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의 중심에는 거는 '검은 구'라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있다. 그게 바로 소설의 제목에도 나온 그 '절망의 구'다.
그것은 사람들을 하나씩 집어삼키면서 도시를 잠식해 간다. 하지만 그 이유도, 원인도, 방향도 그 무엇도 알 수가 없다.
더욱 기묘한 것은 사람들이 구에 삼켜지고 흡수되는데도 불구하고 구에 흡수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 있는 사람이 당연하게도 바로 주인공이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흡수되는데, 이 사람은 끝까지 살아남는 걸까? 그저 주인공이라서 그런 걸까?
그의 존재는 처음부터 큰 이질감을 준다. 그는 시작부터 평범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절망의 구를 최초로 발견한 최초 목격자이자 흡수되지 않는 사람. 그 자체만으로 평범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야기를 읽고 읽으면서 나는 그가 '절망조차 삼켜버리지 못한 극에 달한 인간'이라는 아이러니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 소설이 무서운 이유는 절망의 구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 더 두려운 건, 엉망이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여전히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들의 모습이었다.
전쟁, 재난, 붕괴 그 모든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끝까지 자기 이익을 챙기고, 범죄를 저지르고, 누군가를 희생시킨다.
나 역시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세상이 무너진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까? 식량을 구하기 위해 상점을 털거나,
어쩌면 누군가의 물건을 훔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사람을 죽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그런 모습까지는 상상하기 힘들다.
이 소설은 그런 상상의 끝, 인간의 본성의 바닥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마지막에 찾아왔다. 스피커와의 대화....
그 정체불명의 사람들과의 대면은 마치 마녀사냥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혹은 무언가 거대한 시스템의 냉혹한 심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장면에서 드러나는 주인공의 말과 행동은 내 안의 어떤 윤리적인 기준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왜 그는 흡수되지 않았지?
그가 지금 하는 행동을 보면 그가 절망 그 자체이기 때문은 아닐까?
본인도 모르게 절망의 구를 스스로 만들어낸 건 아닐까?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그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고, 너무 많은 것을 보았고, 너무 오래 살아남아야 했으며,
결국 누군가를 제물로 삶는 선택까지 감당해버린 인물이 되었다.
인간이기보다는 이제 그는 '구'의 주인처럼 느껴졌다. 아니 어쩌면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절망의 구와 다르지 않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부터 생각했던 바로 그 결론인 '절망조차 삼켜버리지 못한 극에 달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흡수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와 맞닿은 사람들은 그의 그런 감정에 동화되어 흡수되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절망의 구는 읽는 내내 생각을 요구하는 작품이었다. 한순간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야기였고,
장면 장면이 너무 강렬해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이토록 영화나 드라마로 보고 싶은 소설도 오랜만인 것 같다.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스케일과 심리적인 깊이 그리고 세계관 모두가 시각화되면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그게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는 아니고 절망과 고통이 가득한 모습이겠지만 끝까지 외면할 수 없는 깊이가 있는 이야기라서
다른 사람들도 끝까지 그 절망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절망에 빠져버린 사람들의 처절한 심판이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일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