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 - 『이코노미스트』가 본 근대 조선
최성락 지음 / 페이퍼로드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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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기록하는 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고 했던가. 

어떤 사실은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로 펼쳐지기도 한다.

한 때 나는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외국인들의 눈으로 바라봤던 조선에 대한 책들을 탐독했던 적이 있다.

비숍여사,스웨덴 기자의 책, 고종의 의사였던 독일인 의사의 기록, 독일인 부부의 조선 신혼여행기까지 그 당시 외부인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조선 사회는 어땠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서구 열강 중 하나였던 영국 언론인 이코노미스트가 본 근대 조선은 어땠을까? 책을 읽으면서 느낀 바를 간단하게 정리해보려 한다.


1. 오페르트


우리나라는 물론 자국에서도 쌍놈 취급받은 오페르트가 조선 정부는 무능하다 욕했지만 조선 자체, 조선인들의 숨겨진 저력이나 국민성 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2. 중개무역


영국과 조선 사이에 중국과 일본의 상인들의 중개무역은 30여년 동안이나 이루어졌다. 물론 그 긴 세월동안 중간에서 엄청난 이득을 취했음은 두 말 할 나위 없다. 예전에도 문득 '우리나라 상인들은 왜 직접 수입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이제서야 새삼스레 아주 간결하고도 명확한 진실을 알았다.

'상인들이 마음대로 외국에 나갈 수 없었기 때문'

쇄국정책에 대해 배웠으면서도 시험에 나오는 부분만 생각했지, 이렇게 연관지어 생각해보지는 못했다. 면직물이 생산되는 멘체스터, 인도의 봄베이에 가는 것이 우리 상인들은 아예 불가능 했던 것이다. 덕분에 중국과 일본 상인들의 배만 불려주는 꼴이 되었다.


3. '조선인들은 무기력하다'


예전에는 이러한 관점을 제국주의 열강이 자신들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시선이라 생각했었다. 물론 그러한 부분도 있겠지만,결론적으로는 '관료들의 부정부패'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 우호적인 기록을 남겼던 비숍여사도 처음에는 조선과 조선사람에 대해 비관적이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만주에 여행을 갔을때 그곳에 이주한 조선인들을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그들은 본국에서와 달리 성실하고 빠릿빠릿함을 자랑했다. 심지어 조선에서 이주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조차도 말이다.

조선에서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면 관료들이 다 수탈해가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니 일을 열심히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이런 사회에서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거나 빼앗길 뿐이었다. 그리고 대가족사회였던 조선은 관료가 친척을 가두고 인질삼아 돈을 수탈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만주에서는 자신이 버는만큼 모두 나의 자산이 되었다. 조선인들 역시 관료만큼 지혜롭고 합리적이었다. 그들은 합리성을 발휘한 결과 아무일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중요한 시기를 맞이했던 구 한말 부정부패로 충분히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을 허비하게 되다니... 백년이 넘은 지금에도 안타깝고 통탄스러운 일이다.


4. 서양의 동양 시장 개방에 대한 새로운 시각


기존의 시각 : 아시아 국가의 완전한 시장 개방을 목적으로 삼고 그에 따라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진행함. 처음부터 완전한 시장개방을 요구하면 엄청난 반발을 받을 수 있음. 따라서 하나 또는 두개의 항구를 먼저 개방한 뒤 점차 늘려가거나 무력을 동원했다.


이코노미스트의 시각 : 군대를 동원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생김->군대 동원에 의한 손해를 메꿀 이권을 요구함-> 또 다른 사건 발생->군대 파견->또 군대 파견에 의해 일어난 손해를 메꿀 이권 요구

따라서 의도적인 시장 개방이 아니었음


이 시각에 입각하여 좀 더 살펴보면 서양은 법치주의가 잘 지켜지고, 서로 정정당당하게 누가 물건을 많이 파는가로 경쟁했지 국가가 개입하는 일이 드물었다. 하지만 동양은 국가를 개입시키고, 자신들의 룰 대로만 하려고 했다. 그렇기에 서구 열강도 군대를 파견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동아시아 상인들은 정부의 뒷배와 보호를 고수하며, 자신들의 방식을 막무가내로 적용하려 든다' 

 

개인적으로 이들의 의견도 어느정도 일리가 있으나 서양 열강들의 눈에 보이는 뻔한 꼼수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당시 서구 열강은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좋은 물건을 가져가려고 했을 것이고, 동양권 문화나 감성에 익숙하지 않았으니 그에 대한 반발과 충돌이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물건을 팔거나 사길 원한다면 배고픈자가 능력껏 상대를 설득하여 이득을 취하는게 시장 원리가 아닌가? 저들의 항변은 '너네가 너무 막무가내여서 어쩔 수 없었어'같은 알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5. 중국, 이홍장


자존심강한 중국이 왜 문호개방을 했을까? 이에 대한 의문은 학창시절 역사시간에도 가졌던 의문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잘난 것이 자기들이라고 믿는 민족인데, 뭐가 아쉬워서? 물론 서양의 과학 기술 도입의 필요성을 느껴서 일 수도 있지만, 산업혁명 이전에는 동양권이 서양보다 앞선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의 개방 이유는 '이거 먹고 떨어져라'였던 것. '이런 것을 내어줄테니 우리말 잘 들어라'라는 선민의식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부분 때문에 자멸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당시 조선인들이 모두 무식했기에 일본의 침략은 당연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들의 잘못이라면 세계정세에 어두웠고,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알려고 하는 이들이 너무나 적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일본, 러시아 등 세계 열강들과 인접한 국가로서 "외교"가 가장 중요한 나라인데, 그 당시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배불리기에만 급급했다. 이러한 안일함이 결국 우리가 잘 아는 근대사회를 만들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서구열강의 시각에서 쓰였기에 그 한계가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객관적으로 당시 조선과 정세를 살펴볼 수 있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 않던가 우리는 백 여년 전의 교훈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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