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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
윤지현 지음, 박지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6년 6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스스로를 지켜야 했던 아이들의 이야기

나는 미스터리와 공포, 오컬트, 스릴러 장르 소설에 빠져사는 편이라
처음 이 책에 대한 설명에서 K-호러라는 글을 본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꼭 읽어야 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첫 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내가 예상했던 스릴러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가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문장은 '모든 딸과 자신을 스스로 지켜야 했던 외로운 아이들에게.'라는 헌사였다.
아직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인데도 이상하리만큼 오래 마음에 남았고, 그 문장은 책을 읽는 내내 하나의 질문처럼 따라다녔다.
처음에는 강을 둘러싼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심리 스릴러라고 생각했다. (이런 나의 생각은 늘 빗겨나가지만...)
적절한 속도로 이어지는 전개와 촘촘하게 쌓인 복선 덕분에 자연스럽게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고,
후반부에 밝혀지는 진실 역시 억지스럽기보다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설득력 있게 이어진다.
덕분에 마치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책을 덮고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사건이 아니라 주인공의 감정이었다.
이 작품은 단순히 범인을 찾거나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감내해야 했던 침묵과 폭력,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었던 외로움,
그리고 스스로를 지켜야만 했던 한 아이의 시간을 천천히 따라간다. 주인공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
분노하면서도 미워하지 못하고, 떠나고 싶으면서도 쉽게 벗어나지 못하며,
진실을 마주하고 싶으면서도 두려워하는 복잡한 감정을 안고 살아간다.
그 감정선이 과장되지 않게 그려져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선택을 이해하게 되었고,
어느새 사건보다 인물의 마음을 따라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책 속에서 가족들 특히, 부모님의 행동은 너무 징그러울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작품 속 '강'의 의미였다.
처음에는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읽을수록 내게 강은 주인공 마음속에 존재하는 '검은 강'처럼 느껴졌다.
어린 시절부터 쌓여온 상처와 두려움, 죄책감, 애써 외면해 온 기억들이 흘러드는 공간 말이다.
겉으로는 잔잔해 보이지만 한 번 발을 들이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물처럼,
주인공 역시 자신의 감정 속으로 조금씩 침잠해 간다.
그래서 제목인 '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는 단순히 물속으로 끌려 들어간다는 의미를 넘어,
결국 자신의 가장 깊은 상처와 마주할 수밖에 없는 순간을 의미하는 것처럼 읽혔다.
동시에 그 강은 그녀를 집어삼키는 공간인 동시에, 외면해 왔던 진실과 감정을 끝내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장소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을 읽기 전에 마침 가시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보니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좀 반가웠으면서도 신기했다.
외국 작가의 이름과 함께 나오는 만신이나 가시손이라는 이야기가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참으로 잘 어울렸다.
(참고로 로렐 켄달은 미국내 한국전공 인류학의 최고의 권위자이고 책의 정확한 책의 제목은 '무당, 여성, 신령들'이다.)
이 작품이 '장화홍련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단순히 전래동화의 구조를 차용한 것이 아니라, 시대가 달라져도 여전히 반복되는 가족 안의 침묵과 폭력,
그리고 그 안에서 가장 먼저 상처받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오늘의 언어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누가 범인인가'보다 '왜 이 아이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까',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떻게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윤지현 작가님의 문체 역시 인상적이었다.
화려하거나 자극적인 표현을 앞세우기보다 인물의 심리를 차분하게 쌓아 올리는 방식이라,
사건이 전개될수록 긴장감과 감정의 무게가 함께 깊어진다.
그래서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뒤에도 반전 자체보다 인물들이 품고 살아온 상처와 선택들이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개인적으로 3장이 정말 좋았는데,
'내가 돌아온 그날 밤, 난 흙 속에서 새 몸을 끌어올렸어. 그렇게 혼자 힘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환상을 만들어냈지.
하지만 난 언제나 네 것이었어. 어머니의 양수 속 세계에서 내가 떠다닌 곳은 물이었어. 물은 어린 시절 내내 이끌고 온
몸이자 피와 골수 짐 그 자체였지. 내가 수십 년이나 일찍 너에게 빠져 들어갔을 때, 너는 나를 밀어내지 않았어.
발버둥 치는 나를 네 허기로 다정하게 잠재웠지. 나는 저항했어. 익사하는 동안 분노로 새하얗게 질렸어. (중략)'
이런 표현력이 가히 압도적이었다.
책을 모두 읽고 다시 첫 페이지를 펼쳤을 때,
처음에는 짧은 헌사라고만 생각했던 문장이 이 작품 전체를 설명하는 한 줄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결국 이 책은 단순한 심리 스릴러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 깊은 '검은 강'과 마주해야 했던 한 아이의 이야기였고,
끝내 스스로를 지켜내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 작품은 반전이 뛰어난 소설이라기보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을 조용하지만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