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스파이 1
존 르 카레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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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르카레의 영미장편소설 <완벽한 스파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화려한 액션, 상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최첨단 기기, 세상을 속이는 완벽한 커넥션, 모든 미스터리를 분석해내는 명석한 두뇌게임 등 '스파이'라는 단어에서 기대할 법한 내용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책은 오히려 그 '스파이'가 살아온 삶과 내면에 집중한다. 왜냐하면 맹활약을 해야할 주인공 '스파이'가 처음부터 사라져버렸으니까.



"영국인으로 태어남으로써 인생이라는 거대한 로토 게임에서 승리자로 태어났다고 믿습니까?"

"네, 뭐, 솔직히, 그것도 그렇습니다."

"그럼 스파이가 되세요."


매그너스 핌은 그렇게 '완벽한 스파이'가 된다. 군인에서 외교관, 무역회사 직원, 소설가, 시인 등 만나온 사람마다 바껴온 그의 정체는 이제 마지막 작품을 쓰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장례식날 사라진 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매그너스가 배를 갈아탔어." 옛 동료와 각국 정보원의 추적도 함께 분주히 출발한다. 저자가 서두에 상세히 설명했듯 데번주 남부 바닷가 마을 빅토리아 양식의 하숙집들 가운데 늙은 여주인이 있는 그곳에서 글을 쓰고 있는 핌을 두고.



책은 핌과 그의 아버지 릭, 그의 아들 톰을 이어주는 핌의 회고에 바탕을 둔다. 누가 배신자인지, 누가 위선자인지 조차 모호해지는 전개 속에서 '그는 왜 사라졌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에 점점 가까워짐을 느끼게 된다. 스파이로서의 핌, 그가 행해온 일로 인해 이득을 보는 검은 권력자의 관계에 독자는 빠져 든다.


"당신이 방금 웃어 준 사람은 내일 새로 반역자가 될 자의 친구야. 더 이상 대답할 말이 없어질 때까지 자신을 비판하는 목소리와 싸워 물리치고, 그 다음에는 정면으로 마주할 수 없게 될 때까지 자신의 옹호자들과 싸워 물리친 사람."


핌을 쫓던 브러더후드는 문득 '완벽한 스파이'이자 '사라진 스파이'에 대해 이해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독재, 탄압, 착취, 사기, 위선. 어느 하나 분명하지 않는 시대에서 느끼는 동료애일지도 모르겠다.



고단한 스파이의 인생 속에서 툭툭 던져지는 유머는 <완벽한 스파이>에 더욱 빠져들게 만든다. 예를 들어 가명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핌은 답한다. "내가 나로 있는 게 더 좋을 거라고 했어요. 그런 걸 자연스러운 은신이라고 하죠." 자신도 받아들이지 않은 결혼식을 회사가 먼저 승인했다는 사실을 알아낸 핌이 짜증을 내는 장면역시.


"나는 다리다. 네가 릭을 떠나 인생을 향해 걸어가면서 반드시 건너야 하는 다리가 나야." '완벽한 스파이'가 아들에게 남긴 글은 릭, 핌, 그리고 톰으로 이어지는 인생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어쩌면 하숙집에서 핌이 쓰고 있는 그 글은 전처 벨린다에게 슬쩍 고백했던 '세상을 바꿔 놓을 위대한 자전적 소설'일 수 있겠다.


존 르카레는 '작가의 말'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어린 시절이 담긴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릭의 인생에 자신의 아버지가 거울처럼 반영됐다고 한다. 타인이 생각하지 못했던 '보다 어두운 이야기'에 대해.(*)


* 리뷰어스클럽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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