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더왕과 양키 - 마크 트웨인 대표선집 4 ㅣ 마크 트웨인 대표선집 4
마크 트웨인 지음, 조애리 옮김 / 미래사 / 1995년 4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에 ‘기사 윌리엄’이라는 영화가 개봉된 적이 있다. 그 영화에선 기사들의 마상 창술 시합이 수많은 팬을 거느린 인기 스포츠였고, 시합장엔 퀸의 노래가 울려퍼졌으며, 심지어 대장장이가 자신이 만든 갑옷에 나이키 상표를 새겨 넣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영화 자체의 퀄리티는 차치하더라도 중세적 요소와 근대적 요소의 흥미로운 혼합은 ‘기사 윌리엄’의 독특한 매력이었음에 틀림없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 “아더왕과 양키”는 ‘기사 윌리엄’이 지니고 있던 독특한 매력과 비슷한 느낌을 풍기고 있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기사 윌리엄’보다 몇 배는 재미있다!
마크 트웨인의 독설이야 워낙 정평이 나 있는 것이지만 “아더왕과 양키”는 그야말로 마크 트웨인표 독설의 정수를 모아놓은 듯 한 작품이다. 19세기 유물주의자의 눈에 비친 전설속 ‘원탁의 기사들’은 하나같이 멍청한데다 게으르고 거짓말까지 밥먹듯이 하는 한심한 족속들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아무리 가르쳐줘도 당최 말이 안통하는 멍청한 인간들’에 대한 씨니컬한 비웃음과 그들에 의해 필연적으로 도래할 디스토피아에 대한 우울한 예견이다. 마크 트웨인은 시대를 앞서가는 똑똑한 사람들이 의례 그렇듯이 중요한 사회적 문제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을 경멸했고, 또 답답해했던 것 같다.
근대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양키는 중세의 사람들을 끊임없이 설득하고 그들의 사고 구조를 개조하기 위해 지대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타고난 코드의 상이함을 극복하지 못한 채 실패하고 만다. 얼핏 비이성, 비합리성으로 대표되는 중세 의식구조에 대한 비판으로 보이지만 이는 사실 근대에 대입해도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다. 근대정신의 화신인 양키가 숭배해 마지않는 이성 제일주의와 합리성 제일주의도 결국은 그 독선성과 폭력성에 있어서 중세의 종교와 다를 바 없는 억압적인 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중세의 의식구조 뿐 아니라 근대의 의식구조까지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전방위로 날을 세우고 있는 공격적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마크 트웨인이 중세와 근대를 싸잡아서 격렬하게 비꼬고 비판하고는 있지만 정작 그조차도 명쾌한 대안까지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작품이 지니고 있는 살아서 펄떡거리는 풍자 정신은 충분히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120년이라는 세월의 두께를 넘어서까지 독자에게 웃음을 전달해 줄 수 있는 작가는 많지 않다. 어설픈 유머에 대해서 결코 관대하지 않은 현대인들조차 이 책을 읽고 웃음을 터트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마크 트웨인이 탁월한 능력을 지닌 작가라는 점을 증명하는 것임과 동시에 본 작품이 단지 질 낮은 유머로 뒤범벅이 된 가벼운 글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다.
만만치 않은 주제 의식을 품고 있으면서도 결코 무겁지만은 않은, 명랑하고도 경쾌한 이야기를 찾는 이들이 있다면 “아더왕과 양키”를 한번 읽어봄이 좋을 듯 하다. 마크 트웨인의 날렵한 글솜씨가 그대를 유쾌한 전설의 땅 카멜롯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