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 타이거!
앨프리드 베스터 지음, 해도연 옮김, 듀나 해설 / 다산책방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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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나를 버리자마자 각성에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 찌질하고 바보같던 한 사람 걸리 포일도 그랬다. 


야망이 부족해서 그 누구도 그 사람이 제대로 된 녀석이 될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찌질이.


그런 남자가 우주 난파선에 갇혀서도 그냥 사는지 죽는지 모를 날만 기다렸다가 자기를 구하지 않고 사라지는 배 한 척에 인격을 갈아끼우고 미친듯이 날뛴다.


너를 죽일 것이다.


복수할 것이다.


일단 가만 안둘 것이다 너는 진짜 내가 죽인다.


이런 세상 또라이같은 마음 하나로 우주 끝까지 날아가는 모습을 보다보면 어쩐지 속이 시원해진다.


책 바깥에는 찌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 명의 현대인인 내가 여기 있다.


나는 심지어 존트도 할 수 없다. 그러니까 내가 존트나 포일보다 조금 더 불쌍한 것 같은데... 


존트하게 해줘.


존트가 자기 뜻때로는 존트하지 못했더라도 존트로 낭만과 야만의 시대를 열어버렸던 것에도 보르가 호가 자기를 떠났을 때 포일이 자기자신을 구할 수 있게 된 것에도 열광했다.


이 남자가 쓰레기같은 결말을 맞이해도 좋다.


야만과 낭만이 뒤섞인 쓰레기같은 세상 속에서 버려졌다고 울부짖어도 일단 내가 더 불쌍하다.


구르고 굴러서 그가 복수하기를 열망하면서 책장을 순식간에 넘기게 된다.




일단은 책이 진짜 미친듯이 재밌다. 오랜만에 정말 재밌었다. 파괴된 남자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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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무늬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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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만이 우리를 상처입힐 수 있고 또 보호한다

카미는 안면인식장애가 있는 22세의 패션학교 학생이다. 카미가 장애가 생긴 이유는 3살때 부모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겪고 뇌를 다쳤기 때문인데 그는 그 이후로 그 어떤 사람의 얼굴도 볼 수 없다. 대신 그에게는 여러가지 특징들을 조합해 사람들을 구분하는 능력이 생겼다. 그리고 카미는 이 능력을 이용해 부모님 죽음에 대한 단서를 어떻게든 추적하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 이유에 대해 알 수 없었을때 우리는 자기 파멸적인 방식으로라도 그 이유에 다가가기 위해 몸부림친다. 카미는 뇌가 다칠 정도로 충격을 받았지만 그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얻게 된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가 어떤 이유로 이런 파멸적인 선택을 했는지 궁금해하고 도움을 주려고 애쓴다.

카미는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을까. 상처받고 고통받은지 오래된 사람은 길을 잃기 쉽다. 하지만 한 사람이 자신의 온 힘을 다해 어딘가를 향해 간다면 반드시 누군가는 공명해주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으로 인한 것이라면 그 공명을 통해 사람을 구할수도 있다는 것을 카미를 통해 알게 되었다.

사건을 추리해가는 과정도 너무 재미있었고 가슴을 울리는 결말까지 즐겁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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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2
솔베이 발레 지음, 손화수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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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벤트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1권을 다 읽고 난 후, 주인공 타라가 대체 이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궁금증이 일어 견딜 수 없는 기분으로 2권을 펼쳤다. 그리고 읽는 내내 느낀 가장 강렬한 감상은, 이 작품이 타임루프라는 명백한 SF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뼛속까지 '순문학'의 영혼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순문학 작가들이 트렌드에 편승해 SF 소재를 섣불리 차용할 때 독자들은 곤혹스러운 경험을 하곤 한다. SF도 아니고 순문학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기괴한 '키메라' 같은 결과물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금세 눈치 빠른 꼬맹이가 되어 구역질 나는 표정을 짓게 된다. 


하지만 솔베이 발레의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는 그런 얕은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억지로 두 장르를 섞으려 이상한 짓을 하는 대신, 자신만의 순문학적 밀도와 속도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이런 면에서 사만다 하비의 『궤도(Orbital)』가 떠오르기도 한다. 『궤도』 역시 SF라기보다는 과학 이야기가 빼곡히 들어찬, 끔찍하게 재미있는 논픽션적 소설에 가까웠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소재는 타임루프지만, 『시간 여행자의 아내』가 보여준 낭만적인 로맨스의 궤적과는 결이 다르다. 이곳에 등장하는 사랑과 관계는 지독하리만치 현실적이고 진짜 같다. 장르의 클리셰를 빌려 상업적인 의미를 창출하려는 태도와는 완전히 반대편에 서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독자와 작가 사이의 무언의 '약속'을 전제로 한다. 배경, 캐릭터, 소재 등 텍스트를 이루는 모든 요소가 그 약속의 장치다. 장르 소설은 클리셰의 반복과 상업적 구획을 통해 독자의 예상된 욕망을 충실히 이행하며 이 약속을 지킨다. 그 약속을 안전하게 지키는 작가들은 막대한 부와 성공을 얻는다. 반면, 어떤 작가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온몸으로 밀고 나가기 위해 그 약속을 철저히 부수며, 기어코 그 이야기를 들어야만 하는 사람들과 깊게 연결된다.


한나 야나기하라의 『리틀 라이프』를 떠올려 보자. 그 작품은 초기엔 특정 장르적 결합(BL과 섹스 앤 더 시티의 조화 같은)으로 시작하는 듯하지만, 이내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나가며 독자가 상상했던 장르의 외연과 인간 삶의 규격을 산산조각 낸다. 그때 독자의 멘탈도 함께 부서지지만, 동시에 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최고의 경지를 목격하게 된다.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경지에 다가선다. 순문학과 SF라는 두 가지 규격을 아슬아슬하게 쥐고 있으면서도, 작가와 독자의 '약속'을 부수고 동시에 지켜내는 경이로운 테크닉을 선보인다.


독자의 욕망은 사실 완벽히 매끄럽지 않으며 수많은 틈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독자 자신조차 본인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가 있다. 마치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아이폰 20'의 디자인을 알지 못하지만, 막상 그것이 주어졌을 때 열광하게 되는 유저들의 마음처럼 말이다. 솔베이 발레는 독자가 미리 정해두었던 기대감과 얄팍한 욕망의 외연을 우아하게 넘어선다. 작가만의 속도로 조형된 특별한 서사에 올라타며 나도 기대를 하게 되었다. 이 작가가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것을 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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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더 포뮬러 - 전 세계 8억 명이 열광하는 단 하나의 공식
조슈아 로빈슨.조너선 클레그 지음, 김동규 옮김, 김남호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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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 책의 장르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책이 정말로 논픽션이란 말인가? 모든 인물들은 서로와 극단적 대결구도를 형성했다. 한 드라이버가 포멀하게 갖춰입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은 그 포멀한 것 뺴고 전부 입는 패셔니스타였다. 한 팀의 비극은 또 한 팀의 승리를 가져오는 음모론이 되고, 어떤 엔지니어들은 드라이버들보다 더 꺼드럭거렸으며 드라이버들은 미친듯이 돈을 벌어제꼈고 목숨을 걸고 도로에 나가 정말로 죽었다. 


허세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건가? 이 안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이렇게까지 드라마틱하다고? 픽션이 현실을 이길 수 없다는 이야기가 F1에서는 거짓말이 아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로맨스, 다큐멘터리, 심지어는 페이크로 어떤 이야기를 자아내더라도 한번의 경기에 미친듯이 돈을 태우고 또 한 번의 경기에 젊은이들의 목숨이 오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새로운 광기를 가진 차량에 그들을 태우고 그들이 얼마나 빠르게 달리는지를 알아보는 이 레이스는 경기장 안밖에서 얼마나 사람들이(특히 남자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추앙하고 경쟁할만한 자리를 찾아헤메왔는지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자신이 목숨을 바칠 전장에서 화려하게 격투하는 공작새들의 싸움이 얼마나 재밌는지 이 책의 모든 페이지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우습게 만들 지경이다. 삶에 자극이 필요한 여성들에게도 자신의 전장을 찾아헤메는 마초적인 남자들에게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 책은 F1에 대해 알려준다며 로맨스 소설의 절대적 남성성의 현현처럼 나타난다. 모든 페이지가 웃음을 참을 수 없을 만큼 거들먹거리지만 동시에 이 모든 이야기에서 묻어나오는 진심의 레이스가 어느순간 사람을 집중시키기도 한다. 그러니까 정말로 재미있다.


#F1더포뮬러

#서평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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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1
솔베이 발레 지음, 손화수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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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가까운 사람과 멀어져 본 적이 있는가? 상대의 마음이 바뀌어서도 아니고 내가 바뀌어서도 아니고 오직 어떤 상황으로 인해 그것도 처음에는 대단치 않은 어떤 작은 틈이었다가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서 결국은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그런 상황 말이다.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는 총 2권인데 1권에서 주인공 타라 셀테르는 자기 남편과 그런 식으로 멀어졌다. 갑자기 시간의 틈새에 빠졌다는 남들에게 이해시키기 어려운 기묘한 상황에 빠졌고 그렇게 남편은 11월 18일에 있었던 그 어떤 일도 기억하지 못하고 11월 17일로 혼자서 계속 돌아간다.

11월 18일은 매일매일 똑같은 영상을 재생하는 것처럼 반복된다. 타라는 그 안에서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남편을 어떻게든 자신의 시간과 같은 시간을 살게 만들려고 발버둥치지만 결국 시간의 틈새에 빠져있는 타라를 두고 남편은 유령처럼 11월 18일이 지나가면 다음날로 넘어가지 못하고 리셋되어 그 안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남편이 하는 일은 오직 타라, 파리로 잠깐 업무를 보러 간 자신의 아내를 기다리는 일이다. 타라는 남편의 주변을 맴돌며 파리에서 돌아온척하기도 하고 그녀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설명하려고도 하고 일을 해결하려는 노력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실패한다.

타라의 노력은 기묘하다. 타라는 유령처럼 변하지 않는 세상을 경험하고 그 세상의 물자들을 조금씩 소비해서 고갈시킨다. 11월 18일에 고정된 세계는 타라가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모든 것들에 의해 조금씩 소멸한다. 타라가 소멸시킨 세상은 돌아오지 않고 그녀의 남편은 세상의 이상함을 여전히 감지하지 못한다. 오직 타라만이 자기 몸에 일어나는 아주 작은 변화들, 세상에서 자신이 좀먹고 있는 부분들을 인지할 뿐이다. 내가 세계를 좀먹는 벌레?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까지 오면 주인공이 얼마나 세상의 틈바구니에 빠져 발버둥치는지 느껴질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 어떻게 이렇게까지 침착한거지?

책을 읽다보면 담담하고 아름다운 시선을 가진 타라의 뒤를 조급하게 쫓아가고 있는 기분이 든다. 타라는 침착해보인다. 심지어 좌절했을 때 조차도 어떡하면 좋냐고 소리나 지르고 싶은 나보다는 훨씬 의젓하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지만 자신과 함께할 수 없는 남편을 마주할 수 없을 때가 왔을 때에도 침착했다. 갑자기 시간의 틈에 빠져서 하루를 반복하게 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침착함을 가지고 그녀가 이 기괴한 세상에서 어떤 선택을 하기로 선택한것인지 빨리 2권을 보고 알아봐야겠다는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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