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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범죄
요코제키 다이 지음, 임희선 옮김 / 샘터사 / 2020년 8월
평점 :
너무나 소중한 존재를 잃어버리거나, 혹은 그 존재로부터 배신을 당해 스스로의 위치조차 아득해질 때 사람은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어디론가 돌아갈 곳. 고향이나 부모님이 계신 곳처럼 예전의 평온한 자리가 될 수도 있고, 놓아두었던 사회적 위치 혹은 무작정 과거의 어느 시점이 될 수도 있다. 그저 지금과는 다른, 어딘가 스스로의 위치를 확연히 매김할 수 있는 곳이라면.
요코제키 다이(横関大)의 <그녀들의 범죄(彼女たちの犯罪)>는 바로 '돌아갈 곳'에 대한 이야기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한 남자,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 명의 여자는 어쩌면 '돌아갈 곳'을 찾아 복잡하게 얽힌 동선을 그려 나간다. 일본에 살고 있는 여자들이 그들의 시대와 치열하게 싸워나가는 투쟁기로도 읽힌다.

"자기는 도모랑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뭐야?"
"그건...... 프러포즈를 받아서요."
마뜩잖은 답이다. 유복한 집안의 자식이자 정형외과 의사인 진노 도모아키와 결혼한 유카리. 평범한 간호사였던 그녀는 부모님께 반항하고자 하는 도모아키의 욕심을 모른채 '결혼'이라는 제도를 받아들인다. 결혼 전 성인 엔도 유카리라는 이름의 시신으로 발견될 때까지 아내, 며느리라는 이름의 하녀와 같은 일상에 갇혀 '돌아갈 곳'을 희구한다.
도모아키의 불륜 상대인 히무라 마유미. 도모아키의 대학 후배로 학창시절 치어리더팀을 거쳐 대기업 홍보과에 근무하는 미모의 여성이다. 결혼이라는 티켓을 손에 넣더라도 그 티켓이 쓸모없어지는 불행한 여자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출발점에 서지도 못한 자신, 모처럼의 상대가 유부남임을 몰랐던 자신이 못마땅하다.

급작스런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뒤, 자신마저 죽을 곳을 찾아 방황하는 다마나 미도리는 진노 집안과 가까운 이웃이다. 도모아키의 소꿉친구이자 대학 시절 연인이었던 그녀는 막대한 유산을 배경으로 술과 여행이라는 도피처를 찾아 헤맨다. 새로운 경험의 여행이 아니라 죽어 돌아가기 위한 여행을 향해 늘 떠난다.
그리고 앞선 세 명의 여자에 형사 구마자와 리코가 더해지면서 <그녀들의 범죄>의 '그녀들의 사정', '그녀들의 거짓말', '그녀들의 비밀' 등 세 장을 만들어 간다. 자신의 삶에 순종적이던 유카리의 느닷없는 가출, 그리고 그녀의 자살 소식이 전해오면서 미스터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한적한 료칸에 일주일간 머물다 끝내 벼랑에서 투신한 여자, '돌아갈 곳이 없었던' 그 여자에 숨겨진 비밀을 시골형사 와키야와 세타가야 경찰서의 우에하라가 파헤친다. 어느 누구도 만족할 수 없을 결말을 찾아 달려간 그들이 찾아낸 그녀들의 '돌아갈 곳'이 애처롭다.

<그녀들의 범죄>에서 시간은 잔인하다. 누군가에겐 늘상 새로운 시간이 펼쳐지지지만, 누군가에겐 과거에 멈춰버린 시간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겐 반복되는 무의미한 시간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모두에게 흘러간 시간은 각자에게 잔인하게 할퀴고 지나간 흔적으로 남아 있다.
요코제키 다이의 작품 곳곳에 일본 사회가 가진 편견대한 반항이 담겨있다. 여성의 시각에서 결혼과 출산, 불륜과 이혼, 사회적 성취 등 있을 법한 불만이 등장인물을 통해 담담하게 묻어 나온다. '무난한' 이혼을 위해 상간녀에게 "내 남편과 절대 헤어지지 말라"고 당부하는 고단한 아내의 모습은 비참하기까지 하다.
<그녀들의 범죄>속 그녀들에게 '어디론가 돌아간다'는 의미는 어쩌면 새로운 시간을 갈망하는 소박한 염원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