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의사와 미친 이웃들
니나 리케 지음, 장윤경 옮김 / 팩토리나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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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마을의 가정주치의 엘렌. 의사인 남편과 딸들을 가진 중년 여성인 그녀는 평탄한 중산층의 삶을 이어가지만 늘상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의 괴리에 권태를 느낀다.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부부의 모습 뒷면에는 가사의 부담이 고스란히 자신에게만 놓여져 있고, 괴팍한 친정엄마와의 관계와 함께 언제나 불만을 터뜨릴 준비가 돼있는 시부모와의 갈등이 상존한다.


과도한 와인을 통한 일탈이 그나마 위안이던 그녀는 스마트폰 버튼 하나를 누르는 실수(?)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게 된다. 바로 세상에는 정상적인 일상, 정상적인 삶은 없다는 것을. 니나 리케의 <바람난 의사와 미친 이웃들>은 엘렌의 모노드라마와도 같다. '바람난' 그녀의 이유와 원인을 책은 찾아간다.


온갖 종류의 병과 사연을 들고 자신을 찾는 환자들을 향한 '정상적인' 처방과 진단을 내리면서도 엘렌은 감춰진 속내를 '토레'와의 대화를 통해 털어놓는다. 토레는 실물 크기의 해골 모형으로 그녀의 진료실 세면대와 출입문 사이 구석에 서 있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토레는 엘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을 바라보는 유일한 목격자다.


'인간은 한 번 살지 두 번 살지 않아. 가끔은 전원을 끌 수도 있어야 해. 이게 뭐가 그리 나빠.'


엘렌은 우연히-정말 우연히- 건드린 SNS를 통해 옛 연인과 대화를 시작하게 되고, 마침내 '바람난 의사'가 된다. 그리고 그녀의 갈등, 후회, 고민, 일탈, 반성이 돌고 돈다. 이러한 그녀 주위를 둘러싼 그렌다의 '미친 이웃들'과 종잡을 수 없는 환자들의 사연이 함께 펼쳐 진다. <바람난 의사와 미친 이웃들>은 지나칠 정도로 솔직한 감정 표현과 심리 묘사가 '통통 튀는' 느낌으로 진행된다.


"스몰토크는 힘들지만 필수적이다. 상투적인 빈말과 스몰토크의 장점은 뒤에 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까다로운 환자와 상담을 마치고 나면 나는 미소 지으며 문가에 서서 말한다. '안녕히 가세요. 잘되실 거에요, 행운을 빕니다, 얼른 나으세요' ...(중략)... 하지만 굳게 닫힌 치아 뒤에서는 다른 단어들을 만들어낸다. 밝은 대낮에 환자 얼굴에 대고 쓰레기를 처리하듯."


가식적인 의사 엘렌, 그리고 솔직한 엘렌은 서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물론 토레로부터 질타를 받긴 하지만. 우리가 주고 받는 흔하디 흔한 말들, 즉 '어떻게 지내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오래간만이에요, 진심으로 축하해요,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등'의 원래의 뜻은 이렇단다. "안심해, 나는 평화를 원해. 너를 죽이거나 잡아먹을 의도는 없어. 너의 소유물이나 구성원을 빼앗을 마음도 없어."


"안녕히 가세요!(더러운 새끼!)", "얼른 나으세요!(개자식!)". 진료실 문을 닫는 동안 엘렌은 숨김없이 활짝 웃는다. <바람난 의사와 미친 이웃들>은 인간 본성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고, 동시에 그래도 웃으며 살 수 있는 이유를 알려 준다.(*)


*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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