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타협 미식가 - 맛의 달인 로산진의 깐깐한 미식론
기타오지 로산진 지음, 김유 옮김 / 허클베리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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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팍하고 깐깐하다. 굳이 좋게 말하자면 독특하고 완벽하다. '화식의 천재(和食の天才)'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그의 삶은 남들로부터 인정받기보다 악명이 더욱 높았을 괴짜 인생이다. 바로 <무타협 미식가>의 주인공 기타오지 로산진(北大路魯山人, 1883-1959). 


그는 화가이자 도예가, 서예가이면서 옻칠 공예가로서 살았으며 한편으로 고급 요리집을 운영하는 조리장이자 독설을 품어내는 미식가 등 다양한 얼굴을 가진 종합예술가였다. 지금도 그가 남긴 칠기, 도자기, 수묵화 등 작품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본명은 '기타오지 후사지로(北大路房次郎)'. 요리와 식기에 자신만의 식견을 드러내며 만든 '미락클럽'을 시작하면서 '로산진'을 자칭했다고 한다.



<무타협 미식가>는 로산진이 가졌던 '맛'에 대한 철학을 모은 인문서다. '음식'과 '요리'를 대하는 그의 마음, 일본 요리를 지키고자 하는 뚝심과 고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은 로산진이 일러준 좋은 재료 고르는 법과 요리하는 법, 심지어 제대로 즐기는 법과 어울리는 식당까지 소개해준다.


"단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아름답고, 건강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삼시 세끼 식사를 하고, 맛있는 음식만 먹고, 좋아하는 음식만 먹어라, 시시한 식기로는 밥을 먹지 않는다는 의지를 품고 인생을 깊고 의미 있게 살아라." - '미식가의 길' 가운데


로산진의 '맛'에 대한 정의는 단순 명료하다. 예를 들면 "음식은 뭐니 뭐니해도 맛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누가 반박하겠느냐만 사실 이보다 더 힘든 것이 있을까. 그래서 그는 "식도락도 그냥저냥 쉬운 일이 아니다."며 슬쩍 배려도 남긴다.



'요리(料理)는 도리(理)를 다루는(料) 일', '요리의 근본은 정직'이라는 로산진의 가르침은 인스턴트 식품과 프렌차이즈 식당이 난무하는 요즘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만저만한 요리사들이 뻔한 음식을 들이대고, 출연자들이 호들갑떠는 TV 프로그램에서 느꼈던 허무함을 <무타협 미식가>는 달래준다. 무슨무슨 맛집이라며 포털 사이트에 아무 책임없이 올려대는 가벼움역시 <무타협 미식가>는 점잖게 타이른다. 이밖에도 <무타협 미식가>는 2척(약 60cm)짜리 도룡뇽을 직접 요리해 먹은 일화, 참치 초밥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 각종 오차즈케에 대한 상세한 소개 등 흥미로운 요소를 세세히 전해 준다. 


'먹고 마시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맛을 잘 아는 사람은 드물다(人莫不飮食也, 鮮能知味也)'는 중용(中庸)에 나타난 공자님 말씀까지 거론하며 자신의 '미식'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내는 로산진. 그가 꼽은 최고의 미식은 의외로 '무미(無味)를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로산진은 바다의 복어와 산의 고사리를 들어 설명했지만, 마치 우리나라 가래떡과 같이 쉽게 설명하기 힘든 맛을 가진-혹은 아예 맛을 갖지 않은-음식이자 어떤 형태로든 자유로이 모습을 바꿔 맛을 드러내는 음식을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맛에는 엄청난 매력이 숨어 있다. 무미의 맛 그 자체가 바닥을 모를 정도로 깊고 조화롭다. 나아가 그 배후에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으므로 진정한 맛이라 할 수 있다." - '궁극의 진미를 찾아서' 가운데



<무타협 미식가>는 로산진의 미식론을 다룬 '미식가의 길', 로산진이 이끌었던 고급 식당 호시가오카 사료(星ヶ岡茶寮)와 요리에 대한 생각을 담은 '요리의 본질', 로산진이 찾아낸 맛에 대한 일화 '궁극의 진미를 찾아서', 일본의 음식 소개와 즐기는 법을 설명한 '미식이란 음식을 제대로 알고 먹는 것', 그리고 오차즈케라는 일본 음식을 주제로 한 '오차즈케를 아십니까' 등 5장으로 구성됐다. 역자 김유는 로산진이 남긴 음식론, 미식론 중 가장 중요한 글을 우리나라 최초로 옮겼다고 한다.


앞서 간략히 밝혔듯 로산진의 생애는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자살과 어머니의 부재로 수차례 입양을 다닌 어린 시절, 무려 6번 결혼했지만 모두 파경에 이르고 두 명의 아들까지 요절한 불운, 그리고 하나 남은 딸마저도  왕래를 끊고 살 정도로 지독히 외로운 삶. 로산진이 '무타협 미식가'로서 유독 두 가지 미(美, 味)에 집착하게 된 배경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요즘 요리사들을 향한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고, 교양이 있고, 까불지 않는 합리적인 요리를 추구하라"는 그의 진심어린 충고는 그저 독선과 오만으로만은 들리지 않는다. <무타협 미식가>를 진작 만나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며, 앞으로의 '맛 기행'을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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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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