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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코를 위해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모모 / 202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대개 미스터리물 마니아라면 작가와 머리싸움을 벌이며 스토리를 음미하게 된다. 행간에 숨어있는 트릭, 캐릭터 사이에 흐르는 오묘한 복선 등 '완벽한' 미스터리를 위한 장치를 하나하나 발견하고, 저자-혹은 주인공-와 함께 본질을 유추하는 묘미가 미스터리 소설에는 가득하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노리즈키 린타로(法月綸太郎)의 <요리코를 위해(원제:頼子のために)>는 탁월한 매력을 갖고 있다. 피해자와 범인, 그리고 일단의 해결을 책 머리부분에 밝혀두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미리 던져진 사건의 줄거리에 숨겨진 이면을 분석하며 새로운 본질을 찾아가는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1989년 8월 22일 요리코가 죽었다."
대학교수인 니시무라 유지는 어느날 사랑하는 외동딸 요리코의 죽음을 맞이하고 충격에 빠진다. 14년 전 교통사고는 아내 우미에의 척수에 돌이킬 수 없는 중상을 입혀 하반신의 모든 기능을 잃어버리게 하고, 동시에 세상 빛을 보기도 전 배 속에 있던 8개월된 아들을 함께 데려갔다. 남은 요리코마저 살해되자 니시무라는 살해범을 찾아 스스로 죄를 묻고, 자신도 자살하리라 계획을 세운다.
"나는 범인을 증오할 자격을 잃고 요리코를 죽음으로 내몬 장본인으로 유죄 선고를 받아야 한다."
<요리코를 위해> 전반부는 딸의 죽음을 맞은 니시무라의 심정, 작가의 표현대로 '이련의 명제와 추론, 하나의 확신과 하나의 결의'가 펼쳐 진다. 무려 80페이지 분량을 할애해 딸 살해범을 추적하고, 응징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뒤 스스로 자결하기까지의 수기다.
그러나 니시무라는 아내의 간병인인 모리무라 다에코에 의해 극적으로 죽음을 피하게 되고, 드디어 사건의 본질을 파헤칠 노리즈키 린타로가 등장한다. 추리소설 작가이자 탐정인 린타로는 니시무라의 수기가 갖고 있는 허점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사건의 진실에 다가간다. "단언해도 좋다. 형사는 뭔가 숨기고 있다. 경찰도 믿을 수 없다."는 니시무라의 결기와 완벽한 계획은 린타로에 의해 다시 해석된다.

"당신은 대체 어느 편이야?"
"진실의 편이죠."
여학생의 죽음으로 인한 학교 이미지 실추를 걱정하는 자본의 추악한 작업, 적의 상처를 다시 휘집어보려는 정치의 술수와 압력 속에서 린타로의 활약이 펼쳐진다. 실체를 무시한 채 황당한 살인극으로 치부될 뻔한 사건은 린타로에 의해 철저한 재조사가 시작된다.
억울하게 딸을 잃고, 딸의 명예와 아내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려한 아버지의 절규는 예상치 못한 엄청난 악몽을 안고 있었음이 서서히 드러나고, 마침내 '니시무라에 의해, 우미에에 의해, 그리고 요리코에 의해' 숨겨왔던 비밀은 모습을 나타낸다.

14년 전 사고에서 비롯된 가족의 비극. 그리고 남은 가족을 위한 니시무라, 우미에, 요리코에 대한 세밀한 심리 묘사가 돋보인다. 각 장마다 소개되는 프리드리히 뤼케르트의 시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가 책의 전개를 암시하고 있어 <요리코를 위해>에 더욱 빠져들게 한다.
'논리의 자기 중독'에 빠진 자, '관념의 괴물로 남은 자'의 대결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마침내 '누군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린타로의 결론이 섬칫한 여운으로 남는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