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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잡념을 없앤다는 뜻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 중요한 것에 관심을 쏟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쏟는가에 따라 소중한 선물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스펜서존슨 <선물 >

하루하루 바쁘게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 나도 그 중 하나이다. 시계바늘에 쫓기며, 깔려서 뭉개지지 않도록 겨우겨우 떠밀려서 하루하루를 나아가고 있다. 꼭 공부가 아닐 지라도 무엇인가를 하느라 항상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나는 항상 바쁘다는 생각 뿐 그 생각만큼 열심히 하루를 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게으름. 그래 이것도 그 원인 중 하나이지.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내가 현재에 올인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에 올인하자. 올인하자. 좋아! 물론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학업이지만, 매시간 충실하게 산다면 내 삶을 더욱 충만하게 해줄 다른 무언가들을 더욱 많이 할 수 있겠지. 내가 여지껏 무심히 흘려보냈던 과거를 후회하진 않는다. 결국 그 과거가, 나의 역사가 모여 현재의 나를 이뤄낸 것이니까. 그 과거가 있기에 더욱 높이 날 수 있으니까. 지금도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는 시간. 사실 따지고 보면 시간이라고 명명해 놓고 시계와 달력을 만들어 수치화 시켜 놓은 것은 인간들인데,, '시간'이란 그 자체가 마치 대단한 무엇이라도 되는 것처럼 절대화 시킬 필요는 없다. 그냥 매 순간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다 보면 그것이 모여 풍요로운 인생을 즐길 수 있겠지.Present. 현재. 현재에 올인하자. 앞으로도 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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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무아 > 필멸의 인간이 가지는 슬픔의 서사시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길가메쉬서사시를 <죽음의 공포에 대한 서사시>라고 이름 붙였다. 길가메쉬는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문명의 도시국가 우르크의 왕이다. 그는 2/3는 신이고 1/3은 인간인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존재로서 신화와 역사 양쪽에 두루 속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폭정을 저지하기 위해 창조된 엔키두와 함께 신들의 산인 삼목산의 산지기 훔바바를 죽이는 등 용맹을 발휘하지만 엔키두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와 생의 유한(有限)에 절망하게 된다. 길가메쉬는 영생의 길을 찾기 위해 영생자인 우트나피쉬팀을 찾아 머나먼 순례를 길을 떠난다. 우트나피쉬팀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죽음의 바다에 다다랐을 때 바닷가의 여인숙을 지키고있는 지혜의 여신 씨두리에게 길가메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죽음이 두렵소. 내 친구(엔키두)의 죽음이 부른 난제가 나를 압박했소. 내가 죽음일 보지 않게 해주시오. 나는 그것이 정말로 무섭소"

이에 씨두리는 길가메쉬에게 답한다.

"당신이 찾고 있는 영생은 발견할 수 없어요. 신들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인간에게는 필멸의 삶을 배정했고, 자신들은 불멸의 삶을 가져갔지요. 영생은 인간의 몫이 아니지요"

영생의 길을 찾는 무모함 대신 이생에서의 삶을 즐기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고 행복이라는 것을 씨두리가 말해주었지만 그것이 영생자 우트나피쉬팀을 만나고자 하는 길가메쉬의 갈망을 단념하도록 하지는 못했다. 결국 씨두리는 죽음의 바다를 건너가는 뱃사공 우르샤나비를 소개해주고 길가메쉬는 마침내 우르샤나비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영생자 우트나피쉬팀을 만나게 된다. 우트나피쉬팀은 길가메쉬에게 신들이 인간에게 내린 대홍수재앙으로부터 유일하게 자신이 살아남아 신처럼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리고 길가메쉬에게 늙지 않고 젊음을 되찾을 수 있는 불로초를 선물로 주어 다시 인간의 세계로 돌려보낸다. 하지만 도중에 뱀에게 불로초를 강탈당하게 되고 결국 길가메쉬는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죽음의 잔을 마시게 된다.

모든 인간이 운명적으로 피할 수 없이 직면하는 문제가 바로 죽음이다. 길가메쉬서사시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벗어나 위해 영생을 길을 찾아 헤매는 인간 영혼의 순례도(巡禮圖)이다. 특별히 성경의 창세기설화의 많은 부분들이 이 <길가메쉬서사시>의 히브리적 신화의 변형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일은 이 책을 읽는 중요한 즐거움이자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성서 자체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성서의 설화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본다. 원형(原型)에 대한 이해는 변형(變形)대한 이해를 깊게 해준다.

신의 모습을 닮은 인간의 창조이야기, 성서의 에덴과 수메르의 에딘, 성서의 가인과 아벨 이야기의 원형이 되는 양치기 두무지와 농부 엔킴두의 이야기, 성서의 바벨탑사건과 신들의 왕 엔키에 의한 인간언어의 혼란, 대홍수재앙에서 살아남은 노아와 우트나피쉬팀, 그리고 그들이 지은 방주, 인간에게서 낙원의 삶을 앗아가는 뱀의 출현, 성서의 만나와 우트나피쉬팀의 주님이 하늘에서 억수같이 쏟아져 내리게 하는 빵, 노아가 날려보낸 비둘기와 까마귀, 우트나피쉬팀이 날려보낸 비둘기와 제비와 까마귀, 길가메쉬가 우트나피쉬팀에게 얻었다가 뱀에게 빼앗긴 불로초와 성서의 생명나무 등…
<길가메쉬서사시>를 읽다보면 성서의 창세기를 읽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만큼 성서의 창세설화는 이 수메르신화에 그 신화적 원형을 두고 있다. 창세기의 원본을 보는 지적 재미와 흥분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인간에게는 필멸의 삶을, 신들에게는 불멸의 삶을 배정한 신들!
영생자 우트나피쉬팀은 길가메쉬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쉼없이 고생하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고생 끝에 네 자신이 완전히 지쳐버리면, 너는 네 몸을 슬픔으로 가득 채우고 너의 긴 인생 항로를 조급히 끝내는 길로 접어든다! 인간! 그들의 자손들은 갈대처럼 부러진다. 잘생긴 젊은이나 귀여운 소녀들도 죽음은… 아무도 죽음을 알 수 없고, 아무도 죽음의 얼굴을 볼 수 없고, 아무도 죽음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비정한 죽음은 인간을 꺾어버린다. ……………너는 인간이다! 범인이든 귀인이든, 꼭 한번은 인생의 종착역에 도착하고, 하나처럼 모두 모여든다. ……………신들이 삶과 죽음을 지정해두었지만, 그들은 죽음의 날을 결코 발설하지 않는다."

영생의 세계로 건너가는 죽음의 바닷가에 여인숙을 지키며 홀로 술을 빗으며 살고 있는 지혜의 여신 씨두리! 그녀가 만드는 포도주는 인간이 안고 있는 죽음의 공포와 생의 허무를 잊게 만드는 망각의 술이 아니었을까? 인간은 이 세상이라는 여인숙에 잠시 머물다 떠나는 나그네와 같은 존재이기에 인간의 몫인 이 세상의 삶에 충실하고 감사하며 매일같이 기쁨으로 축제하듯 살아야 한다고 말한 게 아닐까? 인간은 저마다 언제 이 세상의 소풍이 끝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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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도서관에서 수많은 책들을 보고, 느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느꼈다.

멈추지 않는 행복이 계속해서 솟아오름과, 다시 태어난 듯한 기분.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

오늘 TV에 나온 '청소년 자원봉사센터'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멋진 사람이 되겠다고. 나는 다짐했다.

조금 전, 몇일 전치 신문을 뒤적이다 발견한 기사에서 나는 보았다.

내가 꼭 닮고 싶은 어떤 대학생의 모습을.

그녀는 내가 보기에 가장 행복한 사람 인 것 같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또 최고가 되었다.

방학마다 해외봉사를 다니면서, 학기중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새벽까지 공부를 하면서

그렇게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학과도 내가 가고 싶어하는 과.. 외교학. 이다.

정말, 자신의 삶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을 위해서도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꿈 많은 18세인 나도. 미래의 내 모습이 그러하기를 꿈 꾸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참 한심할 따름이다.

바로 어제 다짐했는데,,

후회따윈 하지 말자. 자신감을 가지고,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최선을 다하고

인생을 즐기며 살자.

다시 한 번 다짐하기 위해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그녀는, 힘이 들 때마다 해외봉사를 하며 찍은 사진들을 보고 힘을 얻었다고 한다.

나는 앞으로 그녀의 기사를 보며 힘을 얻을 것이다.

지난날을 많이 후회하곤 한다. 하지만 고작해야 17년..

내겐 앞으로 나아갈 길이 더 많이 남아 있다.

정말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타인으로부터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부터 인정 받아야 한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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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리와 함께 우체국에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가 무척이나 화가 난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자세한 상황설명은 생략하기로 하고,

아무튼, 이수연선생님께 긴 메일을 보낸 뒤라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지만

몇 줄 다짐을 써보자면,

앞으로는 할 말은 꼭 다 하자. 자신있게! 이것이다.

나는 자신감 없고, 그 순간에는 말하지 못하고서

나중에 혼자서 그상황을 되돌아보고, 그때서야 적절한 말을 찾아내어

혼자서 끄적이거나 생각해 보고, 후회하고, 혼자 화를 삭이는 이런 내 모습이 너무나도 싫다.

그래서 나는 화가 난다.

왜 그 때 그 곳에서는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걸까?

그리고, 왜 그 때는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걸까?

나중에 혼자서, '만약에 누구였다면 그 때 이렇게 했을 텐데.. 나는 왜 그러지 못했지?'

라며 후회하고,  혼자 분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이런 싫은 내 모습에 화가나서 울고.

이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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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11시까지 나의 가장 좋은 친구 중 한 명인 영은이와 1시간 넘게 전화통화를 했다.

오랜만이라 얼마나 기뻤던지^-^

그런데, 말미에, 영은이의 말로 인해 나는 다시금 나의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J고를 간 P모양 이야기 때문에.. '이XX 너에게 질순 없지!!!!!!!' 라나;

......

내 생각에 나 자신이 너무나 인간적인것 같다.

너무 인간적이다 보니 참,, 살아가는데 너무 힘이 든다ㅠ

이건 내 자랑이 아니라 갈등, 고민, 걱정이 많은 나의 마음을 토로하는 것인데a

나는 인간적인 삶을 원하는데, 동화적인 인생~

그런데, 너무나 현실적인 다르게 말하면 세속적인 주위 사람들로 인해

나 자신의 마음이 너무나 갈등이 된다.

하하. 뭐 난 세속적이지 않다는 듯이 말하고 있는듯 들리는데-_-

사실, 난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 보다는 너무 공상적이고 낭만적[?]이라..

그만큼 더 심한 마음의 동요와 갈등을 느끼고 살고 있다..

물론, 기계적으로 공부한다는 것이 꼭 세속적이고 현실적이고 나쁜건 아니지..

세속적이고 현실적인것이 나쁜것도 아니고.

아무튼 남은 2주동안만이라도 나는 조금 더 현실적이고 보통 아이들처럼 되어 보고자 한다.

도서관에 갈 것이다-_- 꼭! 내일은 시계의 따르릉 소리에 바로 벌떡 일어나겠어!

아, 물론 영은이와 함께 교보문고에 가는 날은 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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