어야 합니다"라는 그리매의 대답, 그리고 "사냥하지 않고 사슴의 생간을 먹고, 낚시 않고 새눈치를 구워 먹는 사람"이라는 큰주먹의 말.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어느 쪽이 진정한 지도자상인지 분간이 가능하다.
'끄트머리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한 답역시 생경하지 않다. 끄트머리는 우두머리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쓰였다. 질문에 머뭇거리던 힘을 상징하는 후보자는 "도마뱀 꼬리 같은 것"이라 말한다. 우두머리가 살기 위해 도망칠 때 버리고 가는 것이 '끄트머리', 즉 국민이란다. 특히 대선을 앞둔 지금 시점에서 더욱 끔찍하게 들리는 신석기 시대의 답이다. 누군가가 떠올라 섬뜩한 느낌마저 준다.



"오메, 세오디 서노바살." 용서를 구하는 이 소리는 '큰얼' 가운데 '큰얼'인 고래를 향한 기도다. <꽃다지>는 고래사냥에 얽힌 이야기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굶주린 마을을 먹여 살릴 희망인 고래를 향한 경외와 이해, 그리고 사냥에 대한 기록-암각화-을 남기는 과정을 세세히 그려내고 있다. 저자가 소개한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장은 반구대 암각화가 세계적인 문화 유산인 이유로 "인류 최초의 포경에 관한 기록일 뿐 아니라 그 연대까지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꼽았다고 한다.
<꽃다지>의 작가는 반구대 암각화를 두고 "그림이 아니다"고 했다. "가슴에 새겼기에 순전히 그리움"이라고 강조했다. "진정 그리움이란 그렇게 연필로 종이에 그리는 게 아니라, 원시의 돌로 가슴에 새김"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리뷰어스 클럽 소개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