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람의 아들
이문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평점 :
'신의 아들', 그리고 '사람의 아들'.
이문열을 읽을 때, 특히나 <사람의 아들>은 긴 호흡이 필요하다. 무거운 주제만큼이나 진지한 사념이 행간에 무수히 들어있기 때문이다. 무려 다섯 번째 개정신판을 펴낸 우리 문학의 고전 <사람의 아들>은 신과 인간의 관계, 나아가 인간이란 존재의 근원과 이유를 이야기한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진짜 신'을 찾아 떠나는 여정과 자신-혹은 모든 인간-과의 치열한 내적 투쟁은 <사람의 아들> 전체를 뒤덮고 있다. 예수의 인간적인 면모에 집중하려했던 칼릴 지브란의 노력도 어쩌면 이문열의 작품과 상통할 지도 모르겠다.

그저 그런 삶을 이어가고 있던 대구 동부서의 남경호 경사는 까다로운 살인사건을 접하게 된다. 서 관할지역인 영지면 야산에서 사체로 발견된 민요섭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그가 남긴 노트를 통해 '신'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이 진행된다.
인간의 역사에서 신이라는 존재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낯설지 않다. 설익은 종교논쟁이야 누구든 한번쯤 벌여봤지않을까. 우리는 <사람의 아들>을 통해-남경호와 민요섭, 아하스 페르츠를 통해-보다 깊숙한 여행과 토론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에게 은혜를 입은 것은 그였고, 우리가 그에게서 입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우리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를 선택하였다. 아니, 그 이상으로, 어쩌면 그가 우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기행에 가까운 민요섭의 행적, 그를 좇아가는 남경호의 여정은 마치 아하스 페르츠의 그것과도 비슷하다. 이혼한 장로 부부, 부산의 하숙집 주인과 아들의 사연, 그 아들의 동거인에 얽힌 이야기 등 각자가 그들만의 '진짜 신'을 찾아가는 과정과도 닮아있다. 남경호가 살인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과 절묘하게 연결된다.

"이제 저 거짓된 '사람의 아들'은 그가 온 곳으로 돌아갔고, 대지는 다시 너희들의 손에 붙여졌다. 너희를 가장 잘 섬긴 자가 곧 우리를 가장 잘 섬긴 자이며, 모든 것은 너희에게서 비롯되고 너희에게서 끝나리라."
마침내 위대한 지혜가 '사람의 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고통과 결핍, 공포와 원망이 빚어낸 우상들로 인해 시달리는 인간의 절규에게 답한다.
<사람의 아들>은 1979년 제3회 오늘의 작가상에 선정됐다. "인간 존재의 근원과 그 초월에 관계되는 심각한 주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진지함이 그리 흔치않은 문학적 품성임을 상기하였다."는 선정 이유조차 그저 지나칠 수 없는 글귀로 남는다.
작가의 말대로 '인자(人子)'라는 옛날식의 한자 제목을 단 200자 원고지 400매 남짓의 중편, 어찌 보면 고색창연한 구도소설이었을 지도 모를 작품이 <사람의 아들>로 남아 여전히 읽히고 있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영원히 풀지 못할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문열이라는 작가가 우리 곁에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행운으로 느껴진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