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성은 사회주의사회에서 더 나은 섹스를 하는가 - 그리고 경제적 독립에 대한 논의들
크리스틴 R. 고드시 지음, 김희연 옮김 / 이학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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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강렬하고 호기심을 자아내는 책 제목에 이끌려 집어들었다. 제목만보고 가볍고 자극적인 내용을 기대했다면 페이지 뒤로가기를 누르는 것이 좋다. 이 책은 국가사회주의의 과거로 돌아가자고 제안하거나 그것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와 페미니즘의 교차점을 추가적으로 탐구하기 위한 입문서'이다. 꽤나 어렵고 무거운 주제로 잘 읽힐까 걱정했지만 하나도 어렵지 않다. 적절하게 제시되는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으며 쉽게 이해하도록 쓰여졌다. 그동안 우리사회뿐만 아니라 서구권에서도 사회주의가 무엇을 잘했는지를 논의하는 것조차 금지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색안경부터끼고 이 책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다소 있을 것같아 우려된다. 한번쯤은 읽고 생각해봄직한 주제들이 가득하기에 저평가되어 읽힐 기회마저 사라지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회주의 하에서 여성들은 보편적으로 자유롭고 진취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고 말한다. 민주주의, 자본주의는 좋은 것이고 공산주의는 나쁘다는 사회에서 그렇게 알고 자랐는데, 왜 나쁜 것이 여성에게 더 많은 자유를 가져다 준 것일까? 보통 보수주의자들은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장점=자유=민주화'로 사회주의는 '나쁜것=독재=강압=가난'같은 이미지로 연결시키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그래서 더더욱 그 체제 하에 좋았던 것에 대해 논의해볼 엄두를 못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사회주의 체제를 마냥 나빴던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몇가지 발상들을 차용한다면 더 나은 삶을 만드는 데 도움된다고 말한다. 사회주의가 무조건 좋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회주의가 시도했던 여러 실험과 실패를 교훈삼자고 말한다. 경제적 독립, 더 나은 노동조건, 건강한 일과 가정생활의 양립...더 나은 섹스는 이에 따른 부수적인 것이다. 자본주의의 어두운 단면을 다루며 어떻게 해야 우리가 이 체제에서 조금 더 발전적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전쟁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으로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 모두 여성 인력을 재배치, 교육을 시켜 노동 현장에 투입했다. 전후 사정이 복구된 후 자본주의 사회는 여성을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냈고, 가부장제 사회를 더욱 공고히 했다. 보육 시설, 고용 보장, 공공 교육 등 시장경제 하에서는 오히려 마이너스인 부분들을 모두 여성의 노동력으로 부담 지웠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그대로 모든 노동 영역에서 여성을 자원으로 활용했다. 공동 육아 보육 시설, 출산휴가, 차별 없는 일자리 채용 등 이것들은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이뤄냈고, 결과적으로는 남성에게 의지하지 않는 자율적인 삶을 찾아주었다.(물론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가부장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부분이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필요하다고 부르짖는 이 모든 것들이 1950년대, 혹은 그 이전 여러 사상가들에 의해 주장되었고, 사회주의 사회에서 실험했던 모든 것이었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 소련에서 콜론타이는 여성에게 산업노동뿐만 아니라 가사노동, 육아노동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대신 유치원, 탁아소, 보육원, 공공 식당, 세탁소 등을 만들어 국가가 돕자고 주장했다. 1919년에 완전한 여성의 해방을 이끌 사회개혁을 시행할 여성부 제노텔(Zhenotdel)을 만들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실험은 실패하게된다. 그러나 이 기획은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사회의 여성정책에 밑바탕이 되었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 하에서 여성의 노동력은 값싼 것으로 취급된다. 인간의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재생산 영역(돌봄, 친밀감, 의식주관리 등)은 상품으로 전락한다. 모두 모성애의 신화와 행복한 가정을 위한 필수요건인 전업주부의 이미지로 여성 인력은 제한된다. 일과 아이돌봄을 병립하는 일은 우리사회나 외국이나 전세계 어디에서든 고달픈 투쟁이다. 저자가 들었던 예시 중 한 이야기는 내 마음을 매우 언짢게 했다. 고급 인력이었으나, 출산 후 가정주부로 사는 저자의 친구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저녁식사를 위해 남편에게 돈을 구걸하다시피하는 장면은 서글프고 치욕스럽게 느껴졌다. 아무리 가깝고 친밀한 사이여도 경제적 자립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서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예속된 아내의 모습은 마치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성은 아이를 낳을 몸이고 따라서 회사에서 투자한 만큼 돌려받을 수없기에 채용할 수 없다는 회사, 그러나 이러한 여론을 뒤로하고 능력있는 여자 직원을 채용했으나 결국 이 여성도 일과 아이돌봄 병행이 어려워 촉망받던 회사를 떠날 수 밖에 없던 이야기 등 이 모든 모습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여성이 엄마가 되도록 강요했으나 자신의 경력과 가족 중 하나를 선택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느끼는 절망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가사회주의 정부들은 대개 여성과 남성을 사회주의 국가사업의 동등한 수혜자로 만듦으로써 남성에 대한 여성의 경제적 의존을 줄였다. 이런 정책들은 경제적인 고려에서 사랑과 친밀감을 분리해낼 수 있도록 도왔다. 여성이 자신의 수입원을 가지고 있고, 국가가 노령기, 질환, 장애에 대한 사회보장을 약속한다면 여성은 폭력적이고 성취감을 주지 못하는 관계 또는 그외의 건강하지 못한 관계에 머물 경제적인 이유가 없다.(중략) 여성은 돈 때문에 결혼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까지 읽으면 고용보장은 여성에게만 이로운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고용 보장은 여성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다. 미래에 모든 직업과 사회 전반이 기계화 되고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면 남성은 오늘날의 여성처럼 노동시장에서 저평가되고, 버려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하에서는 모든 것은 비교가치를 따져 결정된다. 정부 개입의 고용 보장, 육아와 돌봄 지원 등은 결국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win-win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고용보장을 향한 모든 움직임은 공공부문의 상당한 확대를 요구할 것이고, 여성과 남성 간의 임금격차 제거로 젠더 평등이 촉진되는 추가적인 이점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역설적인 점은 국가사회주의 정권이 국가에 여성과 남성이 똑같이 의존하게 만듦으로써 남성에 대한 여성의 경제적 의존을 줄인 것에 비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술의 미래가 로봇 대군을 소유한 사람들의 관대함에 여성과 남성이 똑같이 의존하게 만듦으로써 남성에 대한 여성의 경제적 의존을 줄인다는 것이다.


연애 관계가 여성이 거주할 집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로 여겨져서는 안된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하지만 1인 가구에 대한 지원의 부재(지원정책이 있긴 하지만 매우 미미하다.), 신혼부부에게 유리한 청약 제도 등은 결혼이라는 것을 강요 아닌 강요화한다. 우리 사회는 이런 식으로 여성의 선택의 자유를 박탈한다. 배우자를 부양하고 지원할 여력이 없는 남성은 사회적으로 도태된다. 결국 이러한 체제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득이될 것이 없다. 저자는 가장 쓸모있는 사람이 고용되는 노동시장에서 여성과 남성을 동등하게 대할 수 없는 이러한 체제하에서 그나마 육아휴직, 국가가 지원하는 보편적 보육과 같은 정책이 젠더 차별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사회주의적 제안들은 직장과 집에서의 젠더평등이라는 목표를 가진다. 


책 제목이기도 한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성(性)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독일의 분단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을 제공했다. 바로 한 설문조사에서 동독 여성들이 서독 여성들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의 감각적 쾌락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사회적 안정감, 동등한 교육, 직업의 의무, 사회적 삶에 참여하고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평등한 권리와 가능성의 결과였다. 서독은 전통적 젠더 역할인 남성 생계 부양자/여성 전업주부 모델을 받아들인 반면에 동독은 노동자 부족과 결부된 여성해방이라는 목표하에 많은 여성을 노동인구로 동원했으며, 여성이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율성을 갖는 환경을 조성했다. 가사 노동과 양육의 사회화, 경제적 독립은 성(性)을 경제적 교환에 기초한 관계로 전락하게 만들지 않는다.


결국 여성에게 자유와 경제적 자립을 보장하는 사회일수록, 지금보다 좀 더 평등한 고용관계와 사회 분위기를 만들수록 남성과 여성 모두 사회가 만든 잣대에 갇히지 않고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가 알기 힘들었단 동구권 사회주의 체제 하 생활을 살펴보며 자본주의가 우리 삶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과거와 그리고 금기시되었던 사회에 대한 고찰을 통해 우리의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여성은 자신이 남성보다 더가난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1928년에 버나드 쇼는 썼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남성을 노예로 만들었던 것처럼 남성을 통해 여성에게 돈을 지불함으로써 여성을 그 남성의 노예로 만들었고, 여성은 노예 중에서도 최악인 노예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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