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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김현화 옮김 / 마시멜로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남편이 죽었다. 그리고 나는 남편을 죽인 남자의 아내가 된다. 그녀의 삶이 한 여름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과도 같다.
아키요시 리카코(秋吉理香子)의 <작열(灼熱)>.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작품 전체가 뜨겁다. 한 여자를, 두 남자를 다 태워버릴만큼 그렇다. 배경이 되는 무더운 여름마저 사키코-혹은 에리-의 분노와 증오, 행복을 위한 갈증이 다 녹여버릴 듯하다.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마저 뺑소니 사고로 잃어버린 사키코는 친척집을 전전하다 고교시절 운명의 짝 다다토키를 만난다. "우리는 젓가락(はし)같은 사이야. 떨어져 있을 때는 무의미하잖아. 한 짝이 모여야 존재하는 의미가 있다고 할까."
그토록 사랑했던 남편이 어느날 자신도 모르는 사연을 안고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사망한다. 유력한 신고자이자 용의자가 있었지만, 결국 남편은 사고사로 종결된다. 게다가 불우했던 과거에 사기죄라는 죄명까지 더해져 남편은 죽어서도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처지가 돼버린다.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키코는 죽음의 진실을 찾기 위해 얼굴과 신분을 바꿔 에리로 다시 태어나고, 남편을 살해한 남자의 아내가 된다. 남편의 억울한 누명을 벗어내려면 스스로 증거를 찾아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사키코는, 아니 에리는 그렇게 히데오의 집으로 들어갔다.

'이 인간은 숨 쉬고 있어.'
세상 유일했던 자신의 사람인 남편을 잃은 사키코에게 히데오는 분노와 증오의 대상일 뿐이다. 누군가 죽어야만 끝나는 이야기처럼 사키코는 행여나 마음의 빈틈을 보일까 조바심을 내며 히데오와의 시간을 보낸다. 마치 행복한 주부처럼, 남편의 복수를 위해. 그러나 히데오 남매가 숨겨왔던 비밀이 점점 사키코를 향해 덤벼들면서 이야기는 반전을 맞게 된다.

<작열>의 무대는 여름이다. 사키코, 다다토키, 히데오 세 사람의 삶이 뜨거워 차마 건드릴 수가 없다. 첫 페이지 사키코가 손에 든 큰 접시 두개를 깨뜨리면서 시작됐던 <작열>은 그들의 인생이 다 타버리고 나서야 이야기를 그만둔다. '본 차이나', 뼈를 담은 두 개의 접시가 비로소 <작열>의 마지막을 덮어준다. 화려한 캐릭터도, 완벽한 미스터리도 갖지 않았지만 아키요시 리카코의 <작열>은 제목 그대로 뜨거운 소설이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