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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곧 죽을 텐데
고사카 마구로 지음, 송태욱 옮김 / 알파미디어 / 2025년 9월
평점 :
*리뷰어스 클럽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라?', '뭐지, 이건'하며 책의 앞부분을 다시 들춰보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만큼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으로 전개되거나, 등장인물과 주된 상황에 대해 지금껏 '오해'하면서 읽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사카 마구로(香坂鮪)의 <어차피 곧 죽을텐데(こうさか まぐろ)>가 그렇다.
주연과 조연이 뒤바뀌고, 처음과 끝 모든 것이 뒤틀린다. 심지어 등장인물의 성별과 나이까지 혼동을 주는 특이한 구조의 미스터리물. "처음부터 끝까지 함정뿐이다. 가장 큰 함정은 작풍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最初から最後までずっと罠ばかり。最大の罠は作風そのものかも。)"라는 작품 소개 그대로 읽는이는 작가의 함정을 즐기게 된다.

한 외진 별장에서 사흘 간 벌어지는 희한한 모임.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들이 회원인 '하루살이회'가 개최되고, 탐정 나나쿠마 스바루와 그의 조수 야쿠인 리쓰가 '특별 게스트'로 초대된다. 각자 다른 사연과 병으로 시한부 삶을 이어가는 이들이지만 그들에게선 오히려 여유가 전해지는 이상한 모임. 특별한 손님 둘은 그들 속에서 사망사건을 맞게 된다.
'이미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 그리고 가만히 두어도 어차피 곧 죽을 사람이다. 그런데 굳이 죽일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곧 죽을텐데>는 바로 이 물음에서 출발한다. 소수의 내부인들로 구성된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라는 '클로즈드 서클(Closed Circle)'이라는 구조아래있지만 동기와 범인 찾기는 기존 미스터리의 전개 방식과 확연한 차이를 준다. 작가 스스로 책에서 설명하는 미스터리의 가지 요소 '더닛(Why don it)'과 '하우더닛(How done it)'이 모두 녹아 있다. 즉, 범인 찾기보다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행동의 필연성을 쫓는 구조(와이더닛), 어떻게 범행이 이뤄졌는지 수단과 과정에 촛점을 두는 구조(하우더닛)가 동시에 이야기의 긴장감을 높여주는 작품이다. 물론 범인찾기는 기본이고.

자연사와 의문사를 두고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치열한 논쟁 장면은 그들의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삶에 대한 자세를 보여주는 느낌마저 준다. '의학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들에게 죽음이란 무엇일까.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순간>에 나오는 죽음의 5단계-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이 혼재되는 상황이 바로 <어차피 곧 죽을텐데>를 뒤덮고 있다.
자칫 스포일러가 될까 작품 소개와 리뷰조차 조심스러운 기발한 반전이 숨어있는 책 <어차피 곧 죽을텐데>다. "최고 연기자와 초보 연기자가 역전되었다." 특이한 모임의 사람들과의 첫 만남에서 나오는 탐정의 이 혼잣말이 어쩌면 작품에 대한 작가의 힌트가 될 수도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