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망상 달달북다 11
권혜영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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찝찝하고 괴상한 애정, 그 끝에 남는 것은?



처음 이 책의 소개를 들었을 때는 단순한 유사 연애 집착 소설을 떠올렸다.

ASMR 텐츠 속 '고막 남자친구' 세진에게 집착하던 주인공 지나가 세진의 목소리를 복제한 외계 행성 다즐링의 왕자를 만나고 점차 그에게 빠져드는 이야기일 줄 알았다.

흔히 말하는 '망상 연애'에서 현실로 확정되는 로맨스물 말이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그 예상은 철저하게 빗나가고 말았다.

이 소설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괴상했고, 끝까지 찝찝함을 남겼다. 이걸 정말 '로맨스'리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물론 다즐링 왕자의 여정을 따지고 보면 나름 왕자에겐 로맨틱한 목표는 있었다. 사랑하는 이를 찾아 지구로 오고,

사로고 잃어버린 몸을 되찾으려 노력하는 여정. 만약 그 이야기에 주인공 지나가 함께하면서 서서히 사랑에 빠졌다면,

위험하지만 슬픈 로맨스라고 볼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지나가 처음부터 다즐링을 경계하고, 세진의 목소리를 훔치고 둘의 관계를 훼손하는 존재로 여긴다.

자신의 판타지를 지키기 위해서 다즐링을 하루빨리 없애버리고 싶어 한다.

중간쯤부터는 자연스럽게 지나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존재가 있는데 바로 지나의 친구 가람이다.

가람은 처음 만난 다즐링 왕자에게 호기심을 느끼게 되고 자신의 애정의 망상과 집착에 다즐링 왕자의 목표를 더해버린다.

가람의 집착의 깊이는 경악스러울 정도였는데, 특히 전 남자친구 컬렉션에 대한 묘사는 소름이 끼쳤다. 지나의 애정적인 망상이 귀엽게 보일 정도였다.

내 기준에서 가람은 그냥 지나친 애정의 수준이 아니라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가진 인물로 보였다.

마치 미저리나 올가미의 주인공을 보는 느낌이었다. 집착의 끝을 달리는 모습이 진짜 다시 생각해도 끔찍했다.


 


책의 분량은 짧지만 매우 강렬했다. 읽을수록 경악과 함께 물음표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도대체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망상이었는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지나와 가람은 같은 사람일까? 다른 사람일까? 도대체 마지막에 무슨 일이 있던 걸까? 하는 생각들이 끝없이 이어지지만

이 소설은 그런 나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여운이라기 보다 찝찝함이 오래 남았고, 몸에서 감정적으로 떨어지지 않는 불쾌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누군가에게 선뜻 추천하고 싶진 않지만, 동시에 이 작품이 나쁜 소설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이런 감정을 이끌어낸 작가님의 필력은 칭찬받아서 마땅하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ASMR 컨텐츠를 검색해 봤다. 고막 남자친구라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았는데,

살펴보니까 1인칭 드라마 CD처럼 한 사람이 연기를 하면서 듣는 사람의 판타지를 채워주는 컨텐츠였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용 중이었고, 일부는 꽤 성인적인 설정을 담고 있었다. 실제 연애에서는 절대로 하지 않을 대사들이 난무하고,

그걸 듣는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몰입한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뻘쭘하고 당황스러웠고, 몇 분 이상 듣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나가 왜 그런 컨텐츠에 집착을 했는지는 이해가 갔다. 현실보다 쉬운 망상 속 연애는, 외롭고 불안정한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안전지대였을 수도 있다.

상처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걸 끊임없이 소비할 수 있는 감정적 손실이 없는 애정의 연속일 테니까 말이다.

결국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는 세진을 제외하면 모두 어딘가 문제가 있다.

여자친구를 이용하고 돈을 떼먹고 바람을 피우는 남자, 전 남자친구들의 흔적을 모으는 집착적인 여자, 온라인의 목소리에 집착하는 여자...

현실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유형의 사람들이 총출동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집착과 일그러진 애정을 솔직하게 보여줬단 점에서 이 책은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나와 가람 두 인물을 보면서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도대체 정상적인 애정이란 무엇일까?

현실의 연애가 아닌 판타지에 기대어 애정을 느끼는 건 정말 비정상적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혹은 누군가를 향한 감정이 현실을 왜곡 시키고 타인을 통제하려는 집착과 욕망으로 번져나갈 때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는 있는 걸까?

만약 누군가의 애정이 너무 과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면, 이 소설을 한 번쯤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지나치게 찝찝하고 무섭기도 하지만, 어쩌면 현실의 집착은 그리 심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위안을 줄지도 모른다.

단, 감정적으로 평온할 때 혼자서 조용히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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