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예보
차인표 지음 / 해냄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일주일전쯤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엄마 친구분이 유방암에 걸려 수술을 했다고 한다.
자주 뵙던 분이라 놀란 가슴은 계속 쿵쿵거린다.  유방암 사실도 놀랄 일이었지만 더 놀랍고
충격이었던건  2년여를 그 사실을 숨긴채 살았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가족들에게까지 비밀로 하며 그 긴 시간을 보낸 이유를 물었더니 그냥 죽고 싶었다고. 아줌마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허망함, 그 안에 배여져있는 우울증의 기운이 살짝 있지않나 걱정하는 엄마의 노파심에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살고 싶지 않아 자신의 병을 숨겼다는 아줌마, 지금은 수술도 잘 되어 구체적인 정밀검사을 받기 위해 큰 병원으로 옮길 예정이다. 참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아줌마가 끝까지 말하지 않을려고했던 이유가 내 뇌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만약, 내 친구가 저런 말을 한다면 삶의 끝자락 하나, 그 희망을 잡을 수 있도록 난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소설 오늘예보는 DJ 데블이 애청자들의 하루를 정확하게 예보해주는 라디오 생방으로 시작되고 있다. 호수공원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있는 김미래 주부, 청담공원에서 소나무에 등치기 하고 있는 정아흔 할머니, 해남의 박낙어 어부를 거쳐 함경도, 평안도 등 북한 지역과 에티오피아 등 해외 애청자들의 하루를 예보를 해준다. DJ데블은 나고단, 박대수, 이보출씨의 하루를 절망적으로 예보해주었고  DJ 데블의 예고가 맞는지 세 사람의 하루를 쫒아보기로 했다.

  죽기로 결심한 나고단, 지난 몇 개월동안 죽을 장소로 생각한 성산대교 밑으로 발걸음을 향했으나  생뚱맞은 공익 두 사람때문에 자신의 죽고자했던 성산대교 밑에서 죽지 못하고 자리를 옮겨야하는 슬픈 현실을 맞는다.  보조출연자로 하루를 연명하며 살아가는 이보출, 열심히 모아 헤어진 아들과 함께 살 미래를 꿈꾸며 오늘도 새벽 3시28분 여의도의 도로변에 서 있다.  
  조폭의 길을 깨끗하게 씻고 나온 박대수, 새 출발을 위해 준비했던 9천이 날아갔다. 떼인 돈을 찾기 위해 쫓다가 알았다. 후배도 돈이 없다는 사실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딸이 희귀병에 걸렸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세 사람의 하루는 이렇듯 각자 틀렸다. 하루 하루를 절망과 희망의 끈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위태로운 줄다리기처럼 보였던 그들의 삶이 DJ데블의 예언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절망의 끝을 향해(P9) 달려 갔을까?

  이야기의 끝은 20년 후 한 결혼식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혼식장의 주인공 신부, 신랑의 이름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오늘예보의 깜짝스런 반전, 그 흐뭇한 반전을 통해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져 있는 우리의 삶이 보였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돌고 도는 원이 되어 서로 서로가 엮여 있다는 것, 그렇기에 나고단씨가 받은 천원짜리  한 장이  삶에 대한 의욕을 자극했듯이  그 출발점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된다.

  오늘도 엄마는 아줌마랑 통화중이다. 병실을 방문하고 따스한 국밥 같이 먹는 엄마와 아줌마를 보며 애써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느끼게 되는 응원의 힘이 느껴진다. 만약 내 친구가 죽고 싶다면 어떻게 할까라는 물음에 난 답을 찾은 것 같다. 같이 밥 한끼 먹으며 고단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게 바로 친구에 대한 관심이며 용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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