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있는 계절
이부키 유키 지음, 이희정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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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에서 따온 이름을 가진 여학생과 스케치북 한구석에 그녀의 그림을 그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던 남학생, 그들의 세월을 지켜보고 기다리던 개의 이야기. 사람의 말을 하지 못하는 '고시로'라 불린 개의 기억에 건드리면 깨져버릴듯 소중한 '그 시절의 계절'이 담겨 있다. 직접 겪어보지 않았더라도 모든 이에게는 '그런 시절이 있었지' 아련하게 그려볼 만한 계절말이다.


이부키 유키(伊吹有喜)의 <개가 있는 계절(犬がいた季節)>은 마치 흑백사진 속 희미했던 모습들을 인연의 색과, 순수의 냄새를 더해 넓다란 캔버스 위에서 다시 살아나게끔 그려진 추억과도 같은 느낌이다. 수험생의 갈등, 사랑, 고민, 미래, 희망, 불안, 꿈 등이 세월은 바뀌어도 늘 그 자리에서 함께 있었던 고시로를 통해 아름답게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개가 있는 계절>은 누구에게나 있었던 듯 느껴진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주인으로부터 버려진 '시로'라는 이름을 가졌던 하얀 개가 한 고등학교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면서 책은 시작된다. "따라오지 마! 넌 이제 자유자, 자! 이거 줄게! 물어와!" 필사적으로 공을 쫓아가 다시 물고 돌아왔지만 아무도 없었고, 익숙한 냄새조차 자취를 감춰 버렸다. 시로의 이야기는 슬프게 출발한다.


성견도 아니고 강아지도 아닌 어중간한 나이의 개는 미술부원 '고시로'의 자리에서 발견된 이유로 '고시로'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된다. 그리고 '하치류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의 인연을 만들어 가게 된다. 아이는 아니지만 어른도 아닌 학생들의 모습은 그 존재의 어중간함이 고시로와 닮아 있다. 언제나 같은 사람이 주던 밥은 아이들이 교대로 주는 것으로 바뀌었고, 첫 사랑을 기다리듯 고시로는 학교를 거쳐간 아이들과의 추억을 더듬으면서 새로은 아이들과의 생활을 이어간다.



<개가 있는 계절>의 고시로는 다섯 편의 에피소드를 지켜보는 화자이자, 매개로서 기능한다. 아이들을 기억하고 연결짓고, 그 시간의 단절을 다시 이어주는 존재다. 1988년부터 2000년까지, 일본 연호로는 쇼와부터 레이와까지 십년이 넘는 시간은 고시로와 '고돌모(고시로를 돌보는 모임)' 아이들 속에서 흘러간다.


향긋한 빵 냄새를 가진 소년과 소녀의 떨리는 추억, 또 없을 영웅을 위한 두 친구가 보낸 사흘 간의 여행, 할머니의 마지막을 기리는 소녀의 이야기, 나란히 놓인 사물함 속에 서로의 비밀을 지켜주며 꿈을 위로했던 아이들, 찰나를 영원으로 간직하고 싶은 아이의 순수한 소망 등 모든 에피소드는 그들의 미래를 위해 값진 시간이다. 바로 '청춘'의 계절'이다.



"작별이구나. 고마워, 정말 좋아하는 사람. 다음 생도 그 다음 생도. 계속 너희와 함께하고 싶어." 성인이 된 소녀의 뺨을 마지막으로 핥아보는 고시로. <개가 있는 계절>의 애틋함이 그대로 전해 진다. 굳은 발바닥과 코 옆에 난 가느다란 수염으로 사람과 살아가며 함께 울었던 보리(김훈의 개)가, 누군가의 개이면서도 누군가의 개가 아닌 존재로 고달픈 여정을 이어갔던 다몬(하세 세이슈의 소년과 개)이 그랬듯 고시로는 사람의 계절에 그대로 살아 있음을 책은 말한다.(*)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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