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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대소동 - 묫자리 사수 궐기 대회
가키야 미우 지음, 김양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9월
평점 :
"남편 묘에는 죽어도 들어가고 싶지 않아(夫の墓には死んでも入りたくない)."
사십구재를 앞두고 공개된 어머니의 유언이 온집안을 뒤흔든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일본 사회를 넘어 우리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킬 만하다. 죽음을 앞둔 당사자, 그리고 남은 가족들이 신경쓰는 문제 중 하나인 '묘'에 대한 의식의 변화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남편 묘'라는 말에 천착한 아버지는 "그야 분골하면 되지."라고 선뜻 말하지만, 어머니의 속뜻은 그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죽음의 문턱에서 딸의 손을 잡고 남긴 한 마디가 '분골'로 끝날리가. 그것도 두 손으로 꼭 잡아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쉰 목소리로 "절대로 아버지와 같은 표에 넣지 않겠다고 약속해줘"라는 당부였으니.

가키야 미우(垣谷美雨)의 <파묘 대소동-묫자리 사수 궐기대회(원제:墓じまいラプソディ)>는 사후에 대한 한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 혹은 장례문화나 조상을 모시는 여러 관습 전반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여기에 일본에 존재하는 부부동성제-남편이나 아내가 결혼하기 전에 쓰던 성을 배우자 쪽으로 바꾸는 제도. 대부분 남편 성을 따른다고 한다-까지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몇 해 전인가 동일본대지진 이후를 배경으로 한 <여자들의 피난소(女たちの避難所)>를 통해 가키야 미우를 접했던 적이 있다. 어쩌면 재난보다 가혹할 지도 모를 여성에 대한 일본 사회의 모습을 가벼운 터치로 풀어냈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파묘 대소동>은 서두에 소개한 '폭탄 선언'을 남긴 어머니의 '마쓰오 가문'과 그 가문과 결혼을 고민하고 있는 '나카바야시 가문' 등 두 개의 가문을 오가며 전개된다. 흔한 말로 '전통', '현대식' 정도로 그치지 않고 가족간의 다양한 의견과 관습이 충돌하며 이끌어가는 이야기가 상당히 흥미롭다.
"본심을 말하자면 내 유골 따위 쓰레기통에 버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사후세계 같은 것은 전혀 믿지 않으니까. 유골은 단지 칼슘 아닌가. 생선 뼈와 뭐가 다르지." 수목장을 원하는 어머니의 유언을 그대로 수긍하며 서슴없이 직설을 날리는 며느리 사쓰키가 '마쓰오 가문'의 소동을 이끌어 간다. 가족묘를 고집하는 고모에게는 "그럼 고모가 돌아가시고 난 뒤 파묘하면 되겠네요."라고 돌직구를 던져가며.

어머니의 유언을 곱씹던 딸 미쓰요는 어느덧 "생면부지의 선조들에게 둘러싸여 묘에 잠들어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내가 너무 불쌍했다. 죽어서도 며느리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라는 생각에까지 다다르게 되고. 결국 어머니가 묻힐 수목장 자리의 옆을 자신의 용도로 준비하기로 결정하는 장면은 뭔가 통쾌한 웃음마저 짓게 만든다.
요즘 사회에선 누구에게나, 어느 가족에게나 '묘'에 관한 문제는 선뜻 결정내리기 쉬운 일은 아닐 듯하다. 어떤 결론이든 어느 쪽이 반드시 옳은 법은 없을 터. <파묘 대소동>에서 보여지듯 '다수결에 의한 불만'을 없애기 위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토론을 끌어가며 모두가 인정할 즈음 결론으로 도달해가는 '어른들의 방식'이 보다 중요할 문제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바로 대화와 이해가 아니겠나. 사회적 이슈를 특유의 유머로 풀어내면서도 묵직한 질문을 남겨준 작가에게 박수를.(*)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