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와 암실 ANGST
박민정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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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질감과 집착, 그 끝에서 마주한 나

최근엔 장르 소설을 많이 못 읽고 다양한 책들을 읽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북다에서 괜찮은 장르 소설이 나와서 가지고 오게 되었습니다.

요즘 가장 좋아하는 출판사가 북다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좋은 책들을 많이 내주셨으면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박민정 작가님의 호수와 암실입니다. 처음엔 호수와 암살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까 암실이더라고요제목이 호수와 암실인 이유는 그 두 가지가 가지는 공통점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에 박인성 평론가님의 해설이 나오는데 그 내용을 읽어보니 많은 걸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호수와 암실은 주인공인 연화의 시선과 감정을 공유 받으며 이어지는 소설입니다.

연화의 마음속 깊은 곳, 쉽게 드러나지 않는 감정과 생각을 따라가면서

불쾌하고 이질적이지만 또 공감을 하게 되면서,

"나도 연화 같은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을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합니다.


여성 작가분이라서 그런지 책 속에 나오는 사회적인 문제들이 여성들 위주의 것들이라서

여성분들이 읽으면 특히나 느끼게 될 감정의 공감과 동요, 불쾌감, 공포가 많을 것 같았습니다.



연화는 로사와 재이라는 친구들을 통해서 여러 감정을 쏟아냅니다.

표현하지 못하는 분노, 질투, 열등감 같은 것들이 특히나 로사에게 옮겨지고 있었어요.


자신도 말을 하지 못하면서 남을 탓하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고

혼자 속으로 많은 걸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서로의 삶에 영향을 상당히 많이 미치는 것으로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것은 연화가 놓지 못한 관계 같기도 했고,

특히 로사를 밀어내고 미워하면서도 집착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많이 보였습니다. 연화에게서 가장 큰 약점은 로사가 아닐까 싶더라고요.

이 소설은 연화를 화자로, 오직 연화의 감정과 행동을 따라갑니다.

주변 인물들이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두 연화의 말에서만 추측할 수 있고, 연화의 시선으로만 모든 것이 설명이 됩니다. 각각의 인물들이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모습은 많이 보이지 않고, 나오더라도 연화의 생각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주변 인물들에 대한 절제된 묘사들은 큰 긴장감과 불편함을 만들어 내는데요

이 불편함은 겉으로 드러나는 폭력 때문이 아니라, 감정을 억누르고 감춘 채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하는 연화의 마음의 움직임에서 생깁니다.


나 같은 사람은 그들이 서로 죽이도록 만들면 된다.

단 한 번도 정정당당하게 붙어본 적 없는 놈들일 테니

책을 읽는 내내 연화의 침묵과 불안에 함께 감정이 흔들리며, 평범해 보이는 연화의 말들 속에서 숨겨진 날카로움을 느꼈습니다. 가끔씩 드러나는 그 분노의 표현이 무서웠고, 덤덤한 듯하면서도 굉장히 잔인성이 엿보이는 생각들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사람의 이면이 이런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요. 연화가 한순간에 돌변한다면 정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이 사실 '공포 소설'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귀신이나 이런 공포에 특정적인 것들은 크게 부각되어 나오지 않아서 어디가 공포일까?라는 생각을 초반에 했었는데, 이 소설이 보여주는 진짜 무서움과 공포는 귀신이나 괴담 같은 틀에 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못하는 마음과 감정, 이해받지 못한 분노,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질투 같은

우리가 현실에서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사실과 감정이었습니다.

한국 문학에서 좀처럼 시도되지 않았던 공포, 현실을 관통하는 넓은 의미의 공포소설이라는 말의 뜻도 이해할 수 있었고요.

그 모든 감정들이 누구나 현실에서 느낄 수 있지만, 연화처럼 오래 묵은 감정으로 가지고 있다는 건 꽤 무섭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연화와 같은 감정을 가지다가 그걸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면 정신적인 병을 얻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갑작스러운 분노의 폭발을 이기지 못하고 사람들을 공격하는 사람들도 생기는 것이겠죠.

연화가 왜 이렇게까지 복잡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사회와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벽을 만들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고, 반사회적인 감정을 가지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연화의 모든 감정을 정당화하기엔 무서운 부분이 많이 존재했어요.

이 소설은 아마도 쉽게 잊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차분히 읽히지만 읽는 내내 내면 어딘가를 찌르는 듯한 불편함을 남깁니다. 그 불편함 속에서 또 한 번 스스로를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도 한 번 더 물어봅니다. 나는 연화와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공포의 틀을 부시고, 새로운 형태의 공포를 경험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소설입니다. 앞으로 나올 앙스트 시리즈가 너무나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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