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 노래 중의 노래
이문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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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쁨과 결혼, 그 사랑의 성숙 등 남녀 사이의 사랑을 찬미하는 노래로 된 구약성서의 아가. '노래 중의 노래(song of song)'라는 의미를 지닌 그 아가(雅歌)를 우리 시대 최고의 작가 이문열님의 작품으로 만났다. 늦었지만 새롭게 교정교열을 거친 <아가>를 접한 것은 너무나 큰 행운이라 생각된다. <변경>만큼 큰 스케일은 아닐리자도 이문열에 의해 쓰인 '당편이'의 이야기는 개인사를 넘어 우리가 가진 근현대사의 일부가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어원불명의 '당편이'라는 이름밖에는 아무 정보를 갖지 않은 채 마을에 나타난 여인. 부모, 고향은 커녕 자신의 성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는 제대로된 의사표현이 어려운 데다 신체적 장애를 안고 문중마을의 유지인 녹동어른의 집 앞에 추위에 얼어 산송장과 같은 형태로 웅크려있었다. 이 산골 동족부락의 또래이자 화자인 '우리'는 당편이에 대한 기억을 '아름다운 사랑노래'로 풀어 간다.


"어예기는 어예? 하마 내 품에 날아든 새를. 당편이는 우리 식구라. 그러이 여러 소리 말고 낑가조라(끼워줘라). 너들하고 한 쌈에 여주라(넣어주라), 이 말이따. 타고난 게 들쭉날쭉해도 이래저래 빈줄랴(더하고 빼고 맞춰) 어울래 사는 게 사람이라."


녹동어른의 엄중한 지시는 당편이를 이 부락공동체 안으로의 편입을 허락함과 동시에 구성원으로서 당편이에게 역할과 지위를 내리게 된다. 작가는 그 시절-근대화 이전-의 부락공동체를 '도형으로 그리면 지름을 달리하는 동심원의 겹 또는 양파의 횡단면이며, 크게는 하나의 원이지만 그 안에는 기능과 성격을 달리하는 구성원들이 만드는 작은 원들이 여러 겹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마치 양파의 속처럼.


"어떤 사람이 한 공동체에 편입된다는 것은 그 성원들로부터 특정의 기호로 인지되는 데서 완성된다."


타고난 몸이 불편해 '기우뚱, 철퍼덕'하는 걸음걸이와 사물과 환경에 대한 애정은 가졌으되 표현과 실천이 뜻하는 바에 맞지 않아 늘상 '당편이표' 결과를 내놓았던 일화들, 그녀의 밥벌이와 관련된 녹동댁을 비롯한 마을사람들과의 관계 등이 바로 당편이가 가진 특정의 기호였을 것이다. 이러한 당편이는 나이를 들어가고, 시대가 바뀌어가면서도 부락공동체의 구성원들로부터 한동안 인지를 유지해간다. 이문열의 <아가>는 바로 이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당편이에 대한 이야기가 무겁거나 슬프게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6.25 당시 당편이의 활약(?)은 말그대로 '웃픈' 사연을 전하기도 한다. 서울에서 이른바 '건국사업'에 매진하던 녹동댁 외아들 덕에 공산군이 잠시 점령한 시절 공산당 여간부로서 선전선동부장이라는 어마어마한 직함을 갖게 된 당편이. 그녀의 모자람을 알아본 이들을 질책하는 공산당원의 말은 어쩌면 진실로도 들린다.


"이 동무가 어때서. 이 동무야말로 이름없는 인민의 딸이요 진정한 무산자(無産者)외다. 바로 우리가 찾고 있는 순혈의 프롤레타리아요." 그렇다. 당편이는 스스로 누구인지 모르며, 네것내것이 없는 공유를 실천하며 살고 있었다. 그것이 신체적 정신적 결함의 이유에서 왔더라도 실제로 그랬다.


과거 어느 사회, 어느 조직에서든 존재하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 공동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원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기능했던 그 사람들의 변천사, 아니 정확히는 그 사람들에 대하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짚어냈다. 도시에서 태어나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표현할 수는 없지만 다니던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에도 당편이처럼 '평범하지 않은' 구성원은 항상 있어왔다. 그를 애처로이 여기거나 짜증스레 대하거나, 아무 느낌없이 어울리거나 당시에는 '우리'안에 그 녀석이 분명히 있었다. 지금은 무슨무슨 시설이나 단체로 옮겨갔을 그 녀석이 말이다.


"몸과 마음의 완전성을 보강해 보다 안쪽의 동심원으로 편입되어 가든가 사회 미화 작업에 순응하든가." 작가의 지적대로 당편이의 선택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선자였겠지만, 그 한계는 시대변화만큼의 속도로 당편이에게 다가왔고 결국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지금에야 와서 부르는 당편이를 향한 시인 지망생의 노래가 '희미한 옛사랑'을 위한 것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숨 쉬는 거 잊지 마래이. 그거 이자뿌고(잊어 버리고) 죽은 사람도 있다 카더라." 당편이의 진심어린 당부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복잡미묘하다. 그녀가 발신하는 기호와 우리가 수신하는 인지가 이제 유효하지 않더라도.((*)


*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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