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전 대통령 김영삼은 현 대통령 박근혜에게 이런 막말을 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11일 새누리당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해 "박근혜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서울 상도동 자택으로 자신을 예방한 김문수 경기지사가 당 대선후보 경선참여 계획을 알리며 "사력을 다하겠다"고 말하자 이같이 답했다김 지사가 "지금은 토끼가 사자를 잡는 격"이라며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밀리는 자신의 위치를 비유하자 김 전 대통령은 "(박 전 위원장은) 사자가 아니다. 아주 칠푼이다. 사자가 못 돼"라고 혹평했다. <연합뉴스>, 2012년 7월 11일.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칠푼이란 "조금 모자라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참고로 팔푼이는 "생각이 어리석고 하는 짓이 야무지지 못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말하자면 칠푼이는 팔푼이보다 더한 놀림이다. 그런데 김영삼은 박근혜를 팔푼이도 아닌 칠푼이라고 비하한 것이다.

 

나는 김영삼처럼 박근혜를 칠푼이라고 놀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그의 막말은 당시 총선에서 자신의 아들 김현철이 낙천한 이후에 불거진 다분히 사심 가득한 반응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인신공격이다. 그리고 박근혜가 칠푼이라는 인신공격을 하면서 김영삼은 최소한의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 근거도 없이 그냥, 그것도 "아주" 칠푼이라고 비하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나는 (나만 그런 것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김영삼의 이 중독성 있는 막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것까지 어찌하진 못 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내 머릿속을 더 뱅뱅 돌고 있는 건 영화 <간첩 리철진>에 나오는 이런 대사다. 고정간첩 오준익이 남파간첩 리철진을 복귀시키며 차 속에서 푸념처럼 하는 말이다.

 

 

근데 이놈의 나라가 좋은 게 있지. 그 어떤 것이든, 뭐든, 쓰면 없어진다는 거야. 투쟁도, 그것이 풍미했던 시절도, 이념도 다 써버렸다. 쓰니까 다 없어지더라구. 리철진 동무! 내가 공산주의자로 보이나?

 

 

 

박근혜는 박정희의 유령이다. 사실 우리는 지금 박근혜가 아닌 박정희를 소비하고 있다. 그것이 아무리 시대착오적인 소비라 할지라도 그 소비를 다 끝내야 한다. 그렇게 박정희가 대한민국에서 지긋지긋해질 때 박정희의 역사가 제대로 정리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박정희 소비는 아직 멀었다. 박정희 생가에서 열린 제37주기 추도식 뉴스를 보며 실감하기 바란다.

 

추도식을 마친 후 참석자들은 인근에 위치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 앞으로 가 추모를 하기도 했다. 일부 주민은 절을 하고[http://www.ohmynews.com/NWS_Web/View/img_pg.aspx?CNTN_CD=IE002040911#IE002040911]일부 주민은 머리를 숙여 추모한 뒤 동상 주위를 둘러보거나 사진을 찍었다. 추도식에 참석한 한 주민은 지난해보다 참가자들이 적은 이유에 대해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처지가 그러니까 참가자들도 적은 것 같다""하지만 우리가 대통령을 지켜줘야 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오마이뉴스>, 2016년 10월 26일.

 

대가가 아무리 커도 역사가 요구한다면 감수할 수밖에 없다. 최순실의 반복적 희극 없이 김재규의 일회적 비극만으로 역사가 효율적으로 진전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기어이, 끝까지, 아직도 부족하다는 '지역'이 있다면 어쩔 수가 없다. 계속 그렇게 현대 영남패권주의의 원조 박정희의 유령 박근혜는 열심히 버티고, 그 지지자들은 열심히 지키기 바란다. 그 때문에 대한민국이 아무리 나락으로 떨어져도 원한다면 아무쪼록 그렇게 하기 바란다.

 

한마디로 나는 여전히 비관적이다. 즉 나는 대한민국이 박정희를 여전히 더 소비하려 할 것이고, 불가피하게 더 소비할 수밖에 없으며, 원 없이 더 소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웬만한 영남패권주의자들 입에서도 "내가 박정희주의자로 보이나?"는 대사가 체념과 함께 흘러나올 때까지 끝장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냉혹한 '역사의 간지'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 것이다. 고통스럽지만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게 역사는 너무나 가혹하고 지루하다.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6.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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