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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 릴케 시 필사집 ㅣ 쓰는 기쁨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배명자 옮김 / 나무생각 / 2026년 4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라는 제목만으로도 이미 마음을 끌어당기는 이 필사집은 나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책이었다.
처음 책을 받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단단한 양장본의 묵직함과 안정감 그리고 보라색 표지가 주는 차분함 이였다.
어딘가 서늘하면서도 깊은 감정을 품고 있는 색감이 제목과 묘하게 어울려, 펼치기도 전부터 너무 만족스러웠다.
특히 5월이라는 지금 계절과도 잘 맞아서 더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조금은 운명적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나는 2월부터 싯다르타를 통필사하고 있었고, 거의 마무리에 다다른 시점에서 '다음엔 무엇을 써볼까'라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마리아 릴케의 필사집을 알게 되었고, 이 책을 마주하는 순간 마치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길처럼 느껴졌다.
이거면 5월에 딱 어울리게 시작할 수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필사를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평소 잘 알지 못했던 릴케의 시들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 직접 손으로 써 내려가다 보니 문장 하나하나가 더 깊이 스며들었고,
필사를 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시 속에 있는 감정과 나 자신의 감정이 겹쳐지는 순간들도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시의 분위기였다.
내가 알고 있던 릴케의 시는 어딘가 아름답고 서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는데
이 책에 실린 시들은 꽤 비관적이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적지 않았다.
처음엔 조금 놀라웠지만, 그 안에서 오히려 더 진솔한 감정이 느껴졌고,
어느 순간에는 나의 감정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필사를 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끔은 육성으로 왜? 왜? 왜?란 질문이 굉장히 많이 튀어나왔다.
그만큼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질문에 대한 정답을 얻을 순 없었지만, 그냥 질문을 하는 그 자체가 소중했던 것 같다.

이 책은 필사집으로써의 만족도, 완성도가 다 높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만년필로 쓰기에는 종이가 다소 얇아서 뒤에 비침이 있다는 점은 아쉬웠다.
하지만 일반 볼펜을 사용했을 때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부담 없이 쓰고 읽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인상 깊었던 점은 종교적인 색채가 담긴 시들이 거부감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무교인이지만, 이 책에 실린 시들은 종교를 강요하는 느낌이 없어서 너무 좋았다.
오히려 종교적 언어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었고, 생각을 더 많이 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단순히 시를 옮겨 적는 필사집이 아니라, 나 자신과 마주하는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한 번 더 '쓰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었다.
장미처럼 아름답지만 모순된 감정을 품은 릴케의 시를 따라 쓰며, 한층 더 마음이 성숙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아직도 시는 많이 남았고, 앞으로 나의 감정이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