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 문학동네시인선 100 기념 티저 시집 문학동네 시인선 100
황유원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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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선물로 받은, 문학동네시인선이 100번째를 기념하여 낸 티저 시집. 101번부터 150번까지의 책을 낼 시인들의 시 한 편과 산문 한 편을 티저 형식으로 실었다. 물론 시인들의 의견에 따라 원치 않는 이들은 이번 티저 시집에서 빠졌다. 여행가면서 책을 딱 한 권 챙겼는데 그게 이 책이었다. 덕분에 시집을 두 번이나 정독할 수 있었다. 티저 시집이란 이름에 걸맞게, 책을 다 읽으니 꼭 사고 싶은, 기대되는 시인이 몇 명인가 생겼다. 


시집을 읽을 때 늘 생각하는 것,

시를 읽는 데 정답이란 건 없겠지만, 가끔 보면 사람들은 비슷한 부분에 밑줄을 긋는다. 이 책을 먼저 읽은 이가 접어놓고 표시해 놓은 페이지를 마주하면 왠지 더 꼼꼼히, 더 열심히 읽게 된다. 


좋아하는 시인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선뜻 대답하기가 어렵다. 한 시인의 모든 시가 좋을 수 없고 한 시인의 모든 시가 성에 안 찰리 없다. 이 시인의 어떤 시가 좋고, 저 시인의 그런 시가 좋기도 한 법이라 시집 한 권을 다 읽었을 때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50여 명의 시인이 각자 다른 색의 목소리를 내는데, 이 다채로움을 감상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나에게 더 와닿는 글을 쓰는 작가를 찾아내는 즐거움도 있었고, 같은 주제로 다른 글을 쓰는 시인들의 노련함에 감탄도 했다. 시인은 모두 천재인가봐,를 속으로 백 번도 더 넘게 외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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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
김소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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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헬싱키>의 저자이자 일러스트레이터 김소은의 에세이, <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를 읽었다. 출간 당시 출판사가 열심히 홍보하던 게 기억이 나는데, 사실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책이 아니라 반신반의하며 보았다.


독신주의라 외치던 저자가 남들보다 조금 일찍 결혼하고 생각지도 않았던 아이를 갖게 되면서, 동시에 유방암 진단을 받은 엄마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쓴 일기이다. “너 나중에 꼭 너랑 똑같은 딸 낳아서 고생 해봐!”라고 외치던 엄마와의 추억을 글로, 그림으로, 짧은 만화로 모아놓은 책이다.


할머니가 된 엄마의 모습은 낯설지만 보기 좋다. 엄마도 누군가의 엄마이기 이전에 자기 자신이었고 엄마 역할도 처음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346p)

엄마가 된 저자는 자신의 엄마에 대해 생각한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다. 엄마는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줄곧 나의 엄마였으므로.


하지만 나보다 어린 나이의 엄마 사진을 보면서도 왠지 엄마는 ‘나의 엄마’로 태어나 엄마로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뛰어놀고 장난치고 공부하고 고민하고 사춘기도 겪었을 그런 엄마의 삶을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어린 모습이었어도 내게는 ‘엄마’였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를 낳았던 그때의 엄마와 나이가 점점 같아지면서,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 서툴고 하고 싶은 것 많고 누군가를 책임지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나 같은 엄마가 있었겠구나. (42p)

어느 날, 동생에게 다급히 전화가 걸려왔다. 얼마 전부터 자꾸 아프다고 하던 엄마가 병원에 다녀와 검사 결과를 듣는 날이었다. 유방암 3기라고 했다. 청천병력같은 소리였다. 암이니 항암치료니 하는 것들은 모두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자매는 항암치료를 받는 엄마를 간호하다가도 문득 문득 엄마의 고통에 온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자신들을 발견한다. 왜 우리는 유독 엄마에게만 이렇게 매정할까? 누구보다 가깝지만 때때로 남보다도 멀게 느껴지는, 남에게보다 더 못되게 굴게 되는 엄마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이 솔직히 드러난다.


지나고 보면 짧은 시간일텐데 그 시간 한복판에 서있는 내게는 그런 감정을 느낄 날들이 너무 멀게만 보였다. (118p)

한 달에 한두 번, 본가에 내려가면 엄마가 반겨주신다. 오랜만이라고 재잘재잘 새벽 늦은 시간까지 엄마와 수다를 떨고 있노라면, 엄마가 꿈꾸는 표정으로 딸과 수다 떠는 이 시간이 ‘정말 행복하다’고 말한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나는 반성과 후회, 그리고 연민의 시간을 갖게 된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이렇게 많아지는 거겠지. 내가 모르는 엄마의 하루하루가 쌓여있듯이. 지금의 내 나이에 결혼했던 엄마를 자꾸 생각해보게 된다.


많은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후회는 언제나 늦었다.

‘그동안 난 뭐한거지?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내가 다 날려버렸어.’


불행과 고통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그 가운데에서도 사랑과 행복을 찾아내는, 말은 제법 거창해보이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을 그린 에세이였다. 남의 일기를 슬쩍 읽는다는 가벼운 맘으로도 충분한 글이었다. (책 전체가 거의 구어체였고 비문도 종종 있었는데, 그래서 더 일기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괴로운데, 상실을 다시 그려야했던 저자가 책을 쓰며 많이 울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세상 모든 엄마에게 바치는 편지 쯤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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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무라카미 요코 사진,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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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1994년~1995년 사이 잡지에 연재했던 글에 살을 덧붙여 만든 에세이집이다. 특별히 하루키의 팬은 아니고, 그의 명성이 너무 자자해 오히려 약간 거부감이 생겨 부러 더 찾아보지 않았던 작가다. 작가가 서문에서 이 책은 전작 <이윽고 슬픈 외국어>의 속편 정도가 되겠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마침 내가 유일하게 읽어본 하루키가 <이윽고 슬픈 외국어>여서 그가 쓴 글을 25년 전부터 천천히 따라 읽어오는 느낌이다.

타인의 SNS를 보며 느끼는 즐거움 중 하나는, 남의 일기를 훔쳐본다는 은밀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페이스북보다는 인스타그램이, 인스타그램보다는 블로그가 그런 은밀하고 짜릿한 기분을 느끼는 데 더 적합하다. 거창한 정보나 특별한 지식보다 별 것 아닌 듯한 남의 일상이 더 감동적일 때가 있다.

내용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표지를 지적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다. 이 책은 1999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2015년에 개정판을 찍었다. 2015년이라는 숫자가 무색하게 세기말 분위기의 표지 사진과 글씨체와 색상 선택은 책을 선뜻 집어들기 어렵게 한다. "읽고 싶지만 들고다니기 쪽팔려서 살 수가 없다"는 온라인 서평도 있으니 말 다했다고 할 수 있다.

표지를... 원작과 동일하게 하기 위해서 그대로 썼다고 백 번 양보해 이해해보기로 해도... 도대체 하루키 사진은 왜 합성해서 넣은 것일까??? (하루키 본인만 다른 사진에서 잘라 붙인 표지다.) 사진의 화질도 현저히 떨어져 인쇄 실수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 표지 사진에 저 글씨체는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한 면에 서로 다른 폰트 3개, 그리고 각각 다 다른 색으로 제목과 부제, 작가 소개에 쓰인 색이 무려 4개다. ???(어리둥절)??

책을 보자마자 강박적으로 표지를 벗겨내 버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암울한 모양새다. 세련된 속표지와 '감성 에세이'에 딱 어울리는 완벽한 일러스트를 다 제쳐두고 합성한 화질 떨어지는 사진을 표지로 선택한 데에는 여러가지 사정과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아니 그런 어쩔 수 없는 속사정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

장편소설을 준비하던 작가가 미국에 거주하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며 남긴 일상의 기록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저녁 9시면 잠자리에 든다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소설가로서 훨씬 더 건강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하루키는 소박한 일상에서 건져올리는 무언가, 그 무언가의 위대함을 아는 사람 같다.

2018년의 트랜드가 '소확행'이라고 하는데, 하루키는 20년 후의 트랜드를 미리 알고 있었던 걸까. 누구에게나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즉 소확행이 있을 터이다. 작가의 소확행은 마라톤, 여행, 그리고 고양이. 그렇다면 내 행복은 어디서 올까? 나를 일상에서 구원해주는, 거창하지 않지만 확실한 행복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가벼운 에세이였다. 표지 빼고 다 좋았음^^..

예술이라는 것은 다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그 작품의 작품성이 높다는 것과 마음속에 걷잡을 수 없이 불을 댕기게 한다는 것은 완전히 별개인 것 같다. (36p)

사람이란 아무래도 상관없을 사실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모양이다. (38p)

고생이나 고통이라는 건, 그게 타인의 몸에서 일어나는 한, 인간으로서는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특히 일반적인 종류의 고생이나 고통이 아닌 경우에는 더욱 심한 편이다. (60p)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일시적 기분으로 내 이제까지의 인생 중에서 1,2위를 다툴 만한 사치스러운 행동이었다. 예컨대 미네랄워터로 이를 닦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별로 대수로운 일도 아니라고 한다면 물론 그렇겠지만, 그러나 그 나름대로의 결단이라는 게 늘 필요하게 마련이다. (131p)

결국 구두쇠가 아니냐는 말을 들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생활 속에서 개인적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철저한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같은 것이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하고 혼자 눈을 감고 자기도 모르는 새 중얼거리는 것 같은 즐거움, 그건 누가 뭐래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참된 맛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없는 인생은 메마른 사막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136p)

현실은 좀 더 현실적이다. (144p)

하트는 어떤 고양이에게도 재주를 가르칠 수 있다고 단언했다. 그 근거는,
(1) 어떤 고양이라도 배는 고프다
(2) 궁극적으로 고양이보다 인간이 머리가 좋다
라는 두 가지가 있다. 하지만 (2)와 관련되어서는 조금 예외가 있는 모양이다. 그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190p)

말하자면 절망적인 빈곤이 구조적으로 만들어내는 비인간적인 폭력 행위의 연쇄를 끝내는 것은, 새끼 고양이 샤샤를 떠맡듯이 그렇게 간단히 해결되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동화가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다. 물론 모두 운 좋게 샤샤처럼 행운을 만난다면 더이상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210p)

하지만 글을 쓸 때도 그렇지만, 사람이 언제나 컨디션이 좋을 순 없다. 오랫동안 뭔가를 계속하자면 산도 만나고 골짜기도 만나는 법이다. 컨디션이 나쁠 때는 나쁜 대로 자신의 페이스를 냉정하고 정확하게 파악하여, 그 범위 안에서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나가는 것도 중요한 능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무리하지 않고, 고개를 치켜들고 꾸준히 참고 해나간다면, 다시 조금씩 컨디션이 되돌아오는 법이니까. (2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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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외계인의 인류학 보고서 - 지구인이 알아야 할 인류 문화 이야기 어느 외계인의 인류학 보고서
이경덕 지음 / 사계절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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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인류학 대중서를 떠올려보라고 하면 보통 '인류학이 뭔데요?'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인류학이 뭔지 대~충 아는 사람들은 출간한지 20년 된 <, , >를 떠올리고 전공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 , >는 지리학에 더 가깝지 않느냐는 대답을 한다. (참고로 인터넷 서점에서는 사회학이나 역사로 분류되어 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가장 성공한 인류학 대중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나 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도 고전으로 꼽는다.

 

문화인류학 개론 수업에서 교재로 쓴 책은 일조각에서 나온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였는데, 두 책 모두 입문자에게 문화인류학을 소개하고 흥미를 유발하기 적당한 두께와 분량과 내용이다. 그러나 역사시대 이전부터 현대까지, 인류의 모든 문화 면면을 광범위하게 다루는 문화인류학치곤 소박한 현실이다. 학문이 다루는 범위가 넓고, 논쟁적인 주제나 흥미로운 연구도 많은데 소개가 전혀 되지 않는 것 같아 참 아쉬울 뿐이다.

 

이런 지점에서 이경덕 선생님의 <어느 외계인의 인류학 보고서>는 반가운 책이었다. 사계절 출판사에서 청소년 교양 도서로 나온 책으로,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케이 펙스라는 행성에서 온 외계인들이 지구를 관찰하며 작성한 인류학 보고서를 저자가 우연히 헌책방에서 발견해 이렇게 책으로 냈다고 한다.(완전 귀여운 설정) (그래서 사진도 귀여운 배경에 찍어봤음)

 

청소년들에게 인류학이란 무엇인지, 인간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귀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책이다. 인류학이 뭔지 궁금한 성인이나 얇고 넓은 지식을 갖고 싶은 이들도 다소 유치한 설정과 서술 방식을 감안한다면, 아주 가볍게 충분히 읽을 만하다. 일러스트도 귀엽고, 외계인이 지구를 관찰하며 설명한다는 설정도 귀엽다. 고등학교 사회문화 수업을 듣는 느낌이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고전 인류학자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연구 내용을 설명하고, 다양한 사례를 이야기한다.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지식이지만 가끔 이런 당연한 이야기가 읽고 싶을 때가 있다. 때때로 내가 상식이라 믿는 것들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개인적으로 이런 종류의 "문화인류학"책도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원주민 연구하는 고전적인 문화기술지 말고, 흥미로운 현대의 문화를 소개하는 책들을 사람들에게 더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다. 600쪽 넘는 <사피엔스>, 700쪽 넘는 <, , >는 넘 부담스러우니...

인류학은 인간의 생각과 행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인류의 문화와 사회를 연구한다. 정치학이 정치를 연구하는 학문이고 사회학이 사회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면 인류학은 인류, 곧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5p)

그러나 현재 유인원과 인류는 분명히 다르다. 따라서 그 차이의 기준은 도구의 활용보다는 문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32p)

대홍수라든가 빙하기 같은 자연환경 변화나 인구 증가 등에 따라 인류의 삶은 끊임없이 변화한 것이다. 발전이나 진화라는 표현을 ‘변화‘로 바꾸면 뛰어남과 열등함의 구분이 사라진다. 누군가 뛰어난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열등한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렇게 구별하면 반드시 차별이 생긴다. 발전이나 진화가 아니라 변화로 받아들이면 차별이 줄고 다른 문화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은 커진다. (38p)

인류가 동물과 결정적으로 차이가 나게 된 것은 도구의 사용이 아니라 언어의 사용 때문이다. 언어를 사용하면서부터 손짓과 발짓이 아닌 말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고, 자기가 체험한 것을 글로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말과 글은 인류가 독자적인 문명의 길을 가도록 이끌었다. (44-45p)

동그라미에 그린 네 개의 선이 얼굴을 뜻하고 파란색 양복이 남성을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이유는 그것들이 상징이기 때문이다. 문화화는 바로 이러한 상징을 이해하는 것이다. (47p)

문화상대주의에서 중요한 점은 다른 문화를 대하는 자세에 있다. 자기와 다른 문화를 배척하고 이상하다고 여기거나 반대로 무턱대고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를 균형 잡힌 시선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56p)

사람이 다니기 시작하면 길이 생기고, 길이 생기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위를 지나다닌다. 지구의 인류는 그렇게 지구 위에 길을 내고 그 길을 통해 물질문화와 정신문화를 주고받으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인간의 문화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변할 것이다. (67p)

인류의 문화는 늘 비대칭적으로 변화해 왔다. 인류 역사에서 대칭성의 문화가 실현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간단하게 생각해서 오른손과 왼손을 모두 잘 쓰는 양손잡이의 세계가 되면 좋을 것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실제로 인류의 문화는 이런 대칭성보다는 비대칭성을 통해 변화해 왔다. (83p)

경기를 하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경기에서 패하고 기분 좋은 사람은 없다. 심지어 검투사의 경기에서는 패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즉 경기는 승부를 가려야 하고 결과적으로 이기는 쪽과 지는 쪽이 생긴다. 그래서 경기의 목적은 남을 이기는 것이 된다.
반면 놀이는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놀이의 목적은 남을 패배시키는 것이 아니다. 놀이를 통해서 그 놀이에 참가한 사람들이 친해질 수 있다. 놀이는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 준다. 만약 놀이로서 축구를 한다면 함께 땀흘리고 서로 격려하면서 친밀도를 높이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게 된다. (133p)

예전에 유럽의 선교사가 아프리카에 갔다가 그곳 원주민들에게 축구를 가르쳐 주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곧 축구의 재미에 빠져 열심히 공을 찼다. 그런데 선교사들은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벌써 시간이 지났고 승부가 났는데도 주민들이 축구를 끝내지 않고 계속 공을 차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축구가 하도 재미있어서 그러나 싶었는데, 그렇게만 보기에는 좀 이상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주민들에게 이제 승부가 났으니 그만 끝내라고 말하자 주민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무승부가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축구를 끝낸단 말이오?" (133p)

경쟁을 하면 반드시 패배한 사람이 나오게 마련이다. (134p)

교환의 첫 번째 법칙은 내가 받고자 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먼저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행위가 계산적이든 아니든, 먼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상대에게 좋은 말을 할 때 역시 좋은 말을 듣게 된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고운 것이 아니라,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그것은 호혜성 교환이 보여 주는 것처럼 다 함께 행복하게 사는 길이기도 하다. (200-201p)

우주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 작은 곤충에서 하늘의 별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다 그대와 가까운 사람이라도 되는 양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난 사랑의 강렬함을 느끼게 될 것이고, 영원한 시간이 그대에게 내려와 황금 날개로 그대를 덮어 줄 것이다. (219p)

문화인류학 또는 인류학은 이런 타자의 문화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타자를 연구하는 것은 타자의 문화를 거울 삼아 자기의 문화를 비춰 보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문화인류학은 타자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 밖에서 관찰하며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속으로 들어가 함께 어울립니다. (2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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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과 물 배수아 컬렉션
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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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뱀과 물>


드디어 배수아를 읽었다. 도서관에 예약 걸어 놓은 게 이제야 도착해서 주말에 천천히 읽었다. 지난 달, 누군가가 자신의 '올해의 책'은 누가 뭐래도 <뱀과 물>이라고 했던 것을 생각하며. 이 책을 읽는 사람들 대부분이 비슷한 생각을 하리라 믿는다. 

'내가 지금 뭘 읽은 거지?‘


"그 어떤 서사보다 매혹적인 ‘낯섦’을 선사"한다는 소설가이자 번역가 배수아의 아홉 번째 소설집이다. 표제작 <뱀과 물>을 포함하여 7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강렬한 표지가 인상적인 책이다. 각 작품은 모두 독립적인 단편이지만, 읽고 나서 보니 서로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하나의 장편같다는 평도 많다.)


소설 속 화자는 대부분 어린 아이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린 아이를 관찰하는 어른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이란 무엇인가? 작가는 모든 어린 시절이 망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러면 소설 속 어린 아이들은 모두 어린 아이이자 망상 속 존재이고, 누런 개처럼 돌아다니는 - 혹은 누런 개일지도 모른다 - 유령에 지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은 망상이에요. 자신이 어린 시절을 가졌다는 믿음은 망상이에요. 우리는 이미 성인인 채로 언제나 바로 조금 전에 태어나 지금 이 순간을 살 뿐이니까요. 그러므로 모든 기억은 망상이에요. 모든 미래도 망상이 될 거예요. 어린 아이들은 모두 우리의 망상 속에서 누런 개처럼 돌아다니는 유령입니다. (<1979>, 94p)

소설을 읽다 보면 내가 지금 서사를 잘 따라가고 있는지, 혹시 꿈을 꾸는 것은 아닌지, 혹시 내가 망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모든 어린 시절과 모든 미래가 망상이라는 작가의 지적이 물리적으로 와닿는 부분이다. 자아와 타자, 과거와 현재, 세계와 시간의 구분이 모두 모호하다. "세상은 희면서 동시에 붉었고, 모든 것이 번쩍였으며, 모든 것이 환하면서 동시에 검"은 것이다. (<도둑 자매>, 150p) 나는 나 자신이지만, 나 자신이 아니기도 하며, 다시 나 자신이기도 하다. 마치 불경의 한 구절처럼. 


시간도 공간도 낯설고, 이름이나 지명같은 고유 명사도 모두 낯선 몽환적인 세계에서 서사가 펼쳐진다. 포스트 모더니즘적이고, 도전적이고, 전반적으로 그로테스크하다. 기괴하다는 말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 없는 장면도 종종 등장한다. 내용을 뭐라고 설명할까. 어른들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외로운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 쥐들의 왕, 반두 여왕의 이야기? 죽은 태아와, 죽은 태아가 떠내려온 강과, 그 강에 빠진 누런 개를 상상하는 아이의 이야기? 그도 아니면 "날 죽여줘. 소리도 없이. 직관도 없이."를 외치는, 직관에 의거한 아주 직관적인 이야기. 글쓰기는 직관이라고 했다. 두고두고 읽으며 밑줄을 그어야 할 책이다.

마침내 내가 침대에서 일어날 때는, 현기증 때문에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이미 세상은 저녁처럼 어둑했다. 그러나 어떤 저녁인가? 어느 날의 저녁인가? (<눈 속에서 불타기 전 아이는 어떤 꿈을 꾸었나>, 15p)

이 비밀스러운 결속이 나는 기쁘다. (<얼이에 대해서>, 38p)

아버지는 화를 내면서 방을 나간다. 아버지의 등뒤에서 문이 닫힌다. 밤은 다른 밤보다 더욱 어둡다. 내가 아는 밤 중에서 가장 어두운 밤이다. 눈발은 점점 거세게 날린다. 구름이 더욱 짙어지고 세상은 재를 뒤집어쓴 듯 어두워진다. 나는 눈을 비비고 싶지만 손이 묶여 있어서 그럴 수가 없다. 어느덧 나는 바다 위에 떠서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검은 망토의 남자는 내가 탄 배를 더욱더 먼 바다를 향해서 민다.
가장 먼 바다를 향해서 민다.
나는 혼자다. (<얼이에 대해서>, 75p)

"어린 시절은 망상이에요. 자신이 어린 시절을 가졌다는 믿음은 망상이에요. 우리는 이미 성인인 채로 언제나 바로 조금 전에 태어나 지금 이 순간을 살 뿐이니까요. 그러므로 모든 기억은 망상이에요. 모든 미래도 망상이 될 거예요. 어린아이들은 모두 우리의 망상 속에서 누런 개처럼 돌아다니는 유령입니다." (<1979>, 94p)

세상은 희면서 동시에 붉었고, 모든 것이 번쩍였으며, 모든 것이 환하면서 동시에 검었다. (<도둑 자매>, 150p)

이미 일어났다고 알려진 일은 일어나지 않은 일보다 신비롭다. 그것은 동시에 두 세계를 살기 때문이다.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비순차적인 시간을 몽상하는 어떤 자의식이 있고, 우리는 그것에서 태어난 아이들이었다. (<뱀과 물>, 191p)

내가 세상에 없을 때, 혹은 세상이 없을 때, 나는 파도 모양으로 주름진 함석지붕 오두막에 사는, 배가 터진 한 마리 개였다고 했다. 기나긴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한 것은 나를 상상하는 놀이였다. 나는 내가 닭이라고 상상했다. 내가 개라고 상상했다. 상상 속에서 나는 복숭아였고, 꿈속에 늘 나타나는, 검은 물속을 헤엄치는 큰 뱀이었고, 때로는 나이든 여자들이 눈물을 뿌리는 검고 긴 공단 치마였다. (<뱀과 물>, 193p)

"어쩌면 너는 아이가 아닐지도 모르겠구나."
앞서가던 여승이 문득 나를 돌아보았다.
"네 안에는 아주 늙은 네가 살고 있을지도 몰라. 늙은 그녀가 너무 이른 시기에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해라. 만약 그녀가 미친 닭처럼 순식간에 훨훨 날아가버리면 너는 평생 그녀를 쫓아다녀야 하는 거야. 아니면 그녀가 너를 쫓아다니겠지. 운이 좋아서 그런 불행만 일어나지 않으면, 넌 훌륭한 우체국 직원이 될 거다." (<뱀과 물>, 206p)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오직 야수일 뿐. 여교사는 피부 아래의 아득한 감각으로 그것을 느꼈다. 수화기 속에서는 상대방이 계속해서 뭔가를 말했지만, 그녀는 더이상 귀기울이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이 세계를 잊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어디로?" (<뱀과 물>, 210p)

개미 한 마리가 여교사의 허벅지 위를 기어갔다. 그 밖에는 모든 것이 고요했다. 그 밖의 모든 세상은 소리가 없었다. 몸도 없었다. 양계장 주인을 피해 달아나던 닭도 담장 아래서 동작을 멈추었다. 콜레라 환자를 태우는 불길도 너울거림을 멈추었다. 죽은 소녀들도 너울거림을 멈추었다. 어린 시절도 일생동안 지속될 너울거림을 불현듯 멈추었다. 어린 시절, 그것은 막 덤벼들기 직전의 야수와 같았다고 여교사는 생각했다. 모든 비명이 터지기 직전, 입들은 가장 적막했다. 시간과 공기는 맑은 술처럼 여교사의 갈비뼈 사이에 고여 있었다. 염세적인 사람은 일생에 걸친 일기를 쓴다. 그가 어린 시절에 대해서 쓰고 있는 동안은 어린 시절을 잊는다. 갖지 않는다. 사라진다. (<뱀과 물>, 223p)

"그렇다면 어디로?"
수화기를 향해서 이렇게 되물었으나, 이미 전화는 끊긴 다음이었다. (<뱀과 물>, 224p)

너무 이른 죽음은 어리석은 결정이라고 사람들은 늘 말한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을 느낄까?
그런데 내 느낌이란 무엇일까? 형체가 사라지고 존재만 남은 가방과 같은 이것, 파국을 향해 산란되는 이것. (<기차가 내 위를 지나갈 때>, 2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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