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문제는 이땅의 민주주의 역사의 해묵은 숙제다. 전두환의 1980년 광주학살 업보를 정치적으로 승계하고 있는 새누리당은 태어나서는 안 될 정당이었다. 하지만 태어났고, 1987년 항쟁을 통해서도 정당해산을 하지 못했으며, 이후로도 영남은 줄곧 지지했으며, 이땅의 거대정당으로 승승장구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기적적으로 '새누리당의 박근혜'가 탄생했다.

 

그런데 박근혜의 탄핵을 눈앞에 두고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양향자는 기가 막힌 발언을 한다.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25일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를 향해 "왼손은 야권과 잡고 있지만 오른손은 박근혜 정권의 부역자들과 잡고 싶은 건 아닌지 의심된다"고 직격했다.

양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호남의 대표 정치인이신 박지원 대표님의 자랑스러운 후배 정치인이고 싶은 양향자가 한 말씀 드리겠다""새누리당의 탄핵 찬성 의원들은 고해성사 당사자이지, 연대 대상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양 최고위원은 이어 "양손 모두 야권과 잡으란 것이 호남민심임을 명심하길 바란다""(박 위원장에게) '제가 그 유명한 박지원입니다'라는, 항상 듣던 인사말씀인데, 이제 그 유명세를 박근혜 퇴진과 정권교체에 쓰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1>, 2016년 11월 25일.

 

양향자가 새누리당의 탄핵 찬성 의원들조차 "박근혜 정권의 부역자들"이라고 한 말은 과격하긴 하지만 그간의 행적을 돌이켜볼 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런데 탄핵이란 게 뭔가? 바로 그 잘못에 대한 정치적 고해성사 아닌가? 탄핵이 바로 그 고해성사의 결정적 상징이 아니라면 뭣 때문에 친박과 비박이 저렇게 정치적 존망을 걸고 다투고 있겠는가?

 

그들 비박이 만약 친박과 결별해 새누리당을 떠난다면, 그래서 새누리당이 우리 역사 속에서 힘을 잃고 고사하게 된다면 우리 정치사에 그보다 더 큰 경사가 어디에 있는가? 더 분명한 그들 비박의 고해성사가 필요한가? 앞으로 하게 만들면 된다. 특별히 성찰하는 영남유권자들이 많아진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양향자가 자신이 지금 딛고 서 있는 땅을 한번 내려다보기를 권한다. 그녀는 문재인의 정략을 의심없이 추종하고 있다. 문재인이 누구인가? 노무현 이데올로기를 담지하고 있는 친노의 수장이다. 그럼 그 끝 근원에 존재하는 노무현은 누구인가? 그는 고해성사도 하지 않은 새누리당 그 자체와 '양대산맥'이 돼야 한다고 설파한 사람이다. 이렇게!

 

정치가 제대로 된다면 (지역주의 부패정당이라며 민주당과의 법통을 끊고 새로 창당한 열린우리당과 자신이 정의롭다는 명분으로 삼던 투쟁대상 한나라당의-필자 주) 양대산맥이 계속 유지돼 가야 한다.” <연합뉴스>, 2006년 8월 27일.

 

시간이 많이 지난 덕에, 나는 이런 역사적 발언을 다시 회고해도 면역이 된것처럼 고통이 많이 잦아든 상태다. 하지만 나름의 정의로움이 넘치는 양향자는 어떤지 모르겠다. 기절초풍할 일 아닌가? 새누리당을 나올 각오로 박근혜를 탄핵하겠다는 인물들과 연대하자는 것도 아니고, 새누리당(한나라당) 그 자체(!)와 '양대산맥'을 하자니! 심지어 어쩔 수 없는 체념도 아니고 마치 무슨 큰 정치적 이상처럼 "정치가 제대로 된다면"이라니!!

 

만약 실제로 비박이  새누리당을 나온다면 독자적인 정치결사체를 만들 수도 있고, 노무현의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이 뭐 대단한 듯 평가하는 한나라당출신 '독수리 5형제(이부영, 이우재, 김부겸 김영춘, 안영근)'처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국민의당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나 우리나라 정치발전을 위해 차악의 일 아닌가? 노무현의 양대산맥론을 실천하려는 것에 비하면 100배는 더 훌륭한 일 아닌가?

 

   

 

비교해보라. 다음은 국민의당 천정배가 일찌감치 제시한 로드맵이다.

 

대한민국은 혁명중이다. 4.19, 5.18, 6월 항쟁을 잇는 시민혁명, 민중항쟁이 타오르고 있다. 국민들은 근본적인 변화를 열망하고 있다. 독점, 독식의 낡은 시대를 청산하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보장되는 상생과 협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기위해 궐기하고 있다.
 
이 혁명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세 가지 과제 있다
 
첫째, 박근혜 대통령과 박근혜 정부에 책임 있는 자들 추상같이 단죄해야 한다. 그 단죄의 대상에는 이 불의한 정부를 뒷받침하며 범죄수익을 함께 나눠온 새누리당이 반드시 포함돼야한다.
둘째. 국정공백을 질서 있게 메워서 민생과 국익에 손상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셋째. 이미 결정적 한계를 드러낸 국정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업그레이드해 야 한다.
 
이상 세 가지 과제를 수행할 가장 바람직한 방향은 제 생각으론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과도정부를 수립해서 국정시스템을 새로 짜는 것이다. 과도정부는 국민적 신망이 높은 책임총리와 거국내각을 구성해서 탄핵절차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6개월여로 예상되는데, 그 탄핵 절차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국회 등 헌법기관과 함께 국정을 담당하는 정부이다. 과도정부는 시민혁명, 민주화항쟁으로 쫓겨난 박근혜 정부와 국민의 뜻을 모아서 새롭게 출범할 민생민권의 정부를 잇는 정부다.
 
이 정부 아래에서 범국민적인 토론을 바탕으로 해서 근본적인 국정시스템 개혁안 마련하고 시행해야한다. 개혁안에는 민의를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를 도입하는 것, 그리고 대통령제 권력구조를 내각제 등으로 바꾸는 개헌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4.19혁명 결과 내각제 개헌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다. 6월 항쟁의 결과로는 직선제 개헌으로 5.16 쿠데타 이후 군사독재세력에게 짓밟혔던 민주주의를 부활시켰다. 이번에도 모처럼 분출하고 있는 국민들의 혁명적 열망을 담아서 국정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NAVER 뉴스 보도자료] 국민의당 제5차 비상대책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 모두발언>, 2016년 11월 8일.

 

나는 위 주장이 큰 틀에서 실현되기를 바란다. 여기에 새누리당 비박문제는 구체적으로 표현돼 있지 않다. 나는 박근혜를 탄핵하고 새누리당을 탈당한 의원들이 과도적인 독자결사체 연대를 넘어 국민의당과 합당을 원한다 할지라도 호남이 인정하는 선언적 계기 없이 국민의당과 하나 되기는 당분간은 힘들다고 본다. 하지만 신뢰를 쌓아가는 과도적 연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무엇을 위한 연대인가? 55년을 지배해온 이 땅의 영남패권주의(새누리당)에 대한 성찰과 반대의 연대, 그리고 그 영남패권주의 역사를 부정하고 지역주의 양비론을 주장하는 친노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 위선의 연대! 이땅의 민주주의를 정상화시키는 수단인 정치적 비례성의 담보를 위한 연대! 경제적 분배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정치적 권력분립의 연대!

 

어떤가? 열렬한 호남친노 양향자는 대답해보기 바란다. 열린우리당의 '독수리 5형제'처럼 '지역주의 양비론 연대'는 좋지만 이런 '반영남패권주의 연대'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가? 그렇게 새누리당을 영남패권주의 극우세력만의 본거지로 만들어 고사시키는 건 해서는 안 되는 정략인가? 말을 바꾸면 새누리당은 누구도 탈당해서는 안 되며 영원히 존재해야 할 '양대산맥'의 대상인가? 북한을 겁박의 대상으로 이용한 박정희처럼 정치하라는 것이 호남민심인가? 그래서 새누리당을 영원히 호남몰표를 위한 겁박 수단으로 이용만 하라는 것이 호남민심인가?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6.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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