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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왕 - 정치꾼 총리와 바보 아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3월
평점 :
품절
일본 총리가 대학생 아들과 몸이 뒤바뀐다. 총리의 몸속에 들어간 철부지 아들의 좌충우돌, 졸지에 대학생이 되어버린 총리의 '세상 알아가기'가 시작된다. 황당한 설정을 통해 이끌어내는 현실 정치를 대한 신랄한 풍자가 통쾌하다. '정치꾼'과 '정치가'를 확실히 구분지어 준다. 이케이도 준(池井戸潤)의 <민왕(民王)>, 민의가 왕이다.
내각지지율이 바닥을 헤매는 가운데 현직 총리가 갑작스레 사의를 표명하고, 정치 9단 무토 다이잔은 자신에게 일생일대의 기회이자 위기가 다가왔음을 직감한다. '화재는 최초의 5분, 선거는 최후의 5분이 승부의 갈림길'이라는 정치권 속설처럼 보좌관 가이바라와 치열한 작업끝에 민정당 총재에 당선, 총리 자리에 오르는 다이잔.

"애초에 너 같은 사람은 정치가가 될 수 있는 그릇이 아니고... 웃기는 소리 작작해.... 너처럼 머리가 텅빈 사람이 정치를 하면 우리 국민이 불행해지거든." 당 지지율상승과 정권 유지를 위한 걸음을 떼려는 찰나 환청과 같은 소리와 함께 아들과 몸이 바뀌어 버린다.
어이없기는 아들 무토 쇼도 마찬가지. 정치인의 길을 거부하고 '월급쟁이'를 선택했지만, 한순간 '총리님'이라 불리며 야당의 공격에 맞서야 하는 몸이 된다. 쇼가 의회연설에서 한자를 제대로 읽지못하는 장면은 실제 일본의 92대 총리 아소 다로(麻生太郞)에게서 따왔다고 한다. 당시 이케이도 준은 "일본에 1억 수천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있는데, 왜 한자도 못 읽는 사람이 총리가 되어야 하는가!"라고 생각했다는 것. 현재 부총리 자리에 있는 아소는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옹호하는 소리를 내고 있다.
본의아니게 아버지의 '카게무샤(影武者)'가 된 쇼의 예상치 못한 활약은 일본 정치판에 충격을 주게 된다. '나가타초(永田町)-일본 국회와 주요 정당이 위치한 우리나라의 여의도와 같은 지역'의 낡은 모습과 다른 신선한 쇼의 등장은 유쾌발랄, 그 자체다.

'뇌파 교환' 테러라는 독특한 설정, 그리고 개성있는 캐릭터가 쏟아내는 블랙 유머는 <민왕>에 더욱 빠져들게 한다. 매력적인 딸과 몸이 뒤바뀌는 다이잔의 정적 구라모토, 변태적인 스캔들에 허우적거리는 맹우(盟友) 가리야, 쇼의 친구이자 사업가 마이 등 각 캐릭터가 가진 배경과 비밀은 책이 드라마 <민왕>으로 다시 제작되는 배경이 됐을 것이다.
유치하고 막무가내로 진심으로 세상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올바른 마음으로 살면서 모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가는 정신을 가진 정치인. 그리고 정계의 논리에 칭칭 얽매어 '정치를 위한 정치만을 하는 직업 정치꾼'. 이 둘을 구분지어주는 것은 결국 '인간에게 가장 존엄한 그것, 본질적인 따뜻함'임을 <민왕>은 강조한다.

"지금의 나는 총리대신일지 모르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국민의 대표라고 할 수 있을까." 다이잔의 자성은 비단 책 속에서만 존재할 수 없다. 자타가 인정하게 된 우리네 '내로남불', 국민 앞에 부끄러운줄 모르는 꾼들이 판치는 그림은 현실이다. <민왕>이 정치꾼을 겨냥한 경고로 읽히는 까닭이다.(*)
*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