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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더스
밸 에미크, 윤정숙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3월
평점 :
모든 것을 기억하는 소녀와 기억을 애써 지우려는 남자가 있다. 가슴 속 빈 공간을 채워줄 무언가가 너무나 절실한 소녀와 남자의 만남. 두 사람에게 '기억'이란 피할 수 없는 아픔이자 희망이다. 시간이 흘러도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두 사람에게 이제 '기억'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리마인더스(The Reminders). 무언가를 추억하고 기억하도록 하는 매개를 말한다. 빼곡히 채워진 일기장, 어딘가 있을 한 장의 사진, 달력에 그려놓은 동그라미, 빛 바랜 크리스마스 카드, 서랍 속 낡은 시계처럼. 어떤이에게는 살아 숨쉬는 누군가가 리마인더일 수도 있겠다.

벨 에미크의 소설 <리마인더스>에서 '기억'이라는 것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마법과도 같다. 아름다운 음악이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족처럼 누군가에게, 모든이에게 '기억'은 특별한 의미로 존재한다.
열 살의 조앤 레넌 설리는 자신의 모든 날을 영화처럼 기억하는 능력을 지녔다. 조앤에게 '잊는다'는 것만큼 무의미한 말은 없다. 무엇 하나라도 잊을 수 없는 자신에게 '잊어버려'라는 말은 때론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조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기억은 동화 같은 것어서 진짜 인생보다 더 단순하고 재미있고 행복하고 짜릿하다."는 아빠의 설명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TV드라마 배우인 개빈 원티스는 사랑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모든 '리마인더'를 불태워 버린다. 그럼에도 완벽한 탈출에 실패하고, 오히려 아픈 기억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개빈은 조앤을 만나 새로운 기억의 퍼즐을 맞춰가고, 자신의 참모습을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개빈과 조앤은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처럼, 그리고 블랙버드와 바다코끼리처럼 서로가 서로의 '리마인더'가 되어 간다. '생각나지 않아', '잊어버렸어'라고 말하고 싶지만 절대 그럴 수 없는 소녀 조앤은 개빈의 방황에 기꺼이 동참하며 자신들의 노래를 지어 간다.

"그들이 내 이름을 잊지 않게 내 노래가 계속 그들의 기억을 일깨울거야." 다짐하는 조앤, "당신이 어딜 가든 영원히 떠날 수는 없어."라는 개빈의 대화가 아프고도 아름답다. 과거는 뒤에 남겨두고 다시 시작하자는 노래를 완성할 즈음 조앤과 개빈은 머릿속 기억 상자에 담아야할 소중한 사람들을 마침내 발견한다.
개빈과 조앤, 매력적인 두 등장인물이 전하는 감동은 <리마인더스>의 모든 페이지에서 넘쳐 난다. 서로의 과거와 미래를 공유하는 두 사람의 우정이 비틀즈의 음악처럼 흐른다. 특히 세계에 30명만이 소유한 능력을 지닌 엉뚱한 소녀 조앤의 귀여운 대사 하나하나는 매순간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누군가를 기억하고자 하거나,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다면 주저말고 <리마인더스>라는 마법을 펼쳐보자. 지독히 아픈 기억마저도 내일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반짝이게 될 것이라고 <리마인더스>는 알려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