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위로 형식의 글들이 많이 담긴 에세이를 많이 접하면서도 자주 피하는 이유는 솔직히 말해서
위로하는 말은 어느 책이나 다 비슷하고 진부하다고 느끼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런 책들을 찾는다는 것은 그 뻔하고도, 당연한 말이라도 필요할 만큼 지치고 몰려 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도 괜찮은 듯 보였지만 또 다시금 바닥으로 침몰하고 있어서 위로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예전엔 누군가 나를 단 한 명쯤은 진심으로 위로해 줄 사람이 있겠지, 내 마음을 공감할 사람들이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외로움과 아픔을 가지고 슬픔 겪는 사람들도조차도 서로의 마음을 공감하진 못하더라고요. 서로 상황이 닮은 듯 달랐기 때문에요.
가족들도 끝까지 위로해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남들보다 더 빠르게 포기하게 되는 게 가족들의 공감이더라고요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오히려 저의 이런 감정 굴레를 더 많이 지켜보면서도 이해하지 못하고 더 빨리 지쳐갔습니다.
근데 정작 저는 한 번도 가족들이 제 감정을 공감한다고 느낀 적이 없고 이해하는 척하고 자신들처럼 행동하기를 강요했다고 느낀 적이 많아요.
쉽게 말해서 저는 지극히 I 이자 F였고, 가족들은 E 이자 T였거든요 삶을 살아가고 이해하는 방법도 방식도 달라서 가족들의 허들을 맞추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물론 많이 내려주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저는 따라가기가 벅차고 힘든 게 많았거든요
차라리 멀리 있는 사람들은 이해하는 척이라도 하고, 가면을 쓰고 말해도 직접 볼 수가 없어서 한동안 잘 모르기라도 하지만,
매일 만나는 가족들은 그 시선과 표정에서 모든 게 느껴지기 때문에 더욱 그랬습니다
그리고 가족들도 이제 다 나 때문에 지쳐서 나를 이해해 줄 마음이 없구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는 모든 기대를 접어놓고 행동하니까
저 역시도 거짓된 행동을 보이게 됩니다 힘들지 않은 척, 아닌 척, 어차피 들어주지도 않을 거니까 말이죠.
나를 이해해 준다고 믿었던 사람은 결국 나보다 자기가 더 중요했기에 자기의 힘든 부분만을 내세우고,
나는 또 그것만 공감해 주고 그 사람에게는 나의 힘든 부분을 말하지 못하고, 그저 나는 남의 힘듦을 껴안고 갑니다.
내가 힘들기 때문에 남이 힘들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 그 사람의 힘듦은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었거든요
물론 상호 간에 함께 주고받으면 좋았겠지만 대부분은 일방적으로 저만 위로하고, 힘듦을 나눠 들게 되더라고요
말을 하지 않은 제가 어리석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안 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제가 제 힘듦을 말했을 때 상대방들은 대체적으로 아 그래-하고 불편한 기색을 많이 보이니까 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고,
말을 하지 말자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 사람들이 소중했는데 그 사람들은 그저 스치는 인연이어서 그랬겠죠
그렇게 조용한 무기력과 포기가 쌓여가는 와중에 사람들은 언제까지 슬퍼할 거야? 언제까지 힘들 건데? 네가 스스로 극복해야지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저는 아직도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오히려 힘든 감정이 더 쌓여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미 극복할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하죠.
결국 힘들지만 아닌 척 억지로 버티고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게 또 쌓이고 쌓여서 힘들어서 무너지면 또 나약하다는 말을 들어야 하고요
그래서 책 속으로 도피합니다. 이런 에세이들은 결코 그런 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제가 완벽하게 준비가 될 때까지 뻔한 말로라도 진심을 담은 것처럼 그 자리에서 처음과 같이 위로를 해주고 있으니까 차라리 그게 더 낫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