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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백의 길
메도루마 슌 지음, 조정민 옮김 / 모요사 / 2025년 1월
평점 :
"1920~1930년대 일본 본토에서는 식당 앞에 '조선인, 류큐인 사절'이라는 벽보가 붙기 일쑤였고... 할머니는 일본인 동료로부터 '썩을 놈의 오키나와, 돼지나 죽이는 주제에'라는 욕설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혼백의 길(魂魄の道)> 가운데

오키나와 전쟁을 둘러싼 이야기를 담은 작품 <혼백의 길(魂魄の道)>의 저자 메도루마 슌(目取真俊)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겉만 번지르한 평화'를 구호로 내세우는 일본을 향해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 지배의 역사를 정당화하고, 그 이전에 류큐국을 무력으로 위협하고 병합한 역사도 당연한 일인 양 이야기되고 있다"고 직격했다.
그의 지적대로 히로시마에서도, 오키나와에서도 반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현재의 일본이 풍기고 있는 비릿함은 여전하다. 오히려 피해자인 척 온갖 평화비만 잔뜩 세워둔 모습은 더욱 가관으로 느껴진다.

<혼백의 길>은 다섯 편의 짧은 이야기로 엮여 있다.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던 오키나와의 병사가 자신보다 더욱 힘없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던 오키나와 주민을 말하는 '혼백의 길'을 시작으로 '이슬', '신(神) 뱀장어', '버들붕어', '척후' 등으로 이어진다. 전쟁의 참혹함을 배경으로 일본이라는 나라의 이중성이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도무지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었던 류큐인-오키나와 주민-의 설움이 그대로 전해지는 작품에서 동병상련의 아픔이 전해지기까지 한다.
오키나와 주민과 일본군 사이의 단절을 명확히 보여주면서 미군보다 무서운 아군(일본군)의 참혹함이 드러나는 '신 뱀장어'와 '버들붕어'가 주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작가는 <혼백의 길>을 '기억을 둘러싼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그런 이유로 '잊어서는 안 돼', '기억하겠다'는 의지가 책 곳곳에 나타난다. 읽는이역시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을 이야기다.

우리와 비슷할 '한(恨)'을 품고 있던 오키나와 주민들은 미군 통치하에 있던 오키나와가 1972년 본토로 복귀할 때까지 무려 27년간 여권이 없으면 본토에 갈 수도 없었다고 한다. 오키나와 사람들이 일본 본토인을 가리키는 말인 '야마톤추', 한편 오키나와 주민들이 자신들을 구별해 스스로를 가리키는 '우치난추'는 아직 살아있는 말이다.
"아군은 반드시 이길 것이다. 미영 연합군을 격멸해 황국을 지켜낼 것이다." 그들의 공허한 주장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영혼이 고통을 겪었는지, 지금도 상처로 헤매고 있는지 <혼백의 길>은 보여준다. 마침 오키나와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되지않아 접하게 된 작품이라 눈에 익은 풍경, 기억날듯한 지명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작품, <혼백의 길>이다.(*)
*컬쳐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