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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소네 케이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정말 다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보잘 것 없는 무엇이라도 의지하게 된다는 뜻의 속담이다. 속담에서 '라도'가 중요하다. 그것이 무엇이든, 실낱같은 기대라도 할 수 있다면. 일본에도 똑같은 말이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다(藁にも?る)'. 속뜻마저 다름이 없다.
세상을 살다보면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일이 풀리지 않고 곤경에 처할 때가 생기기 마련이다. 상황은 점점 나빠지는데 벗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고, 누구의 도움을 받을 만한 상황도 아닌 그야말로 힘든 시기를 저마다 겪으며 산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기대를 안고 그저 당장 할 수 있는 무언가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태. 지푸라기라도 있으면 붙잡고 의지하고 싶은 심정.

소네 케이스케(?根圭介)의 작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원제:藁にもすがる獸たち)>은 금방이라도 나락에 떨어질 듯 불안한 인물들이 빚어내는 이야기다.
가업인 이발소를 접고 아내 미사에와 함께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 토미코를 모시며 하루하루 근근이 버텨가는 환갑의 칸지. 고압적인 매니저와 버릇없는 아르바이트생 사이에서 어쩔 도리 없이 '사우나 유토피아'의 출근부에 도장을 찍어가던 칸지에게 엄청난 행운이자 위기가 닥쳐오고, '짐승들'의 지푸라기 잡기가 시작된다.
지푸라기가 필요한 또 한 명의 짐승은 형사 료스케. 타락한 형사답게 불법업소의 뒤를 봐주다 한 여자의 꾀임에 빠져 조폭에게 거액의 빚까지 떠안게 된 료스케는 자신의 궁지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친다. 그리고 남편 타케오의 지속적인 무시와 폭행에 시달리며 스스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윤락업소에 몸을 담는 여성 미나는 고달픈 삶이 쳇바퀴가 죽음마저 싫다.

칸지와 료스케, 미나 등 세 사람의 기구한 악연이 얽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그저 범인을 쫓아가는 미스테리물을 넘어선 그야말로 잘 짜여진 스토리를 그려낸다. '장편 하드보일드 느와르 픽션'이라는 홍보 문구가 허언은 아니란 걸 마지막 장까지 느낄 수 있다.
담배 '럭키 스트라이크'와 '호랑이 문신'과 같은 소품이 작품의 감초로서 당당히 역할하는 것도 흥미롭다. 소네 케이스케는 늙은 형사 히고, 조직폭력배 고다와 그의 부하 새송이, 툭눈금붕어, 그리고 철없는 프리터 신야 등 조연급 짐승들에도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한다.
"이제는 늦었지만 이 세상을 잘 살아가는 비결을 가르쳐줄게. 절대 남을 신용하지 말 것, 결국 누구든 자신이 제일 소중한 법이거든.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해." 악당이 남기는 충고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숨통을 더욱 죄인다.
책장을 덮을 즈음 어느새 소네 케이스케의 팬이 되어 버렸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