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수생각 3
박광수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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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광수생각은 주지하다시피 한국 신문만화계에 일대 바람을 불러왔던 연재물이다. 나는 조선일보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광수생각의 연재에 있어서는 당시의 조선일보가 상당히 괜찮은 시도를 했다고 생각한다. 광수생각의 내용도 신선한 느낌을 주는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연재가 계속되면서 박광수씨는 소재의 부족에 시달리고 급기야는 매너리즘에 빠져버린 듯하다. 물론 매일 한 편씩의 작품을 만들어낸다는게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겠지만, 그의 만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개연성과 설득력을 현저히 잃어버리며 하나마나한 도덕 교과서 같은 이야기만, 그것도 지겨울 정도로 되풀이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광수생각에서 중학생 수준의 감수성 이상의 것을 느끼지 못하겠다. 더구나 단행본 3권의 경우엔 자신의 경험이라고 풀어놓는 이야기라는게 대단히 작위적인 냄새가 풍기는 것들이 많다. 독자를 감동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유치한 과장과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다는 생각에 만화가 위선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광수생각의 몰락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은 역시 작가가 지니고 있는 내공의 문제라는 것이다. 작가가 착하게 살려는 건 알겠는데, 만화가답지 못하게 답답한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결국 광수생각의 가치는 신문만화 시장을 대중적으로 개척해냈다는 점, 그 상징성에 머물수밖에 없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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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 세트 - 전10권 - 2003년 개정판
나관중 지음, 김구용 옮김 / 솔출판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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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서점가의 '삼국지' 바람이 수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름 있는 작가들에 의한 새로운 '삼국지' 번역물이 꾸준히 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일한 소설에 대한 번역물들이 이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도 이를 출판 자본의 낭비나 불필요한 중복 경쟁으로 보는 시각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삼국지'의 스케일이 방대하고 다양한 시각에서의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삼국지'에 대한 해석의 다양함은 책읽는 즐거움의 다양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독자들에겐 이득이면 이득이지 해가 될 일은 아니다.

이를테면 L모 작가의 '삼국지 평역'은 본래의 삼국지 내용을 상당 부분 변형시킴으로써 자신의 스타일을 마음껏 살리고 독자들에게 적잖은 즐거움을 준 바 있다. 그런데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우리나라의 '삼국지' 번역물 중 '삼국지연의'의 원본을 충실하게 번역한 경우가 의외로 적다는 점이다. '삼국지'를 단순히 스토리를 즐기는 차원에서 소비할 것이라면 상관없는 일이겠으나 - 사실 이러한 '삼국지' 읽기도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 명, 청대부터 민중들을 웃기고 울렸던 역사적 정서까지 느끼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대본의 느낌을 삭제하지 않은 충실한 번역이 필수적이다.

'김구용 삼국지연의'는 그러한 점에서 우리나라의 복잡한 '삼국지' 시장에서 또렷한 개성과 존재감을 확보하고 있다. '김구용의 삼국지연의'는 입담 좋은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듯한 구수한 느낌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고루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있는데, 이것이 작가의 역량이라면 역량일 것이다. '삼국지'를 3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상대하지도 말라는 말이 있다. 워낙 많은 지혜를 담고 있는 책이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을 통달한 사람과 상대를 했다가는 낭패를 본다고 생긴 말이다. 이를 다시 생각해보면 복잡하고 치열한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는 것은 필수 사항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기왕 세 번 이상 읽을 것이라면 똑같은 번역본을 되풀이해 읽는 것보다 각기 다른 번역본들을 돌아가며 읽는 것이 3번의 독서로 10번의 독서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다양한  '삼국지 읽기'를 통해 동양
고전의 고풍스러운 향을 느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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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왕과 양키 - 마크 트웨인 대표선집 4 마크 트웨인 대표선집 4
마크 트웨인 지음, 조애리 옮김 / 미래사 / 199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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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기사 윌리엄’이라는 영화가 개봉된 적이 있다. 그 영화에선 기사들의 마상 창술 시합이 수많은 팬을 거느린 인기 스포츠였고, 시합장엔 퀸의 노래가 울려퍼졌으며, 심지어 대장장이가 자신이 만든 갑옷에 나이키 상표를 새겨 넣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영화 자체의 퀄리티는 차치하더라도 중세적 요소와 근대적 요소의 흥미로운 혼합은 ‘기사 윌리엄’의 독특한 매력이었음에 틀림없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 “아더왕과 양키”는 ‘기사 윌리엄’이 지니고 있던 독특한 매력과 비슷한 느낌을 풍기고 있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기사 윌리엄’보다 몇 배는 재미있다!

마크 트웨인의 독설이야 워낙 정평이 나 있는 것이지만 “아더왕과 양키”는 그야말로 마크 트웨인표 독설의 정수를 모아놓은 듯 한 작품이다. 19세기 유물주의자의 눈에 비친 전설속 ‘원탁의 기사들’은 하나같이 멍청한데다 게으르고 거짓말까지 밥먹듯이 하는 한심한 족속들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아무리 가르쳐줘도 당최 말이 안통하는 멍청한 인간들’에 대한 씨니컬한 비웃음과 그들에 의해 필연적으로 도래할 디스토피아에 대한 우울한 예견이다. 마크 트웨인은 시대를 앞서가는 똑똑한 사람들이 의례 그렇듯이 중요한 사회적 문제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을 경멸했고, 또 답답해했던 것 같다.

근대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양키는 중세의 사람들을 끊임없이 설득하고 그들의 사고 구조를 개조하기 위해 지대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타고난 코드의 상이함을 극복하지 못한 채 실패하고 만다. 얼핏 비이성, 비합리성으로 대표되는 중세 의식구조에 대한 비판으로 보이지만 이는 사실 근대에 대입해도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다. 근대정신의 화신인 양키가 숭배해 마지않는 이성 제일주의와 합리성 제일주의도 결국은 그 독선성과 폭력성에 있어서 중세의 종교와 다를 바 없는 억압적인 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중세의 의식구조 뿐 아니라 근대의 의식구조까지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전방위로 날을 세우고 있는 공격적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마크 트웨인이 중세와 근대를 싸잡아서 격렬하게 비꼬고 비판하고는 있지만 정작 그조차도 명쾌한 대안까지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작품이 지니고 있는 살아서 펄떡거리는 풍자 정신은 충분히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120년이라는 세월의 두께를 넘어서까지 독자에게 웃음을 전달해 줄 수 있는 작가는 많지 않다. 어설픈 유머에 대해서 결코 관대하지 않은 현대인들조차 이 책을 읽고 웃음을 터트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마크 트웨인이 탁월한 능력을 지닌 작가라는 점을 증명하는 것임과 동시에 본 작품이 단지 질 낮은 유머로 뒤범벅이 된 가벼운 글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다.

만만치 않은 주제 의식을 품고 있으면서도 결코 무겁지만은 않은, 명랑하고도 경쾌한 이야기를 찾는 이들이 있다면 “아더왕과 양키”를 한번 읽어봄이 좋을 듯 하다. 마크 트웨인의 날렵한 글솜씨가 그대를 유쾌한 전설의 땅 카멜롯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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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이 무거운 철학 가볍게 하기 - 전2권
도널드 팔머 지음, 남경태.이용대 옮김 / 현실과과학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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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문사철(文史哲) 중에서 철학은 가장 접근하기 까다로운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서사 구조를 통해 ‘즐긴다’는 표현이 가능한 문학이나 사학과는 달리 철학은 기본적인 개념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기가 질리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은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학문임에 틀림없다. 비단 인문학뿐만 아니라 어떤 학문을 하더라도 철학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2000년도 더 지난 고대의 사람인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최근의 사이버 스페이스와 관련한 논쟁과 관련해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철학의 생명력과 효용성이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잘 말해주는 사례다. 철학을 일컬어 ‘학문의 왕’이라고 부르는 것은 괜한 수사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철학의 역사가 길고 워낙 많은 사상가들을 배출했기 때문에 그들의 사상을 한 두권의 책으로 체계적이고 알기 쉽게 정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때문에 철학 입문서라고 불리우는 것들의 상당수는 너무 어려워서 ‘입문서’로서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거나, 너무 간략화시켜서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 수준의 암기 목록집에 머물곤 한다. 이 책은 그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고 철학 입문서로써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저자는 분절된 철학사를 개관하는 것이 아니라 각 시대의 대표적 철학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주고 있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책의 매 페이지마다 삽입되어 있는 그림이다. 그림은 대단히 유머러스하지만 - 예를 들어 갈릴레이가 자신과 비슷한 견해를 내세웠다가 종교 재판에 회부된 사실을 깨닫고 ‘제기랄’하고 외치며 허둥지둥 원고를 맡긴 출판사로 뛰어가는 데카르트의 모습 - 결코 경박하지 않다. 그림은 본문의 내용과 정확히 부합하는 위치에 뚜렷한 목표를 지니고 삽입되어 있다. 저자가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글과 그림은 서로를 보완하고 호응하며 독서의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토익이나 토플 실력이 능력 있는 사람의 척도로 여겨지고 있는 당금의 현실 속에서도 철학의 가치는 도도히 빛을 발한다. 깊은 사유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건 단순한 인문학적 교양을 쌓기 위해서건 철학 공부는 여전히 지식인에게 필수적인 것이며, 이 책은 그 길잡이 역할을 훌륭히 충족하고 있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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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말 뷰티 웅진 완역 세계명작 3
애너 슈얼 지음, 다이너 드라이허스트 그림, 김옥수 옮김, 김서정 해설 / 웅진주니어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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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야기보다 훨씬 진한 감동을 주는 동물 이야기들이 있다. 시튼 동물기가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는데, 이 책 '검정말 뷰티' 역시 그렇다. 저자는 검정말 뷰티가 망아지였을 때부터 늙은 말이 될 때까지, 한 말의 일생을 담담히 그리고 있는데 그 전개가 참으로 눈물겹다. 귀한 혈통과 성품을 지닌 뷰티가 난폭한 시승자 때문에 다리를 다치고 그로 인해 무거운 짐을 끄는 신세로 전락해 심한 고생을 다하는 모습에서 눈시울을 적시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 싶다. 말을 동물이 아니라 사람처럼 느끼게 만드는 저자의 흡인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주변에 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면 선물로 주기에 적당한 책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에 읽은 책의 감동은 평생을 가는 법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어렸을 때 읽었지만 지금까지 가슴이 촉촉해옴을 느낀다. 추천한다. 망설임없이 사줘도 된다. 아이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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