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팝니다
미시마 유키오 지음, 최혜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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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말이 되나?

1950년대에 금각사 쓰던 사람 책이 갑자기 2015년에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것이다. 20만부씩 팔려나간데다가 2018년에는 드라마화가 되기까지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그 요란한 베스트셀러는 미시마 유키오의 <목숨을 팝니다>다. 이 책을 읽고 나니까 완전 납득이 됐다. 이 사람 너무 일찍 태어난 것 같다. 예쁜 거 좋아하고 돈 좋아하고 죽고만 싶어하는게 딱 요즘사람이었다. 다 읽고 나서도 헛웃음이 났다. 


주인공 하니오는 자살에 실패했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나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에는 완전히 질려서 저지른 일이다. 그렇지만 자살에 실패하고 나니 자기 삶을 자기 주관대로 살아가기는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그는 자기 목숨을 팔아보기로 한다. 신문에 익명으로 광고를 내고 자기 목숨을 마음대로 써줄 사람을 찾는다.


자기 목숨을 판다는 이 어이없는 아이디어에 끌린 사람들이 하니오를 찾아온다. 하니오는 이야기를 듣고 돈을 받은 다음 그에 맞는 일을 해준다. 대부분 자기 대신 죽어달라는 이야기였지만 죽을 결심을 하고 난 하니오는 되려 죽지도 않는다.


세상의 규칙에서 벗어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계속 하니오를 찾아온다.


내 아내가 불륜을 하고 있다. 네가 불륜남이 되어서 내 아내를 꼬셔서 잔 다음 그리고 다른 남자에게 들켜서 둘 다 살해당해 줘.


수상한 조직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을 구하고 있는데 나한테 그 책이 있어. 그 책에 나오는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실험하게 해주면 돈을 준다는데 나 대신 그 방법으로 죽어 줘.


우리 엄마는 흡혈귀인데 먹이가 되어 죽어 줘.


암호해독을 알아와야 하는 우리팀 스파이들이 미션 수행중에 자꾸 죽는데 암호해독 방법을 알아와주고 그 과정에서 죽을 일이 생기면 죽어 줘.


목숨을 버린 남자 하니오는 말 그대로 죽을 자리에 뚜벅뚜벅 걸어들어간다. 살려고 하면 추잡해지고 떨려오지만 남을 위해 목숨을 버리려고 하면 뭐든 멋있게 해결해버리게 되는 것은 이상하고도 재미있는 일이다. 


의미없는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뭘까.

남들이 시켜준 말도 안되는 일들을 척척 해내는 하니오를 보다보면 현대인의 삶도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예전부터 내려오던 전통적인 삶, 가정적인 삶, 세상의 규칙에 맞춰 사는 삶들은 이제 하니오의 관심범위가 아니다. 그냥 살아있으니까 사는 거고 죽을 때까지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또 어떤 의미를 스스로 찾아 거기에 맞춰 살아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 과정에서 삶의 의욕을 되찾는 것도 괴롭다. 그 때부터 삶은 위험하고 긴장되고 어려운 것으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하니오처럼 목숨을 내다 팔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대인이라면 <목숨을 팝니다>를 한 부 사서 읽는 것으로 하나오의 삶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하니오는 목숨을 내다 파는 사람이니 어디로든 훌쩍 떠나고 홀가분해보인다. 잠깐의 쾌락을 추구하다가 결국 삶에 붙들려 망가져버리는 사람의 시간을 들여다보는 데에는 단 몇 시간의 독서면 충분하다. 


#미시마유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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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 : 상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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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은 전설이다. 

호러, SF, 판타지, 서스펜스 작가로서는 이미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그가 만든 소설들이 할리우드를 만났을 때는 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캐리>, <샤이닝>, <미저리>,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 <미스트> 끝도없이 명작들이 이어진다. 스티븐 킹을 모른대도 소설 한 줄 읽지 않는대도 여기 나온 영화의 이름 정도는 누구라도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2025년 여름, 스티븐 킹의 신간이 출간되었다. 제목은 무려 다음과 같다. <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 미친거 아냐 이거. 사람을 얼마나 무섭게 하려는걸까.


이렇게 정직한 제목이라니 홀린듯이 읽기 시작한 이야기는 마치 여름밤의 모험처럼 두렵지만 설레기 시작한다.


<재주 많은 두 녀석>에서는 갑자기 성공한 두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술과 글쓰기같은 각자의 분야에서 노력은 했지만 성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두 남자는 어느 날, 문득, 갑자기 엄청난 재능을 보이며 전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화가와 작가로 성공한다. 그 성공에는 뭔가 비밀이 있다. 뒤가 구린 비밀일까? 아니면 무슨 외계인이라도 만난걸까? 갑작스럽게 재능이 개화해서 전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되다니 어떻게 그런게 가능한거지? 읽는 내내 숨을 참으며 자기가 원하는 분야에서 성공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갈망과 이루고 싶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다소 컴컴한 주제로 한발자국씩 들어가는 재미가 있다. 


<5단계>는 정말로 사악하다. 중독자들은 흔히 5단계를 통해 중독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듣기 싫지만 어쩐지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알콜중독자의 이런 어두침침한 고백 최악이야! 하지만 읽는 내내 대화를 이끌어가는 이 솜씨에 영락없이 걸려들어가고 말았다. 끝까지 다 읽고 난 다음에는 이 사악한 대화의 덫에 걸려들어간 나 자신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싶어진다. 


<별종 윌리>에는 별종이라 불리는 기분나쁜 소년 윌리가 나온다. 읽는 내내 이게 뭐야? 이건 뭐냐고! 기분나쁘고 찜찜하고 나약하지만 사악한 우정의 교류를 들여다보면 샤론처럼 얼굴을 찌푸리게 된다. 그렇지만 읽는 내내 대체 얘기가 어떻게 되려고 이러지 하면서 끝까지 따라가고 말았다. 으 기분나빠 하지만 대체 일이 어떻게 이렇게 된거지 너무 신기해. 찜찜하고 기분나빠. 하지만 정말이지 잊을 수 없는 엔딩을 보여준다.


<대니 코플린의 악몽>

이 책의 본론은 이 단편에 있다고 확신한다. 정말 재미있고 끝까지 보지 않으면 안되는 이 미친 소설은 처음에는 농담처럼 시작한다. 살해된 여자에 대한 꿈을 꾼 대니라는 남자가 있다. 그는 이건 꿈이고 사실이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찜찜했기 때문에 그 장소에 갔더니 정말로 살해당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경찰은 수사를 시작하고 그 죄를 대니에게 뒤집어씌우려고 거의 미쳐버렸다. 대니는 이제 모든 수모를 견뎌내면서 범인이 잡히기를 기다려야 한다. 이야기는 한 줄 읽어나갈때마다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대니에게 어쩌다 이런 일이 생긴거지. 그렇지만 살아나갈 구멍은 있다. 대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게 나를 잡아넣으려고 돌아버린 부패 경찰이든 내 말을 믿지 않지만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하는 경찰이든간에. 


<핀>을 읽고 나면 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를 죽도록 두들겨패는 운명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인생은 언제든 나를 두들겨팰 준비가 되어있고 그 과정에서 내 주머니에 돈이 얼마간 생기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게 뭐 어떻다는건가. 운이 나빴다거나, 그 서류에 대해서 모른다거나, 그 사람은 내가 아니라거나 그런 말들은 내가 얻어터질때에 변명이 되어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살아있고 시간이 흐르면 어느 순간이 되면 우리는 어릴 때 놀던 놀이터에 다시 앉아있게 된다. 취했든 미쳤든 중요한 건 우리가 미끄럼틀을 다시 기어오르게 된다는 거다.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일들이 그저 악몽일지도 모른다고 믿고 싶다.  


스티븐 킹이 이 모든 어두운 기억들을 그의 머릿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머릿속에서 다시 끌어낸다. 심지어 (상)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하)편도 있다. 두 권이나 된단 말이다. 어둡고 점점 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이야기가 영혼까지 털어낸다. 여름밤에 현실을 싹 잊어버리게 만드는 진짜 어둡고 무서운 이야기.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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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보지 말 것 - 미니어처 왕국 훔쳐보기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 그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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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스테리 소설은 늘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흥미로운 소재, 스릴 넘치는 전개, 예쁘고 소중한 것들, 지나간 것들을 향한 그리운 마음

그리고 자기자신을 움켜쥐고 있는 사건과 시대에서 벗어나 어디로든 자유롭게 떠날 수 있고 그 모든 것이 자신과 상관없어질 때쯤 돌아와서 그것을 그리워할 수 있는 예쁘고 아련한 마음.

<열어보지 말 것>에는 그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수해와 빈 상자>나 <상자 속 왕국>처럼 상자 속에 왕국이 있다는 설정은 매혹적이다. 현실의 고단함과 괴로움으로 인해 도피처를 찾는 사람에게도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지루한 사람에게도 솔깃한 이야기다. 비슷한 방식의 이야기를 많이 봤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은 절박한 마음은 현실의 각박함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절대 지루해질 수 없다. 내가 있을 곳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디론가 자신이 있을 곳을 향해서 그것이 상자안일지라도 들어가려는 마음이 이해가 된다. 그리고 들어간 상자 안에서는 정말로 놀라운 모험과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

그 안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인생, 그리고 이상한 것들까지 쓰네가와 고타로는 적재적소에 미스테리, 살인, 여행과 떠돌이 생활, 가끔은 속시원한 이야기까지.


그렇지만 그렇게 떠돌게 된 사람들의 역사는 어떻게 될까?


좋아서 모험을 선택해 떠나게 된 사람도 있지만 강제로 자기가 살던 땅과 시대에서 떨어져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서글픈 면이 있다. 자신이 본래 태어난 시대와 사람들에게서 강제로 떨어져버린 사람들은 준거집단을 잃는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표현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자신을 알아줄 사람들은 이미 멀리 사라져버린 것이다.


역사에서 분리된 역사적 사건은 코메디가 되어버렸다. <정지된 평원>에는 전쟁중인 30만명이 그 자리에서 산것도 죽은 것도 아닌채로 굳어버렸다. 모든 사람이 그 30만명을 그저 살아있는 화석이 되기를 원하며 그것을 그들의 시대와 맥락대로 돌려놓기를 포기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평화를 유지한다. 그게 평화인가? 전쟁을 하지 않는 것만이 평화라면 그것도 평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냥 지저분하다고 방을 정리하지 않고 이사가는 사람이 떠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이게 맞아? 웃어넘길 수밖에 없다.


그러면 개인은 어떤가?


흡혈귀는 머물곳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떠돌며 광매를 먹고 돌이 되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고 사랑받는 것 역시 기억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영원히 살지만 소중한 것을 모두 잃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는 사람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살아가는 것은 살아가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지만 자기가 잘 지내던 모든 것에서 강제로 떨어지게 되는 것은 그리고 그것을 나중에 그리워하는 것은 삶을 유령처럼 만들어버린다. 오래 살아갈뿐인 유령, 하지만 소중하고 아련한 기억은 남아있는 그대로다.


일본 소설들은 재미있다. 수준이 높고 잘 가다듬어져있어 언제 어떻게 읽어도 신나고 즐겁다. 잘 가공된 미스테리가 주는 쾌감, 아름답고 낭만적인 소재들, 어디론가 탈출하거나 내던져져서 온 세상을 떠돌게 된 사람들. 자기 시대나 공동체의 역사에서 빠져나와 다른 역사를 향해 나아가고 영원히 도착하지는 못하는 사람들의 낭만적인 이야기.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의 판타지에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다면 쓰네카와 고타로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이렇게 살 겁니다 어느곳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낭만화된채로, 연결되지는 못하지만 화석처럼 남아서. 영원히 어디에도 연관되지 못하고 개인과 개인의 미약한 애정에 기대어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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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여름 캐드펠 수사 시리즈 18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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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도발적인 반란의 여름은 의외로 피서같은 시원함이 있는 책이었다. 17권에서는 다소 쓸쓸한 기분이 드는 엔딩이었는데 18권에서는 다시 중세를 배경으로 한 역사추리소설의 기깔나는 도입부로 시작한다. 중세 배경의 권력암투 게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초반을 달리다보면 충성심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


왕과 왕의 아우

왕과 가신

가신이 보여주는 충성심

눈 앞에서 섬기는 자를 잃은 기사의 고통과 복수

아버지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사랑하지만 방해되는 딸을 치워버려야 하는 상황


너를 사랑하지만 이런 건 좀 너무하지 않아?

너를 사랑하지만 이렇게까지 하라는 것은 아니었다.

당신이 무슨 잘못을 하더라도 나는 끝까지 당신을 섬길 것입니다.

당신을 죽인 자를 찾아내어 복수하겠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내가 방해된다면 나는 도망치겠다. 어디로든 가겠다.


이런 여러가지의 충돌 모두 결국 사람이 사람을 따르는 충성심, 로열티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람이 사람을 따르는 것은 그 기저가 어떻든 보는 것만으로도 충족감을 준다. 어리석은 사람이든 똑똑한 사람이든 그 마음의 충실함을 보고 마음의 끝으로 내닫는 그 모든 행동들이 포로와 인질협상, 전쟁과 거래, 충성심과 복수와 어우러져 중세 전쟁터의 한복판에 있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여름을 배경으로 한 이 반란의 처음부터 끝까지 달리다보면

사건사고라면 어디든 빠지지 않는 캐드펠 수사의 체력에 감탄하게 되기도 한다. 아니 전쟁터나 수색에서도 어떻게 빠지지 않고 이렇게 다니시는거죠. 옆을 따라 걷는 것을 때에는 그저 감탄만. 캐드펠 수사가 고생할수록 이야기가 재밌어져서 앞으로 남은 권수만큼에서도 이렇게 고생해주었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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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땅 캐드펠 수사 시리즈 17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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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땅을 읽으면서 캐드펠 시리즈에서 기대하지 않은 키워드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부동산 이슈. 부동산 거래는 아니고 말하자면 교환이나 증여에 가까운 형태다. 수도원에 아주 좋은 땅이 교환의 형태로 귀속되는 일이 생겼다. 그 땅의 원래 주인이었던 자는 얼마전에 수도사가 된 루알드 수사인데 그는 수도사가 되기 위해 자기 아내를 억지로 떠났다. 재산도 가족도 버리고 수사가 되기 위해 떠나자 그의 아내는 길지 않은 시간 뒤에 그의 집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는 수도원의 것이 된 땅에서는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다. 

뼈밖에 남지 않은 그 여성의 시신에서는 어쩐지 루알드 수사의 부인이 연상되는 길고 검은 이방인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루알드 수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소망은 단순하다. 신의 사제가 되어 인생을 종교에 바치고 밝고 깨끗한 마음으로 섬기며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한가. 그를 온 마음으로 사랑한 한 사람의 삶은 완전히 파탄나게 되었다. 


하나의 가정은 두 사람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공동체이다. 

경제공동체이기도 하고 안식처이기도 하며 한 집안을 크게 일굴 수 있는 작은 씨앗이 되기도 한다. 이방인의 몸으로 단 한사람을 바라보고 결혼하여 주변과 제대로 된 커뮤니티를 형성하지도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남편은 신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그녀를 버렸다. 자기가 밟은 땅에서 온전히 살아갈 방법을 잃은 한 여자의 삶을 읽는 기분은 다소 쓸쓸하다. 


땅은 하나의 장소일 뿐이고 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중요하다. 살아갈 공동체를 잃은 사람은 고작해야 그 땅에 묻힐 수 있을 뿐, 삶을 살아내지는 못했다. 신을 선택한다는 것이 얼마나 이기적인 행동일 수 있었는지 되짚어봐야 이미 죽어버린 사람의 앞에서는 헛되다. 


땅이라는 소재로 이렇게 공동체와 사랑, 삶을 살아갈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과 그저 이렇게 사는 것을 끝내는 것밖에는 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하는 선택에 대해 읽을 수 있는 점은 재미있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이렇게 권이 허투르지 않고 전부 각자의 깊이를 가지면서 재미가 있다. 21권까지밖에 남지 않았다니 아껴 읽고 싶은 마음과 빨리 전부 읽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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