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말을 쏘았다
호레이스 맥코이 지음, 송예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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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50분간 쉬지않고 움직여 춤을 춘다. 그리고 10분간 휴식을 취한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으면 1만 달러의 상금이 주어진다. '세계 마라톤 댄스 대회'의 룰이다. 화려한 별들이 모여 사는 곳, 캘리포니아의 한 해변에서 이 대회가 개최된다.


멋진 영화감독을 꿈꾸지만, 지금은 단역 배우자리라도 찾고 싶은 로버트는 '아주 우스운 계기'로 글로리아를 만나고 마라톤 댄스에 참가하게 된다. 돈 없는 평범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20분, 30분 짜리 단편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일단의 꿈이다.



해상 유원지 무도회장으로 쓰인 건물 안, 폭 9미터에 길이 60미터 쯤 되는 댄스 플로어. 여기서 수준 낮은 밴드의 연주, 혹은 라디오 음악을 타며 144쌍의 남녀가 멈추지 못한 채 춤을 춘다. 대회 주최측의 매니저, 사회자, 심판관들은 그들의 움직임을 재촉한다.


불과 일주일 만에 61쌍을 기권하게 만드는 강행군 속에서 로버트와 글로리아는 이를 악물고 살아남으려 애쓴다. 짧은 휴식시간 동안 쪽잠을 자고, 식사를 하고, 생리현상을 해결하면서. 우연히 만나 커플로 대회에 참여한 이 두 사람의 대화의 결론은 글로리아에 의해 항상 하나로 이어진다. 죽고 싶은 것. 


"죽고 싶은 생각이 안 들게 할 만한 대화 주제는 없을까요?"

"없어요."


부모 몰래 참가한 미성년자, 돈을 위해 마라톤 댄스를 찾아다니는 임신한 부부,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다니던 지명수배자 등 댄스 플로어를 뛰고 있는 사람들의 우울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하나 둘 탈락자가 나오면서 대회 주최측은 점점 대회의 흥행과 수익에 열을 올린다. 헐리우드를 주름잡는 유명인이 관람하고, 여유있는 자들이 마음에 드는 커플을 골라 후원한다.


그 속에서 참가자들은 열심히 몸을 흔든다.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참가 커플의 가짜 결혼식까지 기획한 주최측에 글로리아는 치를 떨지만, 행사는 순조롭게 진행된다. 신부의 구두는 메인 스트리트 구두가게, 스타킹과 속치마는 폴리 달링 걸스 상점에서, 신부 머리는 퐁파두르 미용실, 신랑 의상은 타워 양복점에서, 장내 꽃들과 여성 참가자들의 의상은 시커모어리지 탁아소에서 협찬을 받으며.



대공황 시절 암울한 경제 상황 속에서 천박한 자본주의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다. 호레이스 맥코이의 시대를 보는 적나라한 표현이 꾸밈없이 독자에게 다가온다.


마라톤 댄스를 시작한 지 879시간이 흘러 이제 20쌍만이 플로어에 남은 시점, 가짜 결혼식이 진행돼야 했던 바로 그날 돌발상황이 발생하고 로버트와 글로리아의 운명은 여기서 엇갈린다.


"늘 내일이죠. 기회는 늘 내일에만 오네요."


소박한 꿈과 바로 앞의 내일을 향해 달리던 로버트와 글로리아는 '마라톤 댄스 대회'라는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이 벗겨진 채 세상에 서있다. 살기 위해 달리는 그들, 그들로 인해 돈을 버는 자들, 그리고 그 모두를 즐기는 자들로 구성된 세상. 그래서 그들은 말을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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