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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의 밤 ㅣ 안 된다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청미래 / 2022년 4월
평점 :
이런 소설은 여태껏 보지 못했다. 보통의 미스터리물이라면 스토리에 흠뻑 몰입하면서 트릭이나 반전에 빠져드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면, 미치오 슈스케(道尾秀介)의 <절벽의 밤(원제: いけない)>은 완전히 다른 형식의 재미를 전한다.
작가가 마련한 장치에 놀라거나 함께 두뇌싸움을 벌이는 방식이 아니라 작가가 제시하는 사실을 기반으로 전체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분석하도록 이끈다. 독자는 미치오 슈스케의 글과 그림을 통해 진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글뿐이 아니라 그림역시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 마지막 한 장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절벽의 밤>은 해변을 따라 접해있는 작은 도시 하쿠타구 시와 가마쿠라 시를 배경으로 한다, 특히 그 사이에 위치한 유미나게(弓投げ) 절벽이 핵심 장소다. 유미나게 절벽은 자살의 명소로 유명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곳에 죽은 영혼들이 우글우글 몰려 있으며, 눈이 마주치면 저세상으로 끌려간다고 여긴다.
'유미나게'에서 '유'를 빼면 '미나게(身投げ)', 즉 투신한다는 뜻의 단어가 되니 지명이 예사롭지 않다. 바다를 향해 가재 집게발처럼 튀어나온 낭떠러지를 중심으로 사건은 전개된다. 하지만 이곳에서 자살이 많이 일어나는 이유는 절벽 이름 때문이 아니라 방해하는 사람이 아무데도 없기 때문이며, 간단히 목숨을 끊어줄 거친 물결이 절벽 아래 늘 출렁거리기 때문이란 것을 안다.
'유미나게 절벽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그림의 수수께끼를 풀어서는 안 된다'. '거리의 평화를 믿어서는 안 된다' 등으로 구성된 책은 각각의 사건이 등장하지만 결국 하나로 연결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야기를 이어주는 매개는 역시 유미나게 절벽, 그리고 십왕환명회라는 사이비 종교단체다. 죽은 사람이 육도, 즉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 수라도, 인간도, 천상도 중 어디에 환생할 지 판단하는 역할을 맡는 십왕이 있다. 여기까지는 불교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십왕환명회는 생전에 악했는지, 선했는지 상관없이 죽은 사람이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나도록 십왕과 교섭한다고 주장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이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유미나게 절벽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어린이집교사 구니오의 불행한 교통사고에서 출발한다. 유미나게의 전설과 구니오의 사고는 <절벽의 밤>을 열어주는 장막과도 같다. '오후 5시 42분', '오후 7시, 36분'. 감정이 없는 여자 목소리까지도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는 구성이 놀랍다.
가족과 함께 중국에서 건너온 초등학생 마커(馬珂)와 친구 야마우치가 등장하는 '그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편은 요괴의 전설과 맞물려 기묘한 분위기를 나타낸다. 중국에서 흔한 성씨이며, 예쁜 구슬을 뜻하는 마커지만 일본에서 그 한자는 '바카'로 읽힌다. 그래서 마커는 어려서부터 외롭다.

"가만히 서 있다가 옆으로 다가온 사람의 소맷자락을 잡아. 소맷자락을 붙잡힌 사람은 죽는단다. 할아버지. 반대로 놈의 소맷자락을 잡으면 죽일 수 있어"
- 산 속에 사는 무시무시한 요괴 '시낭'에 대한 할아버지의 이야기
'그림의 수수께끼를 풀어서는 안 된다'는 형사 다케나시에 관한 이야기다. 십왕환명회의 영업부장격인 미야시타의 자살에 대한 의문을 품고 추적을 개시한다. 마지막 편 '거리의 평화를 믿어서는 안 된다'는 <절벽의 밤>을 깔끔하면서도 찝찝하게 마무리해준다. 우리가 놓친 사실이 있는지, 그로 인해 파생된 일들의 결과와 영향은 무엇인지 이해를 돕는다.
<절벽의 밤>은 끊임없이 강조한다. 절대 잊지 마시라. 독자는 마지막 글 한 줄, 삽화 한 장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