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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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던 이야기가 사실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처음 이 책에 대한 설명을 보았을 때 스토리보다는 미나토 가나에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이 책은 무조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녀는 바로 동명의 영화로도 더 유명한 일본의 소설 '고백'의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소설 '고백'은 학생들 앞에서 딸의 죽음을 말하고 복수를 행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매우 충격적이었던 소설입니다

영화에서는 마츠 다카코가 주인공인 선생님 역할을 맡았었는데요 사람들의 평으로는 원작보다는 영화가 더 훌륭하다고 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학생들의 순수악과 잔인함이 더욱 경악스러웠던,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묘사와 충격적인 스토리 전개가 매우 훌륭했던 원작도

나름 굉장히 재미있고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원작만의 느낌이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미나토 가나에라는 작가의 신간에 대한 신뢰도와 기대감이 높을 수밖에 없었는데요



사실 이 일몰도 일본에서는 드라마로 제작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굉장히 인기가 있었던 것 같아서 찾아보았는데

아쉽게도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못해서 조만간 다시 한번 일본 사이트에서 정보를 찾아봐야 할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책은 두 여성이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요 무명 영화각본가 가이 치히로(본명. 마히로) 그녀는 영화감독인 하세베 가오리로부터

다음 작품의 각본을 써달라는 의뢰를 받게 됩니다 하세베 가오리 감독이 생각하고 있던 소재는 바로 15년 전 사사즈카초에서 일어났던 일가족 살해 사건으로

히키코모리였던 장남이 여동생을 칼로 찔러 죽이고, 자신의 집에 불을 질러 일가족을 모두 살해한 사건이었는데요

사실 치히로는 사사즈카초 일가족 살해 사건이 일어난 사사즈카초 출신이었고, 유명하지도 않았던 자신에게 하세베 감독이 이런 의뢰를 한 것에 대한

묘한 호기심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하세베 가오리 감독이 모종의 이유로 자신에게 접근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품게 되죠

처음에 두 사람에겐 연결고리가 전혀 없어 보였는데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점 둘 사이의 관계성이 드러나게 되고 숨겨있던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두 사람은 의외로 공통된 부분이 많았는데요 일단 둘 다 사사즈카초가 고향이었다는 점 그리고 가족의 죽음이라는 큰 아픔을 겪었던 것이었죠


 내게 전철에 뛰어들 용기 따위는 없었다.

그렇게 죽으면 뒤에 남은 가족은 나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린 데 대한 뒷수습을 하느라고 마음이 분주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면도날로 손목을 긋는 방법도 있었다. 조금만 힘을 주면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눈을 꼭 감자 어떻게 된 일인지 손가락 끝이 간질간질해졌다.

하지 마, 하지 마, 사라.

손가락 끝이 그리웠던 적은 있어도 이름까지 떠올린 것은 그 동네를 떠난 뒤 처음이었다. 열다섯 살 때였으니 10년 만이었다.

그리고 하세베 감독에게는 숨겨진 사연이 있었는데요 바로 사사즈카초 일가족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여동생 '사라'와 인연이 있었던 것이죠 그녀는 과거에 사라와 이웃집에 살았던 경험이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남매 중 누군가에게 큰 위로를 받게 되었죠 하세베는 사실 자신과 공감을 나누고 위로를 전해주었던 존재가 여동생인 '사라'일 것이라고 약간은 단정 짓는 듯한 모습이 보이기도 했어요


나는 이 사건의 진상에 의혹을 품은 게 아니에요. 다만 그녀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어요. 죽은 후에 주위 사람들이 제멋대로 떠드는 말만으로 다테이시 사라라는 사람이 규정되는 건 불합리하잖아요.

그것은 그녀가 말하는 대목에서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데요 사라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연유로 살해를 당해야 했는지에 대한 모든 진실을 밝히고 사람들에게 그녀에 진실한 모습을 전하고자 하는 모습이 절실하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면 따라갈수록 사라에 대한 모순점들이 등장하게 되는데요 과연 사라는 정말 하세베가 알고 있던 사람이 맞았을까요?

사실 처음에 일가족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누구든 장남이 문제가 있었던 사람이고 어긋난 사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그리고 회상을 통해서 베란다에서 따스함을 나누었던 존재가 여동생인 사라라고 판단하는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파고 들어갈 수록 드러나는 것은 오히려 사라라는 인물에 대한 수 많은 문제점과 모순점들이었죠

처음에 우리가 생각했던 어긋난 사상을 가지고 가족을 살해한 장남이 사실은 비뚤어진 가족들의 편애에 희생되어 그 울분을 평생 품고 살다 어긋나버린 안타까운 희생자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살인은 정당화 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한 모든 정보가 이상하게 전달되는 것은 안타깝지 않은가요?

처음에 하세베가 말했던 사라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은 장남에게 적용되어야 했던 이야기는 아니었을까요?

물론 아직도 베란다에서 그녀와 따스함을 나눈 사람이 누구인지 100퍼센트 확정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장남이 무조건적인 악이라는 판단은 깨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진실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영원히 묻혀버리는 것이 좋을까요?


일부 사람들만 관심을 갖는 뉴스였는데도 불과 세 시간 정도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다 보니, 이 문제가 세상에서 크게 화제가 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는데, 나는 이쪽 의견을 지지한다고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가, 결국 타인의 생각을 추종하고 있을 뿐이란 걸 깨닫고 얼른 고개를 저었다.

스스로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는,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는 찬성도 반대도 있을 수 없다.


'언니, 당사자는 아무 말이 없는데, 남들이 하는 얘기를 그대로 믿는 멍청한 사람이 될 뻔했어."


치히로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메시지를 남깁니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이야기를 허공으로 날려보내 듯 언니에 대한 그리움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깊이 생각하지 않고 찬성도 반대도 있을 수 없다는 말이 남들이 하는 얘기를 그대로 믿는 멍청한 사람이 될 뻔했다는 말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 번쯤 그런 멍청한 사람이 되었던 기억이 있으니까요


닮은 듯 미묘하게 다른 두 사람의 가치관 속에서 사건을 따라가면서 밝혀지는 과거의 진실이 참으로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시작부터 자신이 낳은 자식에 대한 학대의 아이러니와 자식들 사이의 차별에 대한 내용을 다루게 되는데요 부모가 어떻게 자기 속으로 낳은 자식을 차별하고 미워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 역시도 그런 모순을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생각이 떠올라 굉장히 마음이 복잡하고 눈물이 핑 돌기도 했어요


제가 당한 것도 아니고 제가 한 것도 아니지만 "둘째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 같아"

"첫째한테 해줄 수 있는 걸 둘째 때문에 못해주는 것 같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심정은

과연 누가 알아줄까요?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 이해를 할 수 없겠지만,

설마 그런 부모가 어디 있겠어?라고 생각하겠지만 단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하는 부모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둘째의 마음이 떠올라서 후회가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들었습니다

아 혹시나 그 아이가 그런 상처로 어긋나게 된다면

저는 대체 어떻게 그 미안함과 죄책감을 아이에게 갚아야 할까요?


부모의 잘못된 기대와 편애, 무시... 모든 것들이 만들어낸 안타까운 결과물

아, 부디 내 아이만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의 공감이 물밀듯 밀려오고 밀려가고

그 속에서 벗어나가기 너무 힘들어서 책을 덮고 나서도 한참을 우울감에 빠져있었습니다


소설 속에서는 결국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면서 주인공인 두 사람에게는 오히려 모든 걸 위로받을 수 있고 상처를 치유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만 어쩐지 저는 두 사람의 이야기보다도 어린 시절의 상처와 부모의 잘못된 행동에 오히려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와닿는 이야기였기 때문이겠죠?


처음엔 무조건적인 미스터리 추리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을 수록 드는 생각은...

추리물에 기반한 두 사람의 치유를 위한 여정이랄까요?


놀라운 반전과 안타까운 진실이 숨어있는 이야기...

미나토 가나에는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로 우리를 놀라게 만들까요?

앞으로 그녀가 만들어 갈 수 많은 이야기에 또 한 번 기대감을 걸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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