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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가 도망쳤다 - 2025 서점대상 수상작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9월
평점 :
*리뷰어스 클럽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본 도쿄의 번화가 긴자. 엄청난 인파와 교통량으로 유명한 그곳은 주말이면 일정 시간 동안 차량을 통제하는 '보행자 천국'이 주어진다. 이 '천국의 시간' 동안 벌어지는 사람사는 이야기, 바로 아오야마 미치코(青山美智子)의 <인어가 도망쳤다(人魚が逃げた)>다.

"내 인어가 사라져서....도망쳤어. 이곳으로."
유럽 귀족이나 입을 듯한 복장인 화려한 장식이 달린 재킷에 새파란 바지, 긴 검정 부츠를 입은 왕자가 '천국의 시간'에 나타났다. 그의 목적은 바로 정해진 시간 내에 사랑하는 인어를 찾기 위함이다. 안데르센 동화에서 툭 튀어나온듯 왕자는 당황하는 사람들 사이를 자유롭게 헤집고 다닌다. 도망친 인어를 좇아서. 아마도 인어찾기에 나선 왕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보행자 천국의 시간'과 같으리라. 자유롭게 열린 천국. 형형색색의 보행자들이 넘쳐나는 거리말이다.

<인어가 도망쳤다>는 '사랑은 어리석어', '거리는 풍요로워', '거짓말은 멀리', '꿈은 조용히', '당신은 확실히' 등 다섯 편이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모든 등장인물은 인지하건 못하건 간에 서로 얽혀있다. 무엇이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가상인지 모호한 설정은 책의 매력이다. 어쩌면 우리 삶도 작가의 고민과 닿아있을 지도 모른다.
"연기는 말이야. 괜객석에서 제일 잘 보이지. 무대에 선 우리는 잘 몰라."
책은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른 역사와 드라마를 품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 결정하고 확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주위의 시선과 세간의 평가에 휘둘려 정작 자신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무엇이 소중한 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귀중한 작품이다.

원작에서는 인어공주가 거품이 된 뒤 곧바로 사라지지 않고 '공기의 요정'이 되어 300년 동안 사람들에게 바람을 보내고 꽃향기를 흩뿌리며 모두가 기운을 차릴 수 있도록 도와 비로소 영원한 영혼을 얻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물거품으로 끝나버린 슬픈 사랑이야기에 더욱 관심을 둔다는 것도 <인어가 도망쳤다>가 남기는 여운으로 읽힌다.
긴자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일상에 스며든 허구가 마냥 신비롭지만은 않은 이유는 바로 현실의 세계와 별반 다름없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인어가 도망쳤다>의 매력, 실제와 가상을 허물어 억지로 구분하지 않도록 만드는데 있다. "지금 세계는 진짜 현실일까. 내 책도 정말 내가 쓴 걸까 의심될 때가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