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가까워오지만 대선관련 정치토론방의 열기는 생각만큼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야후코리아의 대선 코너인 ‘2007 희망대선’의 9월 둘째 주 주간순방문자수는 지난 3월(40만8000명. 코리안클릭 발표) 개설당시의 거의 절반 수준인 21만 명에 그쳤고 판도라TV의 대선 코너 ‘2007 동영상 UCC(사용자 제작물) 대전’ 역시 최근까지 하루 평균 순방문자수가 1만 명을 채 넘지 못하고 있다.
범여권 경선의 흥행참패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대세론에 따른 밋밋한 대권구도와 지난 8월부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 사건이 주된 원인으로 분석되지만 공직선거법 강화로 사전선거운동 기간 중 누리꾼들이 대선 관련 게시물 작성에 제한을 받게 된 것이 상당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러한 점에서 한 정치토론 전문 사이트에 얼마 전부터 경찰출두 명령을 받았다는 논객들의 글이 잇따라 게재되고 있는 것 역시 정치토론방의 침체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필력 있는 정치논객들 모조리 경찰조사 받아
정치토론 사이트의 논객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 누리꾼은 지난 1일 “(내가) 게재한 글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모 경찰서 수사과에서 출석 명령서를 받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자신이 게재한 대선관련 글이 인터넷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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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경찰출석명령을 받았다는 정치논객의 글 (화면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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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동일한 사이트에 지속적으로 글을 게재해 온 10여명의 논객들이 같은 이유로 경찰 출석 명령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해당 사이트의 한 논객에 출두 조사 명령을 내린 경기도 화성 경찰서의 유충재 경사는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대선 후보자에 대한 비방이나 낙선을 목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되는 글에 대한 처벌조항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처벌 기준이 모호한 것은 인정하지만 우리로써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자문을 받아 판단기준으로 삼고 단속활동을 할뿐”이라며 “최종 판단은 법원에서 이루어진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필력 있는 논객들이 모조리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면서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정치 전문가들보다 심도 있는 분석을 내놓아 실력을 인정받는 논객들이 많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
한 누리꾼은 “혈연과 지연을 앞세운 폐쇄사회적 성격이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터넷 토론이 100% 바람직한 모습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라고 비판했다.
이 같이 정치논객에 대한 단속이 심해진 상황에 대해 이진우 네이션코리아 편집장은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 응해 “기본적으로 현재 인터넷 공직선거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편집장은 “누리꾼들이 토론방에 일정 후보의 지지나 반대의 글을 올릴 수 없다는 선거법의 개념이 명확치 않다”면서 “때문에 누리꾼들 입장에서 선거법 위반 여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불가능해 누리꾼들이 아예 글을 쓰지 않거나, 글을 게재하더라도 선거법 위반에 걸리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해당 사이트에서는 ‘선거 관련 글의 게시에 관한 안내’라는 제목의 공지 글로 선거법 위반 기준과 유의사항을 명시해놓기도 했으나 누리꾼들이 판단할 수 있을 만한 명확한 기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관련 선거법 개정 전과 후를 비교할 때 게재되는 글의 수나 댓글 수가 현저히 줄어든 것이 사실”이라며 “사이트 관계자 입장에서 솔직히 타격이 크다”고 언급했다.
인터넷의 열린 소통 막는 제도권의 폭력
이진우 편집장은 “온라인 문화를 오프라인의 잣대로 규제해 인터넷의 열린 소통을 방해하는 격”이라면서 “소위 말하는 제도권 언론들에 영향력 있는 인사가 개인적 견해를 담은 글을 게재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누리꾼들의 글이 문제가 되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과연 이것이 열린 민주주의가 맞는지 의심된다”며 이 같은 상황을 “제도권의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 편집장은 “지난 선거관리법 개정을 한나라당이 주도한 것으로 안다”면서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도 인터넷 공직선거법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대선을 앞두고 논의할 사항이 아니라며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지명도 있는 정치논객들이 집중적인 단속을 받아 경찰 조사를 받는 사례가 늘자 지난 인터넷공직선거법 개정을 주도했던 정당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감 역시 커지고 있는 상황.
이 같은 상황은 ‘인터넷 정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각오를 내비친 각 당 후보들의 행보와 엇갈리는 결과이기도하다. 누리꾼들은 대선과 관련해 자유로운 글의 게재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 대선후보들이 펼치는 인터넷 정치의 진심까지 의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