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아킨토스 고블 씬 북 시리즈
박애진 지음 / 고블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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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뭘까? 

모든 사람이 다 다른 대답을 할 것이다. 각자에게 사랑은 다른 모양일 수 있으니까. 


이번에는 다른 질문을 해보자. 인공지능은 사랑을 알까? 여기에는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박애진의 <히아킨토스>는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해 재미있는 대답을 해주고 있다. 


여기 하나의 완벽한 피조물이 있다. 마치 사랑을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사랑스러운 존재. 인공지능 로봇, 다른 말로 휴머노이드인 제로델이 바로 그렇다. 그는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극도로 사랑스러운 존재,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며 동시에 깊은 만족감을 줄 줄 아는 존재다. 


제로델이 사랑을 알지 못한다면 그 누가 사랑을 알까?


그리고 여기, 누구보다도 진심이었지만 결국 자신의 사랑을 저버렸던 한 사람의 신부가 있다. 신부 카이유와는 제로델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제로델을 둘러싼 사람들을 하나하나 만난다. 사랑의 화신이나 다름없는 제로델에 대해 알아가며 신부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생각한다. 제로델은 경이로운 존재이지만 동시에 신부와 똑같이 사랑 앞에서 고뇌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사랑이 사람을 좌절시킬 때, 그 사람이나 존재가 어떤 자이든 그 고통은 두려움이었다. 신부는 제로델을 사유하며 달라진다. 좌절 앞에 부딪친 존재를 축복하며 스스로의 과거에서 한 발 더 앞으로 나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신부의 사유가 어떻든간에 독자는 제로델에게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다. 제로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사랑이란 무엇일까? 한 사람의 기술자가 선사할 수 있는 어떤 예술적인 경험이 사랑일 수도 있다면 우리는 미래에 어떤 기대를 가지게 될까? 빈부의 극단적인 격차에서 벗어난 사회가 누릴 수 있는 중세나 로판의 형식을 띈 양식이 사람들을 인형놀이와 같은 역할극에 잡아두게 된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떤 기쁨을 추구하게 될까?


이 모든 질문들이 <히아킨토스> 안에서 흥미진진한 답을 만날 수 있다. 


박애진의 작품은 언제나 도전적이고 장르소설에서 가장 뜨거운 이야기가 될 준비가 되어있다. SF에 섹스로봇 얘기 좀 그만 써라 같은 심사위원 불평의 여운이 아직 다 가시지도 않았는데 <히아킨토스>는 바로 그 섹스로봇 이야기로 수상을 거머쥐었다. 박애진 작가는 잘쓰는 정도가 아니다. 박애진의 작품을 읽고 나면 가슴도 머리도 뜨겁게 불탄다. 그리고 논쟁으로 과감하게 뛰어들기까지 한다. 작가의 이 재미있는 행보가 매번 기대가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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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아킨토스 고블 씬 북 시리즈
박애진 지음 / 고블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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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델에게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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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아래 붉은 바다
김석범 지음, 조수일 옮김 / 소명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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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아래 붉은 바다>는 재일소설가 김석범의 단편집이다. 김석범은 1925년에 오사카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고향인 제주도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일본에 돌아왔을 때 제주 4.3이 일어났고 그 후 작품활동에서 꾸준히 소재로 삼는 등 국가폭력을 고발하기 위해 애썼다.

단편집에 실려있는 3편의 소설과 1편의 대담을 읽다보면 그가 평생 얼마나 제주에서 일어났던 참혹한 사건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역사와 함께해왔는지 느낄 수 있다.

<소거된 고독>은 포장마차 밑바닥을 운영하는 K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삶과 이상 사이의 혼란 속에서도 센티멘털리즘으로 자기자신의 기분을 포장하지 않으려 애쓴다. 보통 하는 일처럼 포장마차 장사를 해보려 하기도 했다. 그것도 잘 되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K는 장사나 영업을 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 그가 했던 사회운동들은 사회를 변혁시키지는 못했다. 그저 끔찍한 현실을 같이 견뎌나갈 동료가 몇 있을 뿐이다. 같이 운동에 참여했던 동료들에게도 자신들의 입장이 있다. 조국에는 네가 필요하다고 편지에 쓰는 동료가 있지만 그 삶에 섣불리 뛰어들면 굶어죽을 수도 있다. 아니면 총살당할 수도 있다. 생활이 유지되지 않아 굶어죽거나 잡혀가서 총살당하거나 어찌됐건 죽음의 위협이 늘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포장마차에서 계속 술을 마신다. 집에 가서도 술을 마신다.

그렇지만 K는 취재하고 글을 쓴다. 술을 마시면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것이 취재라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또 말하고 있다. 그가 썼던 글로 인해서 포장마차를 열게 되기도 하고 또 제주에서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나 서울의 동료들 이야기를 어떻게든 써나가며 비인간 상태를 견디고 있다. 감상적인 기분에 잠기지 않으면서 주변의 끔찍한 이야기를 견디며 술을 마시기도 하지만 어쨌든 계속해서 써나가고 써나가기로 결심한다.

글은 짧지만 상당히 무게가 있고 역사적 사실들과 K가 간신히 제 자리에서 정신을 유지하고 써나가는 듯한 이야기다. 가슴이 묵직해지지만 그만큼 그 당시에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한 사람들의 내면풍경을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는 처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거운 역사적 사건들과 그에 이어져 계속되는 국가폭력,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삶을 간신히 살아내고 있는 한 활동가의 기록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병치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보름달 아래 붉은 바다>에서는 여러모로 재미있었는데 꼭 대학에서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랑 마지막까지 술자리에 남았을 때 느껴지는 다들 취해서 자기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남이 듣든 말든 계속 해버리고야 마는 그런 순간을 보여주는 거 같았던 부분이 진짜 웃겼다. 어디서 많이 보던 풍경같은데.. 영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제발 정신차리고 K선생이랑 술마시지 말라고.. 한편으로는 좀 틀어서 생각해보기도 했다. 작가라면 자기 작품을 읽어주는 젊고 귀여운 독자가 있다. 이것도 굉장한데 낡고 지친 창작자에게 선생님 저 다음편이 너무 보고 싶어요(츄) 이러면 이거는 판타지아냐? 현실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약간 든다. 역시 술을 마실 수 있으면 다들 성인이지. 홍상수영화처럼 행동할 수도 있지. 그치만 역시 어느정도는 판타지같아서 웃겼다. 선생님 술 너무 많이 드셔서 꿈꾸시는거 같아요. 들어가서 주무세요.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글을 쓴다고? 그래서 진짜 놀랐다. 거의 자료집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말해주는 작품이다. 4.3과 관련된 자료들은 대중에게 닿을 수 있는 형태로 제작된 작품이 많지 않다. 제일 많이 알려진 <순이삼촌>과 같은 작품도 현기영 작가가 옥살이를 각오하고 썼다고 알려져있다(실제로 작가가 옥살이를 했음). K선생이 마주하고 써내려가고 있는 글은 "사람들이 개고양이처럼 죽어나가는" 제주도, 그 안에서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사건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소설이다. 4.3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흔하지 않은데다 이렇게 자세한 사건 몇 개를 들여다보는 듯한 내용은 다시금 충격을 준다.

이런 사건들을 마주하고 있던 K나 영이같은 사람들이 서로 하고 싶고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땅의 동통>은 조선적을 가지고 일본에서 살고 있던 지식인들이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말해준다. 조선적을 가지고 있던 K는 참사관을 통해 한국에 입국하기 위한 허가증을 받는다. 원래라면 국적을 바꿔야 하지만 당시 통일을 굳게 믿고 있던 자이니치 지식인 사회는 자신들의 신념을 바꾸지 않기 위해 조선적을 유지하던 상황이다. K는 그 과정에서 한국정부와 실랑이를 하게 되지만 어떻게든 한국에 들어와 강연과 좌담회, 공동기자회견 등의 일들을 해나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K는 파괴세력, 북괴공작원과 관계가 있다느니 하는 음해에도 시달리게 되기도 하고 그가 제주로 가는 일정을 방해하기 위해 배를 탈 시간에 운행을 중단시켜버리는 일을 겪게되기도 한다. 어린시절 알고 지냈던 제주의 친척들은 자신이 방문하자 찾아오지도 않고 전화도 떨면서 받는다. 그러나 K는 의연하게 일들을 해결해나가려 애쓴다. 그의 주변을 감시하는 사복경찰을 놀리거나 하는 우스운 일도 일어나지만 대체로 씁쓸한 현실이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다루기 어렵다. 이렇게까지 국가와 국가폭력에 맞서 정면으로 대치하고 밀고 당기며 자신의 의견을 굳건히 지키려 했던 작가가 얼마나 되는가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사실 대담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두 가지 면에서 그랬다.

하나는 반공이데올로기가 권력확립의 도구이자 건국이념처럼 작동한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리고 그 판단대로 현재도 작동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로 보여진다. 씁쓸하지만 4.3이 있었던 때부터 지금까지 이런 판단을 할 수 있었던 지식인들이 계속 말하고 있었다는 것도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일본어 문학'에 대한 생각이다. 김석범은 자신의 문학을 일본문학이 아니라 일본어로 쓰여진 문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어로 쓰면 일본문학이라는 건 언어속문주의, 언어 내셔널리즘이라고 말한 부분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조선인으로서 일본어로 쓰겠다는 그리하여 강요받은 것을 통해 오히려 지배구조를 안에서부터 뛰어넘어보겠다는 발상과 실천은 대담하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자기 삶으로 실천해온 인물이라는 것도 존경의 마음이 생기게 된다.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지만 읽는동안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배워간다.


#김석범

#보름달아래붉은바다

#소명출판

#서평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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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로 놀지 마 어른들아
구라치 준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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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재밌는 본격미스테리를 쓰는 작가 구라치 준의 《시체로 놀지마 어른들아》가 신간으로 나와 빨리 읽을 기회가 생겼다.
여행에 가져와서 읽게 되었는데 쉽지만 간단하지 않은 문제를 풀어가며 신나게 읽을 수 있었다. 4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하나가 다 너무 기괴하고 신기하면서도 일본 사회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들이어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본격 오브 더 리빙 데드》는 좀비가 우글우글 나오는 산장에서 누군가가 살해되는 이야기이다. 한가지가 아니라 여러가지 장르가 섞인 느낌인데 그게 또 기괴하지만 어울린다. 게다가 신나게 읽어내려가다보면 수수께끼도 해결된다. 전형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산장이라는 전통적인 배경에서의 조합인데도 좀비가 잔뜩 나온다는 점이 웃기고 재밌다.
살인범은 좀비다. 수수께끼 앞에서 두려움마저 실종된 것 같은 인물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의 긴장과 완화가 재미있었다. 예능이나 게임을 지켜보는 감각과 비슷하기도 하다는게 더 재미있는 부분이다.

《당황한 세 명의 범인 후보》는 다소 엉뚱한 재미가 있다. 위법행위 등 각종 문제 상담소라는 말이 웃겼는데 묘하게 복잡하고 바보같은 행정시스템을 비꼬는 것 같아 냉소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나오는 인물들도 엉뚱하고 재미있는데 갑자기 나타나는 스님 캐릭터라든지 여장클럽같은 소재가 흥미롭다.

《그것을 동반자살이라고 불러야 하는가》는 처음부터 이게 무슨 소리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자가 산 자를 죽였다고? 그게 가능해? 하지만 그게 정말 가능하다면 어떻게 된걸까?
인터넷 방송이라는 컨셉과 인물들의 캐릭터 컨셉이 너무 웃겼다
인터넷 방송의 컨셉이란 정말 대단한느낌이다. 특히 아야뿅의 대단함에 감동했다. 공룡이나 전서구같은 엉뚱함에 웃게된다. 이게 바로 캐릭터구나 바로 이해됐다.

《시체로 놀지 마 어른들아》는 이 책의 표제작이면서 마지막 단편이다. 소름끼치지만 어떻게든 범죄를 감추고 싶은 사람의 궁지에 몰린 마음을 생각해보게되는 점이 마음에 남았다.

가볍게 스릴을 즐기고 싶을 때 일본 본격 미스테리만큼 재밌는 건 없는 것 같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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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와일딩 선언 - 자유로운 야생으로의 초대
김산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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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와일딩이 대체 뭐지?
자연에 야생성을 되찾아주는 일, 리와일딩은 자연이 제대로 회복되어 알아서 잘 굴러가도록 하는 일이다. 《리와일딩 선언》은 리와일딩이라는 다소 알쏭달쏭한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놓은 근사한 입문서다. 이해하기 쉽지만 그만큼 읽다보면 고민이 깊어진다.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지고? 말은 쉽다. 그러나 그게 과연 간단한 문제일까. 책의 추천사에서 정세랑 작가도 이렇게 말한다.
"리와일딩의 핵심 개념 중 하나가 대형 포식자를 다시 불러오는 것일 때, 얼마나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을 돌파해야 할까? 이를테면 호랑이를 캐릭터로 사랑하는 것과, 호랑이와 함께 살아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일테다."

그러나 리와일딩은 이미 전세계적인 현상이자 추세이며 막을 수 없는 물결이다. 대표적 사례를 읽다보면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부터 노스페이스나 파타고니아 같은 익숙한 브랜드들의 이야기, 국가적 노력과 개인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진 리와일딩 사례들, 실패와 성공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해가는 리와일딩의 이야기를 읽으면 야생을 회복하는 것이 왜 중요한 것인지 차츰 이해되기 시작한다.

지구가 야생을 회복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 이미 멸종되어 사라진 여러 생물들이 리와일딩 운동을 통해 돌아오고 있다. 한강에 수달이 돌아올 때, 철새 도래지에 다시 새들이 반가운 모습을 드러낼 때, 두루미가 농부들과 어울려 땅을 비옥하게 할 때 우리는 서로 윈윈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반대로 동물과 식물, 각종 벌레나 균류 등의 멸종이 인간과 인간문명을 조금씩 멸종의 길로 이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리와일딩 운동 뿐이다. 우리가 리와일딩 운동에 갖는 낯설음과 거부감은 아직 우리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일수도 있고 잘못된 정보와 방법 때문일수도 있다. 이런 것들은 앞으로 고쳐나갈 일이고 미래의 인류가 도전해볼만한 모험이다.

인간 문명이 만들어낸 인간의 비대해진 자아를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일이 왜 필요한가? 《리와일딩 선언》을 읽으면 알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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