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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
스튜어트 터튼 지음, 최필원 옮김 / 책세상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몇 장을 펼치다보니 커다란 메모지가 필요했다. 많은 등장인물과 함께 반복되는 시간과 사건의 교차 속에 빠져 엉뚱한 길에서 헤매지않고 무사히 책장을 덮을 수 있으려면 그래야 했다. 스튜어트 터튼의 <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은 영국의 한 고택에서 벌어지는 하루-어쩌면 여드레 혹은 그 이상일 수도 있겠다-를 6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을 통해 그려냈다.
<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의 가장 큰 매력은 타임 루프다. 파티를 주최한 하드캐슬의 딸 에블린의 죽음이 안고 있는 비밀을 밝히기 위해 시간은 계속 반복된다. 쉰 명에 달하는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행동, 생각, 대화가 되감기면서 어질러진 퍼즐을 서서히 끼워맞춰 가야하는 방식이다.

한 남자가 기억을 상실한 채 숲 속을 방황하다 하드캐슬 하우스의 가장무도회가 열릴 블랙히스에 들어 선다. '애나'라는 이름 하나만 머릿속에 남겨놓은 그는 무수히 되풀이되는 루프에 빠져든다. 자고 일어나면 다시 오늘, 그러니까 에블린이 죽는 그날 아침에 깨어나는 게임 속에 놓여 있다. 게다가 매일 다른 사람의 몸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마약상, 집사, 의사, 은행가 등 블랙히스에 초대된 사람 중 하나로 말이다.
사실 파티는 에블린의 동생 토머스 하드캐슬이 19년 전 살해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열렸다. 그날 그 손님들이 다시 그 자리, 블랙히스에 모여 파티로 위장된 추도식을 벌이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사건에 참여하기 위해.
에이든 비숍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남자는 8일 동안 다른 사람의 몸으로 그날의 사건을 더듬어 가며 에블린을 죽음에 이르게한 답을 찾아내야 한다. 에블린이 죽는 바로 그날 자정까지. 마지막 여덟 번째 호스트가 돼서도 답을 찾지 못하면 그 간의 기억은 모두 지워져버리고, 게임은 다시 시작된다. 은색 권총을 들고 총구를 자신의 복부에 겨눈 에블린을 매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겁쟁이면 좀 어때요? 그보다 나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처럼 어둠 속에서 자기 스스로를 조립하려 하지 말아요. 그러지 말고 세상을 제대로 봐요. 주변 사람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마음에 드는 부분을 잘 추려내 자기 것으로 만들어 보는 거에요."
에이든을 향한 에블린의 말은 곧 게임의 법칙을 설명한다. 여덟 명의 호스트로 깨어날 때마다 각자 인물이 지닌 본성을 억제 또는 활용하면서 '에이든 비숍'은 에블린을 지켜내고 무사히 블랙히스로부터 벗어나야하는 것이다. 중세 흑사병 의사 옷차림을 한 남자, 애나라는 이름의 여인 등 그를 도와주거나 혹은 방해하는 사람뿐 아니라 구석구석 숨겨진 메시지에 대한 이해와 기억을 조합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메모지'가 필요하다. 앞서 밝혔듯 말이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 소개된 등장인물 페이지를 수도 없이 들락날락해야하는 수고도 당연히 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작가가 만들어놓은 시간과 인물의 무한 루프에 빠져 허덕이게 되리라 장담한다.

모두의 운명을 짊어진 내면의 존재 에이든, 그리고 파티에 초대된 모든 인물의 개성과 그들 안에 숨겨진 비밀이 정교하게 얽혀 있다. 각기 다른 사람의 눈으로 같은 사건을 매일 관찰하며 해답을 찾아내야 하는 게임이 <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 속에서 치열하게 벌어 진다. 책 속의 시간의 흐름마저 자칫 잃어버리기 쉽상이다. 오늘이 어제가 되고, 오후는 아침이 된다. 어제 의사였던 에이든은 지금 은행가지만, 잠시 후 그저께 집사의 몸에서 깨어난다.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일어나는 반전은 읽는이에게 혼란과 재미를 함께 제공한다. 그리고 8일 간의 반복이라는 미로에서 벗어날 즈음이면 <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은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그림을 독자 앞에 내놓을 것이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