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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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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립된 사람들에게 현실이 한순간 뒤흔들리면서 그보다 더 생생한 환상이 나타나는 건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고 떠들어댔다. 제아무리 견고하다 해도 현실은 인간의 감각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이므로. 인간은 누구나 한번즘 자신의 감각이 바뀌면서 현실이 무르게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마련인데, 이를 두고 십자가의 성 요한은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이라고 불렀다. 모든 성인들은 자발적으로 고립을 택해 그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으로 들어가는데, 이는 현실이 오직 감각을 통해서만 드러난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다. 하지만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을 경험한 그 다음 순간, 모든 성인들은 감각적 현실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계인지 깨닫게 된다. 현실이 감각적으로만 성립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모든 게 덧없을 뿐이라는 허무주의에 빠져야 할 텐데, 아이로니컬하게도 더욱더 그 감각적인 생생함을 즐기게 되니 놀라운 일이다. 그러므로 그 밤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최상의 행복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42쪽

그들은 그 '죽음'을 독점하려 했으나 그들 역시 한 시대의 구성원인 이상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 '죽은'과 '상실'과 '몰락'은 동시대인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주관적이었다. 그러므로 애당초 선언 따위로 객관화될 수는 없었다. 동시대인들은 임상적으로 그 '죽음'과 '상실'과 '몰락'을 제 몸 안에서 앓는 수밖에 없었다. 그건 프랜시스 후쿠야마를 되뇌던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48쪽

개인적인 모든 것은 전적으로 이해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욕망이기에, 나는 거기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었다. 이윽고 나는 그게 사창가에서 드러나는 욕망과 달리 나만의 사적인 욕망이기 때문에 덫과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엘레나가 된 순희를 향한 욕망은 연민의 감정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랑으로 포장됐으므로 도덕적이고 공적인 것이었다. 도덕적이고 공적이라는 말은 그런 욕망을 지닌 우리들이 그 욕망의 대상들보다 사회적 위치가 높다는 사실을 뜻했다. ... 그러나 명배히 부도덕한 모든 것들은 인간의 무의식을 점령하고 거기서 떠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1990년 가을, 나는 "그리고 大腦와 性器 사이"의 어딘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53쪽

그러므로 사랑은 모든 인류를 유일한 존재로 만들고, 또 그러므로 이 우주는 유한할 수밖에 없다. -65쪽

그 순간 정민이 왜 그 이야기를 떠올렸고, 또 내게 들려주려고 마음먹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이야기는 씨앗처럼 내 마음 한구석에 뿌려졌다. 그 씨앗이 과연 어떻게 싹을 틔울지 당시의 나로서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다 들은 후 나의 결론은 그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모든 게 달라졌으리라는 것이었다. 사랑은 입술이고 라디오고 거대한 책이므로. 사랑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내게 말을 건네므로.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그 입술을 빌려 하는 말은, 바로 지금 여기가 내가 살아가야 할 세계라는 것이므로. 그리하여 우리는 이 세계의 모든 것들과 아름답게, 이토록 아름답게 연결되므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으니 사랑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것을, 오직 존재하는 것은 서로 닿는 입술의, 그 손길의, 살갗의, 그 몸의 움직임뿐이라는 것을 그도 알았더라면. -94쪽

폭력의 반대말은 비폭력이 아니라 권력이라고 한나 아렌트는 말한 바 있다. 권력이 훼손될 때, 그러니까 권력이 다른 곳으로 이양될 때, 폭력은 일어난다. 권력 유지에 안간힘을 쓰는 정권 아래에서 폭력이 빈번한 까닭은 그 때문이다. 그런 정권은 대리 감시자들에게 그 불안한 권력을 나눠주는 것으로 권력 유지의 한 방편을 삼는다. 그 대리 감시자들의 불안한 권력은 언제라도 다른 곳으로 이전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일상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그건 할아버지가 남긴 대서사시에 나오는 한국의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기도 했다. -104쪽

칼 세이건은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전제를 통해 이 우주가 이처럼 광활한 까닭은 어딘가에 우리와 같은 인류가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무의미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 세상은 온통 읽혀지기를, 들려지기를, 보여지기를 기다리는 것들 천지였다. -143쪽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그 순간 우리가 예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인생은 신비롭다. 그런 탓에 우리는 살아가면서 몇 번이나 다른 삶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무한한 삶. 그럼에도 우리의 삶은 일생, 즉 하나다. 우리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미쳐버렸을 것이다... 나 역시 몇 번을 스스로 물어도 나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간다고 해도 결국 나는 나였다. 그게 바로 내가 가진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150쪽

그래서 나는 망명이란 이름으로부터 도망치는 일이라고 생각해. 잔인한 현실을 꿈으로 만들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으니까. 현실을 꿈으로 만드는 첫번째 단계는 자신의 이름을 부정하는 일이야. -164쪽

희망이란, 밤이면 인간의 마음속에서 날개를 폈다가 해가 뜨면 사라지는 환상. 매일 밤 태어났다가 매일 아침 소멸하는 것. - <투란도트>-167쪽

그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이었으므로, 사실 변호사는 아무런 의견도 밝히지 않은 셈이었다. -210쪽

나는 행복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 행복을 찾기 위해 나는 온 세상을 떠돌아다녔으니까. 거기가 환하다는 이유만으로 마당에서 잃어버린 바늘을 찾는 물라 느스루딘처럼. 찾아내는 순간, 그간의 모든 노력이 무가치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그 보물을. 찾아내는 순간, 나의 인생이 더없이 짧다는 사실만을 가르쳐줄 뿐인 그 보물을. 그리하여 내가 찾는 진정한 보물이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만을 가르쳐줄 뿐인 그 보물을. -214쪽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4번의 세계란? 패배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일 뿐, 운명은 결코 패배하지 않으니 꿈처럼 지나가는 비극의 삶에서 살아남겠다면 먼저 웃으라는, 쓸쓸한 목관과 유머러스한 현악의 전언. 그 순간 베르크 씨는 차이코프스키가 그 교향곡을 작곡한 이래, 인류가 그 곡을 어떤 식으로 들었건 이제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러므로 다음에 올 인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곡을 새롭게 들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것은 폐허가 됐고 베를린에는 물도, 가스도, 전기도 없었다. 그런데도 삶은 계속되어야 했다. 그러므로 음악은 본질적으로 역설이었다. 왜냐하면 삶이 본질적으로 역설이니까.-220쪽

음악은 본질적으로 역설이지. 침묵을 이겨내기 위해 태어나지만, 결국 또다른 침묵으로 끝날 뿐이니까. 삶이 그런 것처럼.-227쪽

광주항쟁은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광주항쟁은 남한에 있는 모든 젊은이들을 우연한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346쪽

그때부터 나는 당혹스러운 일 앞에서 당혹스러워하지 않는 자들을 불신하게 됐다.-362쪽

인간이 환상의 희생자가 된다거나, 과거의 것이 새로운 것보다 더 강하다면, 혹은 '진실'이 자기 편이 아니라 자기와 대립하고 있다면, 새로운 인간의 시대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식하거나 인식한다고 믿는다면, 그 실망이야 이루 말할 수 없다. 상황은 이전만큼, 아니 이전보다 훨씬 더 나쁘다. 과거는 꿈을 위해 온갖 것을 희생하고 과감하게 전진했던 사람들을 기습하고 복수한다....최선을 다했기에 허탈감이, 아마도 그들은 너무나 희망했기에 너무나 절망하게 된다. 늪에 빠지지 않은 자들은 더 나쁜 구렁으로 빠져든다. 꿈을 위해 뛰어다녔던 사람들이 이제 그 꿈에 맞서서 뛰어다닌다! 좌절당한 개혁자보다 더 무자비한 반동분자는 없다. 길들여진 코끼리를 제외하자면 누가 야생 코끼리에 맞설 수 있겠는가. 그러나 실망한 사람들도 새로운 시대, 거대한 변혁의 시대에 살고 있다. 다만 그들은 새로운 시대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할 뿐이다. -373쪽

어둠 속에 머물다가 단 한 번뿐이었다고 하더라도 빛에 노출되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평생 그 빛을 잊지 못하리라. 그런 순간에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됐으므로. 그 기억만으로 그들은 빛을 향한, 평생에 걸친 여행을 시작한다. 과거는 끊임없이 다시 찾아오면서 그들을 습격하고 복수하지만, 그리하여 때로 그들은 사기꾼이나 협찹꾼으로 죽어가지만 그들이 죽어가는 세계는 전과는 다른 세계다. 우리가 빠른 걸음으로 길모퉁이를 돌아갈 때, 침대에서 연인과 사랑을 나눈 뒤 식어가는 몸으로 누웠을 때, 눈을 감고 먼저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몇 개의 문장으로 자신의 일생을 요약한 글을 모두 다 썼을 때, 그럴 때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과거는 몇 번씩 그 모습을 바꾸었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모습의 세계가 탄생했다. 실망한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 거대한 변혁의 시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살아갈 뿐이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자! 그들에게는 그들의 세계가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세계가 있다. 이 세계는 그렇게 여러 겹의 세계이며, 동시에 그 모든 세계는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믿자! -374쪽

어둠이 서서히 내리는 저녁이에요. 동쪽 하늘은 파랗고 거기로 별이 떠올라요. 하지만 서쪽을 보면, 아직 빛이 남아 있는 거죠. 요즘 베를린의 밤처럼 말이에요. 밤이 깊었는데도 사라지지 않는 빛. 모든 게 끝이 난다고 해도 인생은 조금 더 계속되리라는, 그런 느낌.-377쪽

해진 티셔츠, 낡은 잡지, 손때 묻은 만년필, 칠이 벗겨진 담배 케이스, 군데군데 사진이 뜯긴 흔적이 남은 사진첩. 이제는 누구도 꽃을 꽂지 않는 꽃병. 우리 인생의 이야기는 그런 사물들 속에 깃들지. 우리가 한번 손으로 만질 때마다 사물들은 예전과 다른 것으로 바뀌지. 우리가 없어져도 그 사물들은 남는거야. 사라진 우리를 대신해서. 네가 방금 들은 피아노 선율은 그 동안 안나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들었기 때문에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곡이 됐어. 그 선율이 무슨 의미인지 당시에는 몰라. 그건 결국 늦게 배달되는 편지와 같은 거지. 산 뒤에 표에 적힌 출발시간을 보고 나서야 그 기차가 이미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기차표처럼. 안나가 보내는 편지는 그런 뜻이었어. 우리는 지나간 뒤에야 삶에서 일어난 일들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며, 그 의미를 알게 된 뒤에는 돌이키는 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378쪽

지금은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사니까. 처음에는 실제로, 그 다음에는 회고담으로. 처음에는 어설프게, 그 다음에는 논리적으로.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삶이란 모두 이 두번째 회고담이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 -384쪽

편지의 끝에 나는 서로 체온의 힘을 믿었던 모스크바에서 벤야민이 아샤 라시스에게 읽어준 주름살에 관한 문장을 옮겨적고 있었다. ".....감각들이 머릿속에 둥지를 틀고 있지 않다는, 다시 말해 창문과 구름, 나무가 우리 두뇌 속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보고 감각하는 바로 그 장소에 깃들고 있는 것이라는 학설이 옳다면, 사랑하는 여인을 바라보는 순간 우린 우리 자신의 바깥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고통스럽게 긴장되고 구속되어 있다. 우리 눈을 못 뜨게 하면서 감각은 한 무리의 새떼처럼 그 여인의 눈부심 속에서 펄럭이며 날아오른다. 잎이 무성한 나무에서 숨을 곳을 찾는 새들처럼. 그렇게 저 감각들은 안전하게 자신을 숨길 수 있는 그늘진 주름살 속으로, 매력 없는 행동과 사랑받는 육체의 드러나지 않는 흠들 속으로 달아나는 것이다. 그 곁을 지나가는 그 누구도 이 결점들, 이 흠들 속에 덧없는 사랑에의 동요가 둥지를 틀고 있다는걸 알아채지 못한다." 그렇다. 학설이 옳다면, 우리는 가끔씩 우리 자신의 바깥에 존재한다... 강시우가 내게 건네주고 간 사진에서 우리가 여전히 볼 수 있는 바와 같이.-3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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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샹즈 황소자리 중국 현대소설선
라오서 지음, 심규호 옮김 / 황소자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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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즈는 아무 말도 없었다. 화도 내지 않았다. 마음이란 게 없어진 것 같았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리라. 그냥 되는 대로 하루하루 살아갈 것이다. 먹을 것이 있으면 먹고 마시고, 일이 있으면 일하고, 계속 손발을 놀리다보면 하루가 갈 것이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방아를 돌리는 나귀처럼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좋으리라. -201쪽

비는 부자에게도, 가난한 사람에게도 내린다. 의로운 이에게도, 의롭지 못한 이에게도 내린다. 그러나 사실 비는 공평하지 않았다. 본래 공평하지 않은 세상에 내리기 때문에. -287쪽

고달픈 사람들의 게으름은, 노력했지만 수렁으로 떨어진 삶의 자연적인 결과다. 고달픈 사람들이 가시를 세우는 데도 나름의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329쪽

경험은 삶의 비료 같은 것이다.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사막에서 목단이 자랄 수 없다. 샹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다른 인력거꾼보다 낫지도, 더 나쁘지도 않은, 그냥 인력거꾼다운 인력거꾼이 되었다. 이렇게 되고 나니 전보다 훨씬 마음이 홀가분했다. 다른 사람 눈에도 거슬리는 일이 없었다. 까마귀는 그냥 까만색이다. 그는 혼자 하얀 깃털을 갖고 싶진 않았다. -330쪽

자기 목숨은 자기 손에 넘어갈 수 있을 뿐, 다시는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또한 자신을 어떻게 파괴하는 지도 잘 알고 있다. 이것이 개인주의의 극단적인 모습이었다. -3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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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잡념을 없앤다는 뜻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 중요한 것에 관심을 쏟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쏟는가에 따라 소중한 선물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스펜서존슨 <선물 >

하루하루 바쁘게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 나도 그 중 하나이다. 시계바늘에 쫓기며, 깔려서 뭉개지지 않도록 겨우겨우 떠밀려서 하루하루를 나아가고 있다. 꼭 공부가 아닐 지라도 무엇인가를 하느라 항상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나는 항상 바쁘다는 생각 뿐 그 생각만큼 열심히 하루를 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게으름. 그래 이것도 그 원인 중 하나이지.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내가 현재에 올인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에 올인하자. 올인하자. 좋아! 물론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학업이지만, 매시간 충실하게 산다면 내 삶을 더욱 충만하게 해줄 다른 무언가들을 더욱 많이 할 수 있겠지. 내가 여지껏 무심히 흘려보냈던 과거를 후회하진 않는다. 결국 그 과거가, 나의 역사가 모여 현재의 나를 이뤄낸 것이니까. 그 과거가 있기에 더욱 높이 날 수 있으니까. 지금도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는 시간. 사실 따지고 보면 시간이라고 명명해 놓고 시계와 달력을 만들어 수치화 시켜 놓은 것은 인간들인데,, '시간'이란 그 자체가 마치 대단한 무엇이라도 되는 것처럼 절대화 시킬 필요는 없다. 그냥 매 순간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다 보면 그것이 모여 풍요로운 인생을 즐길 수 있겠지.Present. 현재. 현재에 올인하자. 앞으로도 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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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무아 > 필멸의 인간이 가지는 슬픔의 서사시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길가메쉬서사시를 <죽음의 공포에 대한 서사시>라고 이름 붙였다. 길가메쉬는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문명의 도시국가 우르크의 왕이다. 그는 2/3는 신이고 1/3은 인간인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존재로서 신화와 역사 양쪽에 두루 속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폭정을 저지하기 위해 창조된 엔키두와 함께 신들의 산인 삼목산의 산지기 훔바바를 죽이는 등 용맹을 발휘하지만 엔키두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와 생의 유한(有限)에 절망하게 된다. 길가메쉬는 영생의 길을 찾기 위해 영생자인 우트나피쉬팀을 찾아 머나먼 순례를 길을 떠난다. 우트나피쉬팀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죽음의 바다에 다다랐을 때 바닷가의 여인숙을 지키고있는 지혜의 여신 씨두리에게 길가메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죽음이 두렵소. 내 친구(엔키두)의 죽음이 부른 난제가 나를 압박했소. 내가 죽음일 보지 않게 해주시오. 나는 그것이 정말로 무섭소"

이에 씨두리는 길가메쉬에게 답한다.

"당신이 찾고 있는 영생은 발견할 수 없어요. 신들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인간에게는 필멸의 삶을 배정했고, 자신들은 불멸의 삶을 가져갔지요. 영생은 인간의 몫이 아니지요"

영생의 길을 찾는 무모함 대신 이생에서의 삶을 즐기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고 행복이라는 것을 씨두리가 말해주었지만 그것이 영생자 우트나피쉬팀을 만나고자 하는 길가메쉬의 갈망을 단념하도록 하지는 못했다. 결국 씨두리는 죽음의 바다를 건너가는 뱃사공 우르샤나비를 소개해주고 길가메쉬는 마침내 우르샤나비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영생자 우트나피쉬팀을 만나게 된다. 우트나피쉬팀은 길가메쉬에게 신들이 인간에게 내린 대홍수재앙으로부터 유일하게 자신이 살아남아 신처럼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리고 길가메쉬에게 늙지 않고 젊음을 되찾을 수 있는 불로초를 선물로 주어 다시 인간의 세계로 돌려보낸다. 하지만 도중에 뱀에게 불로초를 강탈당하게 되고 결국 길가메쉬는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죽음의 잔을 마시게 된다.

모든 인간이 운명적으로 피할 수 없이 직면하는 문제가 바로 죽음이다. 길가메쉬서사시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벗어나 위해 영생을 길을 찾아 헤매는 인간 영혼의 순례도(巡禮圖)이다. 특별히 성경의 창세기설화의 많은 부분들이 이 <길가메쉬서사시>의 히브리적 신화의 변형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일은 이 책을 읽는 중요한 즐거움이자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성서 자체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성서의 설화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본다. 원형(原型)에 대한 이해는 변형(變形)대한 이해를 깊게 해준다.

신의 모습을 닮은 인간의 창조이야기, 성서의 에덴과 수메르의 에딘, 성서의 가인과 아벨 이야기의 원형이 되는 양치기 두무지와 농부 엔킴두의 이야기, 성서의 바벨탑사건과 신들의 왕 엔키에 의한 인간언어의 혼란, 대홍수재앙에서 살아남은 노아와 우트나피쉬팀, 그리고 그들이 지은 방주, 인간에게서 낙원의 삶을 앗아가는 뱀의 출현, 성서의 만나와 우트나피쉬팀의 주님이 하늘에서 억수같이 쏟아져 내리게 하는 빵, 노아가 날려보낸 비둘기와 까마귀, 우트나피쉬팀이 날려보낸 비둘기와 제비와 까마귀, 길가메쉬가 우트나피쉬팀에게 얻었다가 뱀에게 빼앗긴 불로초와 성서의 생명나무 등…
<길가메쉬서사시>를 읽다보면 성서의 창세기를 읽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만큼 성서의 창세설화는 이 수메르신화에 그 신화적 원형을 두고 있다. 창세기의 원본을 보는 지적 재미와 흥분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인간에게는 필멸의 삶을, 신들에게는 불멸의 삶을 배정한 신들!
영생자 우트나피쉬팀은 길가메쉬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쉼없이 고생하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고생 끝에 네 자신이 완전히 지쳐버리면, 너는 네 몸을 슬픔으로 가득 채우고 너의 긴 인생 항로를 조급히 끝내는 길로 접어든다! 인간! 그들의 자손들은 갈대처럼 부러진다. 잘생긴 젊은이나 귀여운 소녀들도 죽음은… 아무도 죽음을 알 수 없고, 아무도 죽음의 얼굴을 볼 수 없고, 아무도 죽음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비정한 죽음은 인간을 꺾어버린다. ……………너는 인간이다! 범인이든 귀인이든, 꼭 한번은 인생의 종착역에 도착하고, 하나처럼 모두 모여든다. ……………신들이 삶과 죽음을 지정해두었지만, 그들은 죽음의 날을 결코 발설하지 않는다."

영생의 세계로 건너가는 죽음의 바닷가에 여인숙을 지키며 홀로 술을 빗으며 살고 있는 지혜의 여신 씨두리! 그녀가 만드는 포도주는 인간이 안고 있는 죽음의 공포와 생의 허무를 잊게 만드는 망각의 술이 아니었을까? 인간은 이 세상이라는 여인숙에 잠시 머물다 떠나는 나그네와 같은 존재이기에 인간의 몫인 이 세상의 삶에 충실하고 감사하며 매일같이 기쁨으로 축제하듯 살아야 한다고 말한 게 아닐까? 인간은 저마다 언제 이 세상의 소풍이 끝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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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도서관에서 수많은 책들을 보고, 느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느꼈다.

멈추지 않는 행복이 계속해서 솟아오름과, 다시 태어난 듯한 기분.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

오늘 TV에 나온 '청소년 자원봉사센터'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멋진 사람이 되겠다고. 나는 다짐했다.

조금 전, 몇일 전치 신문을 뒤적이다 발견한 기사에서 나는 보았다.

내가 꼭 닮고 싶은 어떤 대학생의 모습을.

그녀는 내가 보기에 가장 행복한 사람 인 것 같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또 최고가 되었다.

방학마다 해외봉사를 다니면서, 학기중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새벽까지 공부를 하면서

그렇게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학과도 내가 가고 싶어하는 과.. 외교학. 이다.

정말, 자신의 삶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을 위해서도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꿈 많은 18세인 나도. 미래의 내 모습이 그러하기를 꿈 꾸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참 한심할 따름이다.

바로 어제 다짐했는데,,

후회따윈 하지 말자. 자신감을 가지고,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최선을 다하고

인생을 즐기며 살자.

다시 한 번 다짐하기 위해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그녀는, 힘이 들 때마다 해외봉사를 하며 찍은 사진들을 보고 힘을 얻었다고 한다.

나는 앞으로 그녀의 기사를 보며 힘을 얻을 것이다.

지난날을 많이 후회하곤 한다. 하지만 고작해야 17년..

내겐 앞으로 나아갈 길이 더 많이 남아 있다.

정말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타인으로부터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부터 인정 받아야 한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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