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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의 태동 ㅣ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월
평점 :
"이 세상은 일부의 인간들만으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다. 얼핏 보기에 아무 재능도 없고 가치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야말로 중요한 구성 요소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범용하고 무자각적으로 살아갈 뿐이라 해도 그것이 집합체가 되었을 때, 극적인 물리법칙을 실현해낸다. 인간은 원자다."
뇌의학과 물리학을 배경으로 태어난 정신적 초인(超人), '라플라스의 악마'가 돌아왔다. <마력의 태동(魔力の胎動)-라플라스의 탄생>은 2015년 또다른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를 발견했던 <라플라스의 마녀>의 프리퀄 소설이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30년 작품활동을 맞아 "지금까지의 내 소설을 깨부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대로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다가왔다.
<마력의 태동>은 <라플라스의 마녀>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우하라 마도카의 활약을 다룬 다섯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라플라스의 마녀>를 접한 독자라면 '아하, 그렇게 된 거구나!' 끄덕이며 읽어내려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인간과 과학, 그리고 미래를 정면에서 다룬 소설에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마력(魔力)'이라는 표현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인간, 즉 한 개인의 정신적인 승리와 신념을 이야기한다. 1장 '저 바람에 맞서서 날아올라'는 노장 스키 점퍼 사카야가 가족의 힘을 믿으며 자존감을 되찾는 기적을, 2장 '이 손으로 마구(魔球)를'에서는 신인 포수 산토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렸다.
뇌신경외과 권위자인 우하라 젠타로의 딸 마도카는 다섯 장의 에피소드에서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그러나 과학적인 추론을 근거로 사건을 다루고 치유의 능력을 발휘한다. 바람에 지배당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바람을 지배하는 것('저 바람에 맞서서 날아올라'에서). 토네이도로 인해 어머니를 잃은 마도카는 더 이상 같은 이유로 타인이 상처받길 원하지 않는다.
<라플라스의 마녀>에서 익숙한 캐릭터들을 다시 만나는 것은 <마력의 태동>에서 큰 즐거움이다. 우직하면서도 든든한 다케오, 치밀하고 섬세한 기리미야 레이 등 마도카를 돕는 콤비, 마지막 장에 나타나 두 책을 연결지어 주는 지구화학전문가 아오에 교수가 그들이다. 직접 언급되진 않지만 우하라 박사가 탄생시킨 또 한 명의 초인 아마카스 겐토는 마도카의 입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낸다.
새롭게 등장한 등장인물들은 앞으로의 '라플라스 시리즈'에서의 활약이 기대된다. 어린 마도카를 신뢰하며 거리감을 좁혀가는 침구사 구도 나유타가 대표적이다. 향후 그의 비중을 히가시노 게이고는 4장 '어디선가 길을 잃고 헤맬지라도'에서 그 본내를 슬쩍 드러낸다. 영화감독 아마카스 사이세이, 제작자 미즈키 요시로와의 악연을 가진 구도 나유타를 상세히 다룬다. 나유타는 마도카의 도움으로 그의 본명 구도 게이타(京太)를 되찾는다.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1749~1827)는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이것은 뉴턴의 운동 법칙을 이용해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해 주고, 미래까지 예언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 가설 속의 존재가 바로 '라플라스의 악마(Laplace’s demon)'다.
난류를 풀어가는 마도카의 신비한 능력은 책에서 자주 거론되듯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새로운 시리즈 '라플라스'역시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