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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
김소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1월
평점 :
<첫, 헬싱키>의 저자이자 일러스트레이터 김소은의 에세이, <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를 읽었다. 출간 당시 출판사가 열심히 홍보하던 게 기억이 나는데, 사실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책이 아니라 반신반의하며 보았다.
독신주의라 외치던 저자가 남들보다 조금 일찍 결혼하고 생각지도 않았던 아이를 갖게 되면서, 동시에 유방암 진단을 받은 엄마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쓴 일기이다. “너 나중에 꼭 너랑 똑같은 딸 낳아서 고생 해봐!”라고 외치던 엄마와의 추억을 글로, 그림으로, 짧은 만화로 모아놓은 책이다.
할머니가 된 엄마의 모습은 낯설지만 보기 좋다. 엄마도 누군가의 엄마이기 이전에 자기 자신이었고 엄마 역할도 처음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346p)
엄마가 된 저자는 자신의 엄마에 대해 생각한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다. 엄마는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줄곧 나의 엄마였으므로.
하지만 나보다 어린 나이의 엄마 사진을 보면서도 왠지 엄마는 ‘나의 엄마’로 태어나 엄마로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뛰어놀고 장난치고 공부하고 고민하고 사춘기도 겪었을 그런 엄마의 삶을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어린 모습이었어도 내게는 ‘엄마’였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를 낳았던 그때의 엄마와 나이가 점점 같아지면서,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 서툴고 하고 싶은 것 많고 누군가를 책임지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나 같은 엄마가 있었겠구나. (42p)
어느 날, 동생에게 다급히 전화가 걸려왔다. 얼마 전부터 자꾸 아프다고 하던 엄마가 병원에 다녀와 검사 결과를 듣는 날이었다. 유방암 3기라고 했다. 청천병력같은 소리였다. 암이니 항암치료니 하는 것들은 모두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자매는 항암치료를 받는 엄마를 간호하다가도 문득 문득 엄마의 고통에 온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자신들을 발견한다. 왜 우리는 유독 엄마에게만 이렇게 매정할까? 누구보다 가깝지만 때때로 남보다도 멀게 느껴지는, 남에게보다 더 못되게 굴게 되는 엄마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이 솔직히 드러난다.
지나고 보면 짧은 시간일텐데 그 시간 한복판에 서있는 내게는 그런 감정을 느낄 날들이 너무 멀게만 보였다. (118p)
한 달에 한두 번, 본가에 내려가면 엄마가 반겨주신다. 오랜만이라고 재잘재잘 새벽 늦은 시간까지 엄마와 수다를 떨고 있노라면, 엄마가 꿈꾸는 표정으로 딸과 수다 떠는 이 시간이 ‘정말 행복하다’고 말한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나는 반성과 후회, 그리고 연민의 시간을 갖게 된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이렇게 많아지는 거겠지. 내가 모르는 엄마의 하루하루가 쌓여있듯이. 지금의 내 나이에 결혼했던 엄마를 자꾸 생각해보게 된다.
많은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후회는 언제나 늦었다.
‘그동안 난 뭐한거지?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내가 다 날려버렸어.’
불행과 고통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그 가운데에서도 사랑과 행복을 찾아내는, 말은 제법 거창해보이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을 그린 에세이였다. 남의 일기를 슬쩍 읽는다는 가벼운 맘으로도 충분한 글이었다. (책 전체가 거의 구어체였고 비문도 종종 있었는데, 그래서 더 일기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괴로운데, 상실을 다시 그려야했던 저자가 책을 쓰며 많이 울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세상 모든 엄마에게 바치는 편지 쯤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