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타면 그것이 막차이자 종점 / 막차의 신

막차의 신
아가와 다이주 지음, 이영미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12월

서로 몸을 밀착한 채 얕은 숨을 내쉰다. 시선은 타인의 눈을 피한 어느 곳에 고정하고, 모르는 사람과 몸을 밀착하는 이런 짓을 매일 아침저녁 반복한다. 출퇴근길 만원 전철이 아니고서야 이러한 행위를 용납할 곳은 드물다. 하루 두 번 반드시 이상한 행위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막차의 신(원제:終電の神樣)>.

아가와 다이주(阿川大樹)의 <막차의 신>은 일상에서 접하는 전철의 풍경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세세한 장면을 감성어린 시선으로 묘사했다. 평범한 전철에 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의 개성을 죽이고, 복잡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사람 형상을 한 물체처럼 그저 조용히 처박혀 실려가는 만원 전철.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하나하나의 숨은 사연을 끄집어 낸다.

전철역인 K역과 N역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7개의 에피소드는 따로 따로 개성을 가지면서도 하나의 장편처럼 어우러진다. 막차 시간에 쫓기며 만원 전철에 올라탄 사람들이 풀어놓은 이야기는 읽는이로부터 공감을 끌어내기에 충분하다.

<막차의 신>은 요상한 여성의 치한 퇴치기를 그린 '파우치', 납기 마감에 쫓기던 벤처기업 직장인의 휴일을 다룬 '브레이크 포인트', 각자 특이한 전문직을 가진 연인의 러브스토리 '운동 바보', 이발사인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려 달려가는 아들의 심경을 묘사한 '오므려지지 않는 가위',

그리고  여장 남자의 기구한 인생을 소개한 '고가 밑의 다쓰코', 그림밖에 모르는 사춘기 여학생의 성장기와도 같은 '빨간 물감', 전철에서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을 25년간 기다린 여성의 사연 '스크린도어' 등 일곱편으로 이뤄져있다.

갑자기 정차한 만원 전철 안에 이유 모른 채 갇힌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브레이크 포인트'에서 권투를 가르치는 노사범은 링에 빗댄다. "인생과 달라서 복서의 라운드는 단 3분뿐이야. 그래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면 반드시 공은 울려. 아무런 방법도 없을 때는 일단 쓰러지지만 않고 공이 울릴 때까지 버틸 생각만 하면 돼."

산소마스크를 낀 채 마지막 시간을 기다리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달려가던 아들이라면 그 시간이 더없이 안타까울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 육체에 갇혀버린 의지'(오므려지지 않는 가위)와 같은 초조함이야 말할 나위가 있으랴.

"막차의 신, 내가 타면 그것이 막차

어떤 전철이든 그것으로 최후이자 최종 전철

막차의 신, 내가 타면 그것이 종점

그것이 인생, 더는 앞으로 못 가는 막다른 길"

다른 곳에서야 무엇이든 만원 전철 안에서 사람들은 엇비슷한 부피를 차지하는 '승객'일뿐. 여장남자가 부르는 서글픈 노랫말은 하루하루 만원 전철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이 내뱉은 한숨을 모아놓은 듯 <막차의 신>을 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